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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Nov 29. 2022

반석

2022.11.29


 

 이천에 오니 옛 생각이 났다.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오천리 반석빌라 401호에는 태은이가 살았다.

큰길 건너편에는 큼지막한 교회가 하나 있었다. 302호에 살던 나는 새벽에 잠을 깨면 새벽 예배에 간 엄마를 찾겠다고 대로를 건너 그 교회를 찾아가곤 했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그때 얘기를 했다. ‘4살짜리 여자애가 혼자 자는 건 무서워하면서 그 넓은 찻길은 겁도 없이 건너 다녔다'하고. 


 성훈의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었다. 또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다고 했다.

여주교도소를 나오다가 반석빌라가 스쳤다. 여주에서 이천까지는 멀지 않아 잠시 경유할 여유가 있었다.

반석빌라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여덟 살 이후로 처음 와 보는 동네의 전경은 조금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뀌었지만 반석빌라의 자리는 여전했다. 담배를 피우며 401호에 가볼까 고민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담배에는 반석빌라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빠가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더라면. 서울에 가지 않았더라면.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성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문득 내 삶이 모래성 같았다. 파도 한 번이면 무너져 버리는, 모래밭 위에 지어진 위태로움. 


 여섯 살 생일에 태은이는 생일 축하한다며 볼에 뽀뽀를 해 줬다. 그리고는 자신과 결혼하자고 했다. 태은이는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였다. 여섯 살의 눈에도 그런 것들이 보였다. 그래서 난 태은이와 결혼하는 것이 좋았다.  


 담배 연기 너머로 돌이켜본 그때는 모든 것이 반듯하고 단단했다. 태은이와 있을 때면 어떤 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허나 지금의 내게 남은 것은 멍자국의 잔상과 말보로 세 개비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후회하기에 늦었음을 앎에도 눈물이 났다. 


 노트를 찢어 편지를 썼다. 모래성의 가장자리에서 반석을 동경함이 써 내려간 문장들을, 미처 열어보지 못한 401호의 대문 앞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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