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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라이프 May 13. 2023

피렌체의 와이너리 투어,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피렌체에서의 둘째 날 아침, 어제저녁 쓰러지듯 일찍 잠들었기에 둘 다 일찍 눈을 떴다. 



"에스프레소 한 잔 하고 올까?" 



남편의 산뜻한 제안으로 간단히 세수만 하고 나와 아침의 피렌체 거리를 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날씨가 훨씬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는데, 그 와중에 본 쿠폴라와 성당들이 너무나 멋져서 초췌한 몰골이었음에도 열심히 사진을 남겼다.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쿠폴라


사실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알아보지 않았던 도시가 피렌체였는데, 그래서인지 내심 기대도 많이 되었다.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쿠폴라이다. 어제는 해가 지는 시점의 쿠폴라를 봤다면, 오늘은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 쿠폴라를 보니 또 새롭게 아름다웠다.


성당 뒤편에 보이는 쿠폴라



원래 쿠폴라는, 건축용어로써 돔과 같은 둥근 천장의 양식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재 돔으로, 140년 만에 완성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1340년대에 흑사병으로 인해 공사가 멈추었었고, 이후에는 대형 쿠폴라를 시공할 방법이 없어 한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1418년 열린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는데, 버팀목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벽돌을 이용해 비스듬히 쌓아 올리는 방식이었다. 책에서 읽어보니 브루넬레스키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도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모함을 받으며 마침내 완성된 쿠폴라는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 된 카페,
질리(Gilli)


내일 다시 올 테지만 눈을 뗄 수 없었던 건축물 몇 군데를 구경하다가 남편이 찾아둔 카페로 향했다. 질리(GILLI) 카페라고, 책과 블로그들에서도 추천을 많이 했던 카페였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남은 시간 동안 근처 명품거리도 거닐고, 베키오 다리와 성당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로 돌아왔다.





커피, 빵, 디저트 메뉴를 모두 다른 위치에서 판매하고 있어서 주문하는 데 약간 헤맸으나,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와 크루아상,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이 카페 또한 역사가 오래된 곳이었는데, 무려 1733년에 오픈한 장소라고 한다.



(찾다보니 어느 블로거 분이 1733년의 우리나라와 비교한 글이 재미있어서 찾아보니, 조선 중기 시대로 숙종 때였다. 당시 기근이 심각해 굶어죽은 사람들이 40만 명이나 되었다는 충격적인 기록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질리 가문이 오래 전 오픈하여 사람들의 모임공간이 되어주었던 이 카페는 유명세에 맞게 맛이 아주 좋았다. 남편은 이곳에서 먹었던 에스프레소가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점심식사 후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집결지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라구 파스타와 풍기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그저 그런 맛이었다. 라구 파스타에서는 고기 비린내가 살짝 났고, 풍기 파스타는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는, 그저 짭조름한 맛이었던 기억이 난다.





식사 후 집결지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자며 근처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여기서 마신 에스프레소가 맛있었다. 푸근했고 피렌체 동네의 일상에 젖어든 기분이었다.






와이너리 투어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커피를 한 잔씩 마신 후 집결지로 이동해 스티커를 받아 하나씩 붙이고 버스를 탔다. 남편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스티커를 바로 잃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 투어도 전일투어와 반일투어가 있는데, 가격 차이도 꽤 나고 반일투어도 그리 저렴하지는 않다. 와인에 대한 방대한 설명보다는 다양한 맛의 와인을 맛보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일투어를 선택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와이너리 두 곳을 방문하는 코스였는데,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가이드분이 전체적인 코스와 소요시간을 영어와 이탈리아로 번갈아 안내해 주었다.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첫 번째 와이너리는 Tenuta Riseccoli였다. 담당자분이 나와서 와이너리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안내해 주었다.



3종류의 와인을 시음했는데, 시음한 와인들이 모두 내 입맛에 잘 맞지 않기도 했을뿐더러 와인에 대한 설명이나 안주도 기대한 것보다 빈약한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와인 시음 후에는 와인을 구매하거나 포도 농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유시간을 주었다.



농장은 아름다웠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은 키안티(Chianti)이다. 대부분의 와이너리 투어가 진행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인데,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 없어서 편히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이라고 한다. 키안티 와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이 중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지역에서 만드는 와인이 바로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이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병에 붙은 검은 수탉 라벨로 분간할 수 있다. 





이어서 두 번째 와이너리에 도착하기 전, 작은 마을에서 40분가량 쉬는 시간을 가졌다. 거리의 상점과 성당을 구경하다가 올리브 오일, 발사믹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에 들어갔는데, 직원분이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여러 종류의 발사믹과 올리브 오일을 테이스팅 할 수 있게 빵에 적셔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100%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해한 내용들을 중간중간 남편에게 알려주었더니, 남편이 "너 진짜 영어 잘한다"며 감탄하는 눈으로 바라봐줬다. 뿌듯하다.



집결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집결지로 향하다가 젤라토집에 들어갔는데, 추천메뉴로 애플파이 젤라토를 사 먹었다. 사실 애플파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데 추천메뉴를 물어봤으니 그걸 골라야만 할 것 같아서 선택했다. 맛은 괜찮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달려 두 번째로 도착한 와이너리는 poggio amorelli였다.





여기는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는데, 와이너리의 직원분이 엄청난 열정을 가진 분이어서 끊임없이 설명을 해주었다. 꽤나 빨랐던 말 때문에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 와이너리의 와인이 최고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들어가 와인이 숙성되고 있는 오크통을 구경하면서 시음장소로 향했다. 테이블에 치즈, 빵 안주가 세팅되어 있었고 자리마다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다. 와인을 시음한 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면 바로 배송주문을 할 수 있는 종이였는데 영업능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이 와이너리에서는 와인뿐만 아니라 올리브오일, 발사믹, 트러플 오일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방대한 설명을 해주시며 테이블에 놓인 빵에 오일과 발사믹을 뿌려주었다. 





이곳의 와인은 대체로 내 스타일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와인은 (책에서 배운 대로 설명하자면) 달지 않고 적당한 바디감과 탄닌감이 있는 레드와인이다. 이전까지는 묵직한 바디감을 좋아했는데,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면서 바디감이 조금 낮아도 맛이 좋다고 느껴졌다. 요즘 와인을 선호하니, 많이 먹어보고 테이스팅 메모를 핸드폰에 잘 남겨둬야겠다.





투어를 마치고 다시 피렌체로 향하는 버스에서 우리는 모두 술기운에 숙면을 취했다. 우리 둘 뿐만 아니라 버스에 있던 모두가 말이다.



집결지였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가며 배가 아직 부른 상태였기에 간단히 요기할 만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숙소가 내내 추워서 히터를 켰는데도 작동을 안 하는 것 같아 프런트에 물어보니 설비 담당 직원이 왔다. 오랫동안 히터를 만져보고 뜯어보며 살펴봤지만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하는 듯하여, 먼지만 날린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위해 직원을 돌려보냈다. 직원이 돌아간 후 살펴보니 창문을 완전히 다 닫아야 작동하는 히터였는데 창문 바깥의 나무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아 히터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도어록도 없고 여러모로 시설적인 측면에서 한국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은 나라인데 창문을 모두 닫고 잠가야만 히터가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니, 이탈리아의 에너지 절약 체계에 감탄했다.



한국에서 챙겨 온 테라플루를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신 뒤, 이 날도 일찍 잠들었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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