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거북 Oct 23. 2022

인테리어는 어려워

이사(2)

지은 지 27년 된 아파트에서 지은 지 20년 된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인테리어였다. 둘째가 아토피가 있어 인테리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부엌과 욕실이 인테리어의 꽃이라지만 부엌과 욕실은 전 주인이 5년 전에 공사한 대로 두고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이 집에서 남은 평생을 살지도 모르니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는 무거움, 집을 매도하는데 억 단위를 마련해야 했는데 또 거금이 들어가는 무거움, 아토피 둘째에게 해로운 집이 되면 어쩌지 하는 무거움에 나는 업체를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극도로 예민해졌다.


인테리어를 준비하며 남편과 '우리 집 만들기' 밴드를 개설해서 공간별 앨범에 컨셉사진을 모았다. 거실, 부엌, 방, 조명, 도배, 가구, 비포(전 주인한테 받은 사진과 공사 전 사진 모음)로 6개  카테고리의 앨범을 만들었고, 평면도 사진, 가구 치수, 집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 정리, 인테리어 사장님께 물어보고 싶은 질문도 이곳에 기록했다.

이사 갈 아파트 이름과 평수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다양한 인테리어 업체들의 포트폴리오가 있었고 시공사례를 보며 공간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나의, 우리 가족의 고민이다. 아무리 예쁘고, 주인이 만족하는 집이라도 다른 사람의 집을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다. 고민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 누군가의 집을 그대로 Ctrl + C 하고 싶어도 결국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작업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평면도 5장이 다 까매지도록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다. 사진을 모으는 온라인 공간과는 별개로 인테리어 노트를 만들고 인덱스를 붙여 옆면에 손 때가 묻을 때까지 메모를 했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전체 공사가 아니면 진행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해 만나보지도 못했다.

결국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3군데 업체의 견적을 받았다.


1번 업체: 동네에서 오래 인테리어를 하신 분이라 어떤 벽이 틀 수 있는 벽인지, 틀 수 없는 벽인지를 비롯해 이 아파트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인덕션과 건조기와 세탁기가 같이 돌아가면 두꺼비집이 내려갈 테니 꼭 전기공사를 해야 하고, 전기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부엌을 다 철거하고 다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바닥은 장판이라 철거하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장판 밑에 마룻바닥이 깔려있는 것도 이분이 매의 눈으로 발견해주셨다. 사장님이 전기 공사를 직접 하실 수 있는 분이었고 오랜 기간 현장에서 다져진 자신감이 보였다. 하지만 공사를 최소로 하고 건강한 자재를 쓰고 싶어 하는 우리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2번 업체: 또 다른 동네 업체이자 제일 같이 일하고 싶었던 친절한 여자 사장님은 의견 제안도 많이 해주시고 자신이 아토피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 어찌 보면 진상고객이었을 까다로운 아토피 엄마인 나를 이해해줬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 집을 같이 구석구석 둘러보며 '살아보지 않으면 몰랐을' 조언을 많이 해줬다. 한 시간 남짓한 상담에 친해진 기분까지 들어서 나는 이분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단열에 대한 자신감과 블로그를 감각적으로 관리하는 점도 끌렸다. 하지만 부동산업을 겸하고 있어서 너무 바빠 보였고 결정적으로 공사를 최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견적이 우리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3번 업체: 세 번째 업체는 네 업체는 아니지만 이사 갈 아파트 시공 경험이 많았고 포트폴리오도 풍부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업체들이 난색을 보였던 문제들에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를 들어 다용도실 높이가 낮아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올릴 수 없었는데 이 업체만 유일하게 베란다 단차를 낮추고 방수 공사를 다시 해주겠다 했다. (다른 업체들은 방수공사를 부담스러워했고 건조기를 꼭 써야 한다면 다른 베란다에 두라고 했다.)  거실과 부엌이 확 트인 구조를 만들고 싶어 조금 남아있던 부엌 가벽을 마저 철거하고 싶었는데 앞의 두 업체는 해봐야 안다고 한 반면, 이 업체는 깨끗하게 마감할 수 있다고 했다. 냉장고 붙박이장을 따로 하지 않고 대신 벽을 파서 얕은 냉장고장으로  활용하고 싶어 한 우리 아이디어를 존중해줬다. 벽지만은 친환경 업체에서 따로 하고 싶다는 어려운 요구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견적도 우리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업체와 계약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오른쪽처럼 직렬로 쌓으려면 단차 낮추기 공사가 필수였다.

