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탈리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 둔 바티칸 미술관 반일투어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바티칸 미술관 근처 역에서 오전 8시까지 집결해야 했는데 그전에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까지 해야 했기에 바빴다.
투어를 하는 동안 짐을 캐리어에 맡겨두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각자 챙겨간 노트북과 책 등의 짐들도 모두 캐리어에 넣어야 했다. 여행 시작부터 의아했던 점은 '우리의 캐리어는 왜 시작부터 꽉 찬 걸까?'였는데 노트북과 가방까지 넣으니 캐리어 확장을 하고도 겨우 지퍼를 잠글 수 있을 정도로 팽창했다.
캐리어를 끙끙거리면서 끌고 나와 조식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호텔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크루아상을 고르라고 하셨고, 커피는 "카푸치노 okay?"라고 하시며 카푸치노와 크루아상, 그리고 오렌지주스를 테이블에 세팅해 주셨다. 카푸치노는 진하고 풍미가 좋았고, 같이 곁들인 크루아상과의 조합도 아주 좋았다. 크루아상은 기본보다는 안에 누텔라나 크림이 들어있는 크루아상이 훨씬 맛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보통 오전에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를 마시고, 오후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한다. 아마 오전에는 식사 전이기 때문에 포만감이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듯하다. 또 이탈리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스 커피 메뉴가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시려면 스타벅스를 찾아야 하는데, 이탈리아가 커피에 자부심이 있는 나라이기에 스타벅스 매장을 찾기도 힘들다. 아이스라떼파인 나는 아이스라떼 없이 어떻게 지내냐며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현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에 심취해버렸다. 이탈리아 커피, 정말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무사히 카페에 짐을 맡겨둔 우리는 지하철을 타러 나섰다. 숙소 근처에 테르미니역보다 가까운 역이 있었기에 역에 들어가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어제 로마 공항에서 한 번 겪어봤기에 비밀번호 6자리 입력에 당황하지 않고 클리어!
예상했지만 이탈리아의 지하철은 한국보다 훨씬 옛것의 분위기가 강하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이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 나라인지 깨닫는다) 지하철역에 집시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들어서 이때도 긴장을 많이 했다. 가방을 품에 꼭 안고 몇 정거장을 달려 집결지인 OTTAVIANO 역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집결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지하철역 내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시간을 맞춰 집결지로 향했다.
4월 초, 로마의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 직전 여행지인 일본이 한국에 비해 훨씬 따뜻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안고 봄여름옷을 주로 챙겨 왔는데, 로마는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쌀쌀해서 여행 내내 추위와 싸웠다.
8시 10분, 담당 가이드를 만나 인원체크 후 인솔에 따라 바티칸으로 향했다. 길을 건너기 전부터 엄청난 인파가 긴 줄로 서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바티칸이구나' 직감했다.
다행히 우리는 패스트트랙 티켓으로 입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긴 줄을 설 필요는 없었다. 티켓가격은 박물관 티켓비(17유로) + 예약비(5유로) + 박물관 수신기 대여비(3유로)로 나뉘어 총 인당 25유로였다.
입장 후 본격적으로 투어를 시작하기 전, 주요 작품의 설명을 들었다. 미리 설명해 주신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 공간에서는 대화가 금지되기 때문이었다. 4년 간 매일 15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만들어낸 천장화가 가장 기대되었는데, 이후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넓은 공간이어서 놀라웠다.
수많은 작품들 중 모르는 작품들이 대다수였지만, 종종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었다. 또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들으니 스토리텔링이 되어 더욱 풍성하게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조각상들을 실제로 보니 너무나 경이로웠는데, 조각상의 크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기도 했고 조각상의 근육, 표정, 자세를 디테일하게 표현해 낸 점이 아주 멋졌다. 그것도 단단한 대리석으로 말이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천재성과 관련된 일화를 가이드가 설명해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라오콘의 군상'이 발견되었을 당시, 가운데 위치한 아버지의 오른쪽 팔이 부서져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많은 조각가들이 조각상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는데, 모두가 아버지의 팔이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유일하게 미켈란젤로만이 '아버지의 팔은 접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등근육의 표현 때문이었는데, 팔을 펼쳤을 때는 등근육이 미세하게 다르게 표현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한참 뒤 팔의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여러 조각상들에 붙여 대조해 보니 라오콘의 군상에서 떨어져 나간 팔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팔은 접혀있었다. 캬!
바티칸은 이탈리아 안에 있지만 어엿한 독립국가로, 2019년 기준 전체 주민 수는 800명이 조금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미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위엄은 결코 작지 않다.
몇 년 전 유럽여행에서도 느꼈지만,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참 멋졌다. 물론 그렇기에 느끼는 불편함도 많겠지만, 어쨌든 여행자와 역사가들에게는 기쁜 일이다.
천주교 신자인 아빠를 위해 고심해서 묵주를 골라 구매한 뒤, 미리 예매해 둔 피렌체행 기차를 타기 위해 조식을 먹었던 카페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해프닝이 발생한다.
카페에 들른 김에 짐을 찾고 나서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들어갔는데 안에서 열쇠로 문을 잠그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다시 나가려고 열쇠를 돌려보니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돌려봐도 꿈쩍하지 않았고, 열쇠를 뺐다 껴봐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덜그럭 대고 있으니 내가 헤매는 것을 눈치챈 남편이 밖에서 문을 열어보려 하며 "괜찮아? 안 열려?"라며 말을 걸었고, 슬슬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화장실에 갇혀서 기차도 못 타는 거 아니야..?' 싶어 두려움이 밀려올 때쯤 남편이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사장님의 바디랭귀지를 보며 통역해 주었다. "열쇠를 조금 뺀 후에 돌려봐"라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침착하게 열쇠를 다 넣지 않은 채로 돌려보니 드디어 열쇠가 달칵 돌아간다. 휴, 정말 다행이다.
우당탕탕 로마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피렌체로 가기 위해 테르미니역으로 돌아왔다. 아직 기차를 타기 전까지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한 차례의 고난을 겪은 나는 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라 두려워했고,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역 안에서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자고 했다. 커다란 샌드위치 하나를 나눠먹으며 제발 피렌체에서는 별 일이 없기를 바랐다.
바티칸 투어를 마치고, 이제 두 번째 도시인 피렌체로 떠난다.
로마는 마지막 날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 곳곳의 유적들은 곧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