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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Nov 01. 2022

지속 가능한 채식을 위하여

<청소년 비건의 세계>를 읽고


 어릴 적, 엄마는 늘 채식을 강조하셨다. 라면이나 햄버거를 한끼로 섭취했다면 다른 한끼는 꼭 채소가 듬뿍 담긴 식단이어야 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따로 영양제를 섭취하듯 우리 세 남매는 엄마가 손으로 주는 상추나 샐러리를 입을 벌려 받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입 안에서 채소들을 열심히 오물거리며 깔깔거리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채식이 몸에 좋다는 것을. 지금도 한 끼 정도는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패할 때가 훨씬 많지만.

 

 6년째 비건 지향인으로 살고 있는 작가는 이 책에서 채식을 향한 편견들을 단단하게 반박해 나간다. 수 없이 들었을 비꼬는 말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도 글은 전작 <살리는 일>에 비해 무겁지 않았다. 불완전하더라도 함께 시도해보자는 작가의 따뜻한 설득이, 작가가 전국에서 만난 비건 청소년들의 긍지에 찬 말들이, 이 책을 '희망찬 얘기'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작가는 완벽한 '비건'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채식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채식을 강한 동력으로 추진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비건'이라는 단어엔 사실 꽤 강한 압박이 숨어있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듯한 단어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자'는 데엔 공감한다. 현재의 육식 문화가 지나치다는 점, 육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지구와 동물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채식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채식은 만능의 해법'이라는 함정에도 빠지지 말아야 한단 생각이다. 채식을 해도 병에 걸릴 수 있고, 채식에 탄소 발자국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육식에 비할 바는 아니다.)


 <따뜻한 식사>를 쓴 채식부부 강하라·심채윤 작가는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이분법적 논리를 지양하면서 "어떤 사람은 비건만이 최고라 여기며 자신을 강박하고 좌절을 반복하지만, 스스로를 채식인으로 구분짓지 않고도 즐겁게 건강하게 먹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어떤 식단이 더 우위가 있는지 따지기보다는 '어떤 먹거리가 지구에, 동물에, 그리고 내 몸에 더 이로운지'라는 대승적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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