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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Sep 05. 2020

하와이 Day 12

오아후! 반가워.

2018.8. 9.(목)


카와모토 스토어 (Kawamoto Store) 테이크 아웃 – 체크아웃 – 차 반납- 힐로 국제공항(Hilo International Airport) -호놀룰루 국제공항(Honolulu International Airport) - 허츠렌터카(Hertz)-마루카메우동(Marukame Udon) - 월마트(Walmart) - 릴리하 베이커리(Liliha Bakery) - 일리카이 호텔(Ilikai Hotel)- 힐튼 라군(Hilton Lagoon) - 키킨 케이준(Kickin Kajun) - 돈키호테(Don Quijote) 장보기    


빅아일랜드를 떠나 오아후 섬으로 가는 날이다.


마지막 아침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화산 헬기 타던 날 아침에 먹었던 카와모토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대학 때 인도 여행을 하면서 고수 냄새 때문에 제대로 못 먹고 다니다가 급기야 말라리아 비슷한 증상으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열이 펄펄 끓고 아무것도 못 먹고 설사만 했다. 1박 2일을 타고 가는 열차에서 인도 의사를 겨우 찾아 진료를 받았다. 말라리아는 아닌데 풍토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낫기 시작한 시점을 분명히 기억한다. 불고기였다. 인도에 있던 한국 학교 선생님이 주신 불고기를 먹고, 정확히 말하면 불고기 냄새를 맡고 나는 낫기 시작했다. 


카와모토 불고기가 딱 그 불고기 맛이었다. 양식은 아무리 맛있어도 밥심을 내기가 힘들었는데 카와모토 도시락은 반찬 하나하나가 내 몸 구석구석 세포들까지 깨웠다. 힐링 푸드였다. 오랜만에 해가 쨍난 숙소 앞 작은 테라스를 우리 집 정원 삼아 남편이 픽업해 온 도시락으로 상을 차렸다. 오아후로 가는 비행기에 실어갈 수 없는 과일들을 몽땅 꺼내 곁들였다. 마지막까지 마르지 않아 축축한 옷들을 치렁치렁 의자에 걸어둔 채로, 이 넓은 복도가 다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만찬을 즐겼다.     

빅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우리 집 정원에서

숙소를 옮기는 날은 항상 바쁘다. 거기다 오늘은 섬 간 이동이다. 아침 식사에 여유를 부린 게 문제였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짐을 막 쑤셔 넣고 급하게 출발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빅아일랜드에서 오아후로 갈 때쯤 짐이 많이 줄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한국에서 싸 온 라면, 인스턴트 음식, 햇반을 다 먹었으니 적어도 그만큼의 공간이 생겨야 하는데 캐리어 지퍼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면서 힘을 줘야 닫혔다. 부러진 바디보드 하나와 낚싯대는 버리고, 파라솔과 애들 바디보드 1개는 챙겨가기로 했다. (이 바디보드는 오아후에서도 살아남아 한국까지 가져왔다.) 짐이 캐리어에 들어간 게 끝이 아니었다. 캐리어 세 개와 배낭 2개를 차 트렁크에 겨우 실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반납했다. 코나에서 빌려서 힐로에서 반납했다. 똥꼬 1호, 2호가 한국에서 내 차가 리비아로 팔려갈 때만큼이나 아쉬워했다. 빅아일랜드를 같이 누빈 고마운 무지개차도 이제 안녕! 

빅아일랜드 안녕! 우리 다시 올 수 있을까? 화산공원이 다시 열리면 와야지. 애들이 더 크면 만타레이 나이트 스노클링도 하고 싶다. 힐로 파머스 마켓도 가고 싶다. 다시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아서 또 올 거다. 빅아일랜드를 떠나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 오아후는 사실 큰 기대가 되지 않았다.


오아후에 오니 제주도에 있다가 해운대로 온 느낌이다. 시골 쥐 서울 구경하듯 눈이 휘둥그레져서 누가 코라도 베어갈까 봐 옆가방을 더 조여서 몸에 붙이고, 아이들을 바짝 끌어당겼다. 새로운 차를 렌트하고 또 짐을 겨우 트렁크에 쑤셔 넣고 마루카메 우동을 먹으러 갔다. 주차부터가 문제였다. 마루카메 우동집에서 가까운 월마트에 주차를 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점심을 먹은 후 ‘주차비를 아끼기 위한’ 장을 보고 나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릴리하 베이커리에 들렀다. 하와이 와서 처음으로 책가방 메고 학교 다녀오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렇지, 나한테는 관광지이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릴리하 베이커리에서 제일 유명한 초코 퍼프와 녹차 퍼프를 골랐다. 나머지는 어떤 맛을 고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곱게 화장한 중년의 일본인 직원에게 물어봤다. 이거는 이것대로 맛있고, 저거는 저것대로 맛있다고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데, 고르는 나만큼이나 고민하며 대답해줬다. 직원으로서 ‘그거는 별로야’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초코 안에 초코가 또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고 ‘투 머치 초코이니 안 고르는 게 낫겠다.’를 친절하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정과 언어로 말해주었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정성을 다해 답해 주셨다. 사실 할머니랑 얘기하는 게 좋아서 질문을 이어나갔던 것 같다. 할머니의 영어는 같은 동양인 발음이라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유창해서 막힘이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있음이, 프로정신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하와이 스토리가 궁금했다. 할머니의 조언을 적극 반영하여 채워 온 퍼프들은 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드디어 일리카이 숙소에 도착했다. 오아후는 물가가 비싸서 숙소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 하는 민박집에서 열흘을 다 있고 싶었고, 남편은 2박 3일 정도는 좋은 곳에서 묶으면서 오아후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했다. 그 ‘좋은 곳’으로 결정된 곳이 일리카이였다. 오아후는 웬만한 숙소의 주차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하루에 20불을 훌쩍 넘었다. 그래서 숙소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고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밤이 되면 나이트 요금이 적용되며 할인되는 주차장이 있어서 남편이 밤마다 차를 옮겨놓고 아침이 되면 다시 빼서 낮 요금이 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귀찮아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서 수고해준 남편이 고맙다. 덕분에 하루에 25불이 들뻔한 주차비가 9불로 줄었다. 