하지만 '가능합니다'를 연발했던 그 사장님은 공사기간  열흘 동안 현장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서 같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며 얘기하고 싶다고 할 때만 얼굴을 굳히고 나왔다. 랜선 사장님이었다. 나는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기분이었다. 사님들 드릴 간식을 싸들고 갈 때마다 새로운 문젯거리를 발견했다. 현장에 없으니 자꾸 소통에 오해가 생기고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공과 전기, 전기와 도배 등 공정 간 연결 분명한 지시가 중요한데  과정이  계속 펑크 나니 돌이키기 어려운 실수가 생겼다. 왜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할 때 '소통'이 잘 되는 업체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지 공사를 하면서 알게 됐다. 인테리어 업체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공사가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사현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때는 업체를 잘못 선정해서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사하고 6개월쯤 지나니 인테리어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가성비가 좋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다 해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 소원대로 거실이 보이는 부엌에서 티비 소리를 들으며 요리할 수 있게 되었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직렬로 쌓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고, 단열에 신경 써달라고 강조했는데 집이 정말 따뜻하다. 좋은 자재를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정했던 둘째의 아토피는 이사 후에 오히려 더 좋아졌다.

(왼)부엌벽 철거 전, (오) 철거 후 : 노란 부분을 철거했고, 거실과 창이 훤히 내다보이는 부엌이 되었다.

인테리어가 어려운 이유는 업체 선정과 공사 과정 중에 생기는 문제들같이 외부적인 데만 있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에 물고 내가 좋아하는 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확실히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결정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이사를 잘 다니지 않아서인지 이번에 잘못 결정하면 평생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다.

또, 남편과 생각이 달랐다. 말하자면 나는 실용주의, 남편은 감각주의이다. 나는 먼지 안 나고 세탁할 필요 없는 블라인드를 좋아하고, 남편은 샤르르 커튼을 좋아한다. 나는 노트북 작업하기에 충분한 조도를 가진 눈 안 피곤 한 조명을 선택했고, 남편은 어두워도 분위기 있는 노란 카페 조명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것도 문제인데 원하는 게 있을 때도 남편과 의견이 달라 문제였다. 나랑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구나,를 오랜만에 느꼈다.  

 

인테리어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베란다 확장 부분에 큰 6인용 테이블을 놓고 다운라이트 조명을 하고 싶었지만 다운라이트가 들어갈 정도의 천장 깊이가 나오지 않았다. 두꺼비 집이 있는 벽을 막을 수가 없어 벽면을 비워둬야 했다. 집은 내가 마음대로 그려나갈 수 있는 하얀 도화지가 아니었다. 집이 살아 있고, 개성있는 유기체 같았다. 무리 돈을 많이 들이고, 우수한 업체가 와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법률적 한계가 있었다.


화려한 집을 만들기는 쉽지만 내가 살기 편한 집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현장에는 변수가 따지요. '하며 여유 있게 노심초사하는 나를 달래준 현장기사님 한 분의 말씀은 인테리어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얘기 같았다.

원래 인테리어가 이렇게 힘든 건가요? 하는 인테리어 카페의 어떤 글 제목은 딱 내 마음이어서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다 이게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됩니다.'라는 어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인테리어 선배의 댓글은 그 후로 인테리어가 끝날 때까지 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되내어보는 모토가 되었다.


나는 인테리어 하면서 한 10년은 늙은 거 같지만, 한 뼘 자랐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배워나갔고, 귀찮아서 또는 거절당할까 봐 두렵다고 나의 의견을 꿀꺽 삼켜버리지 않았다. 나를 진상 고객으로 보면 어쩌지, 우리 집 공사를 엉망으로 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싸워 이겼고, 때론 부드럽게 때론 단호하게 사장님과 현장기사님들께 부탁하고, 제안했다. 남편이 세게 얘기하면 단번에 해결될 일도 많았겠지만 부러 내가 직접 전화하고 연락했다. 인테리어 때 해결안 되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은 부분은 아무리 사장님과 기사님이 싫은 티를 내도 요구했다. 물건을 버리고, 가구를 옮겨도 해결 안 되는 집의 문제들이 있다. 인테리어로 해결해야만 그 공간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다. 춥지 않아야 잘 쓸 수 있고, 편안한 조명이 적절한 곳에 있어야, 가구가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가까운 곳에 콘센트가 있어야만 살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현장에 계신 기사님들께 간식 들고 찾아가 부탁드리기도 하고, 이거는 꼭 해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부분을 꼭 말하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할 순 없지, 하고 넘어가는 여유도 배워나갔다. 평화로워야만 좋은 거고 업체와 서로 감사한 관계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 집에서 부엌 공사, 창호공사, 베란다 확장된 부분에 다시 베란다를 원상복구 시키는 공사를 했었다. 춥고 불편한 집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살면서 하는 공사'까지 해본 경험은 첫 인테리어를 잘 준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우리 집은, '오늘의 집'에 나오거나, 인테리어 업체의 블로그에 비포 애프터 사진으로 올라올만한 예쁜 집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의 공간에 대한 고민으로 탄생한 '따뜻하고 살기 편한 집'이다.


인테리어!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신 하고 싶지 않다. 하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