우리가 예약한 일리카이 방은 방주인으로부터 직접 렌탈하는 개념이라서 프론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주인인 척, 주인의 친구인 척해야 했다. 도착해서 남편이 짐을 호텔 입구에 내려주고 주차장을 찾아 헤매러 간 동안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짐을 옮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에 높은 계단이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을 우선 로비 쪽에 올려 보내고 무거운 트렁크를 계단 한 칸 한 칸 마다 쉬어가면서 옮기고 있었는데 로비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오시더니 번쩍 들어서 옮겨주셨다. 돕는 행동이 너무 자동적이어서, 팁을 바라는 직원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앉아있던 자리를 내어주면서 여기서 좀 쉬라고, 엘리베이터까지 옮기는 것도 도와줄까? 하셨다. 너무 고마웠다. 남편 없이 나 혼자 애들 데리고 여행 왔으면 이런 막막한 순간이 정말 많았을 것 같다. 

짐 많은 여행객한테 입구부터 계단이라니 호텔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계단 바로 옆으로 짐을 옮길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그걸 체크아웃 날 알았다. 오 마이 갓!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를 뚫고 우리가 묶을 방을 찾았다. 문 여는 법이 어려웠다. 주인이 보내 준 메일에 비밀번호가 있었는데 비밀번호를 누른 후 손잡이를 돌리고 당겨 여는 시스템이었다. 어느 정도로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지 헤매다가 땀이 뻘뻘 났다. 그때 경비 두 명이 복도 끝쪽에서 걸어왔다. 내가 도둑인 줄 오해하고 출동한 것 같았다. 급기야 여러 번 에러가 난 문에서 삐삐 소리가 났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경비에게 “그게 아니라 문이 이상한 거 같아요. (나 도둑 아니에요.)” 하며 변명을 했다. 나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옆 집에 일이 있어 출동했단다. 원래 이게 열기가 어렵다며, 자기들이 해보겠다고 번호가 뭐냐고 했다. 

순간, 나는 또 이 사람들이 경비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은 받아야겠고 덥석대고 비번을 가르쳐줄 수도 없어서 손으로 키 버튼을 가리고 눌렀다. 아저씨들이 이리저리 돌리자 찰칵 기분 좋은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와서 짐을 들여놓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어준 아저씨와 우리 집 문을 열어준 경비 아저씨들이 이날 나를 살렸다.    

 

남편이 일리카이를 고르고, 또 수많은 방들 중에서 이 층, 이 위치의 방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테라스에서 힐튼 라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글과 사진 정보만 가지고 3D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남편 덕분에 전망 좋은 방을 만났다.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바로 뛰어 내려갔다. 수영장 입구 계단 쪽 말고는 우리 애들이 키가 닿는 구역이 별로 없는 2m 수심의 수영장이라 어떻게 놀 수 있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수영장 밑바닥에 알록달록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었고, 잠수해서 물고기 터치하고 올라오기 놀이를 한참 했다. 신기하다. 내 몸만 안 내려가진다. 잠수 폼을 잡고 야심차게 머리부터 넣어보지만 바로 위로 뜬다. 똥꼬2호는 자기한테 너무 쉬운 걸 엄마는 못한다며 신나서 계속 계속 하자고 했다. “엄마, 이게 어려워? 왜~애? 나 하는 거 봐봐.” 

잠수 놀이: 엄마는 이게 어려워?

수영을 딱 두 달 배우고 온 똥꼬1호는 타고난 물개다. 저 끝까지 엄마랑 25m 자유형 경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랑 준비, 시, 땅 하고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내가 이겼다. 숨을 헉헉 내쉬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이 박수를 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제 아이들과 게임을 하거나 경기를 할 때 일부러 져주지 않는다. 일부러 져주면 이제 다 눈치를 채고 시시해하고, 사실 전력을 다해도 아이들을 이길 수 없을 때가 많다. 벌써 그렇게 됐다. 

바로 앞에 있는 힐튼 라군은 힐튼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일리카이 숙소 베란다에서 본 힐튼 라군은 패들링 보트들이 떠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는데 막상 가서 놀려니 물이 더럽고 차가웠다. 거품이 보글보글 일어있어서 발을 담그기도 망설여졌다. 바다라면 이런 거품쯤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 텐데, 라군은 인공적으로 만든 곳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거두어내지 않으면 거품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앞바다도 들어가서 놀기보다 거닐기용 바다였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볼 때 이쁜 곳이었다.

숙소 베란다에서 찍은 힐튼 라군과 바다: 멀리서 봐야 미인. 멀리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절세미인. ^^

저녁에는 키킨 케이준에 갔다. 엄청 큰 양념 크랩을 두꺼운 비닐봉지에 담아서 주면 게 그림이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먹는 거다. 온갖 도구와 손을 마음껏 이용해서 말이다. 먹는 게 재미있다고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정말 맛있고 정말 재밌었다. 

키킨 케이준: 시끄럽게 더럽게? 먹을수록 더 맛있어요. 앞치마는 필수 ^^

요리를 할 수 있는 콘도여서 돈키호테에 들려 소시지, 계란, 쌀, 미소된장 분말, 샐러드 거리와 소스를 사서 집으로 왔다. 새 섬,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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