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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Aug 01. 2019

[1] 스타트업에서의 첫 단추

젊다는 이유로 고생을 왜 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년 전의 나는 역동적이고 고생스러운 일을 하고 싶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일까. 고생이 곧 성장이고 보람이라는 믿음이 나를 스타트업으로 이끌었다.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연봉은 반절, 근로 시간은 두 배인 15명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고객이 앱을 통해 청소를 원하는 날짜, 시간을 입력하여 주문을 넣으면 가사도우미들은 클리너 전용 앱을 통해 장소, 시간, 조건을 보고 일자리를 신청하는 서비스였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 스타트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인턴으로라도 일을 하게 해 달라며 강하게 어필했고 그렇게 나는 인턴이 되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열심히 해서 로켓을 한 번 타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 6일 출근/일 평균 13~14시간 근무/점심시간 부족/일주일 연휴 중에도 3일은 의무 출근이라는 썩 좋지 않은 근무 환경 속에서 점점 몸이 망가져갔고 내 건강은 단 6개월을 버텨주지 않았다. 끝내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에 염증이 올라와 문 밖에 나갈 수 없게 돼버렸다. 일어날 기운도 없이 침대에 누워 퇴사를 결정해야 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를 분한 마음에 눈물 한 두 방울을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사와 퇴사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랐다. 초반에는 한 회사에 반년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패배감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퇴사 후 꽤 큰 규모의 투자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팽개치고 나온 스톡옵션 생각에 후회를 했다. 지금은 언제나 면접관들 앞에서 나의 짧은 경력을 변호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아있다.


퇴사 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또다시 나오고 다시 새로운 회사를 찾아 자리를 잡는데 2년이 걸렸다.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짧지만 뜨겁게 일했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고 싶어 졌다. 내가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것을 배웠는지, 그 시간이 일 외적으로 나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이다. 이 글을 포함하여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내 역할과 그것을 해내기 위해 세웠던 세세하고 치밀한 나름의 전략들을 되짚어보려 한다. 몸도 마음도 망가졌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르게 느껴지는 날들이 나의 직업 선택과 인생살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돌이켜보고 싶다.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미뤄뒀던 일. 업무 관련된 조언을 전하기에는 나의 경험이 미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반드시 일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더라도 나의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한 곳쯤은 있기를 바란다.


#1. 역할 정의. 내가 할 일 스스로 찾기


스타트업에서는 대개 개개인이 어떤 업무를 맡아야 하는지 명쾌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역할을 정의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면 정직원으로 전환시켜주는 시스템이었다. 최소한의 고용 안정을 위해 빠르게 고민하고 실행해야 했다.


지금 이 곳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지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출처 = unslpash.com


회사에는 앱 사용을 못하는 가사도우미들의 전화가 매일 1,200통씩 밀려들어왔다. 고객 센터가 따로 없어 전 직원이  '일자리 어떻게 찾아요?' '일자리 취소해 주세요.' '일 주세요.' '길 못 찾겠어요' 같은 단순 문의 150통을 받아가며 주어진 일을 해내야만 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잠을 잘 때도 전화벨 소리가 들릴만큼 고통스러웠다. 말로만 혁신 IT회사였지 적어도 그 당시에는 전국 단위 주문을 받는 직업 소개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주문과 가사도우미 인입이 2배가 되면, 전화 문의가 3배~4배가 되는데 전화 응대를 위한 직원을 무한정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 도움 없이 스스로 클리너 앱을 통해 일자리를 찾고, 취소하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운영 효율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 직업소개소에 비해 일자리(주문)도 많고, 애견 유무/다림질 필수 여부 등을 고려하여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신박한 서비스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50~60대에게 어려운 숙제느껴지는 이 안타까웠다. 큰 마음을 먹고 신규 가사도우미에 지원했지만, 핸드폰으로 일자리를 신청하고 지도를 사용하여 고객 집을 찾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절대 못한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많았다. 이왕이면 더 많은 분들이 가까운 곳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했으면 싶었다. 강서에서 강동까지 왕복 3시간을 오가며 하루에 5만 원을 벌기보다 집 앞에 일자리 2개를 잡아 중간에 식사도 챙기고, 최소 8만 원을 벌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역할을 '앱 교육'으로 정의했다. 전화 문의를 줄여 회사 차원의 운영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앱 사용이 무서워 떠나는 분들의 이탈 줄여 결과적으로 가사도우미 잔존율을 개선할 수 있는 세 가지 KPI를 설정했다. 6개월 내에 그것을 달성하면 스톡옵션을 받는 정규직이 되고, 아니면 인턴 연장이나 퇴사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KPI는 아래와 같았고,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달성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신규 가사도우미가 첫 청소 종료 후 일주일 안에 앱을 설치하는 비율 평균 90% 이상 유지

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이탈률이 N배 이상 높았기 때문에 중요!


둘째, 신규 가사도우미가 첫 청소 후 일주일 안에 스스로 일자리를 신청하는 비율 평균 90% 이상 유지

앱을 설치했어도 일자리를 스스로 잡지 못하면 앱 사용에 능숙한 가사도우미 대비 이탈률이 N% 이상 높았기 때문에 중요!


셋째, 최초 3회 청소를 한 신규 가사도우미가 일주일 내 앱을 통해 <문의하기> 버튼을 누르는 비율 90% 유지

전화 문의를 줄이기 위해 실시간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앱 내 문의 기능 필수 교육!


정직원 전환뿐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까지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하여 목표를 세웠다. 매달 수백 명씩 들어오는 신규 도우미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내가 아닌 누구라도 언제든 운영할 수 있는 틀을 짜기 위해 노력했다.


#2. 첫 단추. 배우고 싶게 만들기

출처 = unslpash.com


나는 최적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효과적인 전화 교육을 위해 가장 적합한 시간대와 방법을 찾았다. 수 천 통의 전화 응대 경험을 통해 대부분의 가사도우미들이 첫 청소를 마무리하고 약 2시간 후에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에 전화를 돌리는 규칙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여는 멘트에 대해 고민했다.


 여사님,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아무리 배테랑이라도 첫 청소에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위로가 섞인 통일된 멘트에 따뜻한 목소리와 마음을 담았다. 지친 하루 끝 직원의 따뜻한 한 마디는 신규 가사도우미들의 마음을 열었고, 그들은 주로 하루 일과 중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하소연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며 제각기 느낀 어려움에 따라 멘트를 구분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집에서 너무 먼 데로 가서 힘들었어요.

▷ 아이고 고생 많으셨어요. 앱 통해서 일자리 잡으시면 집이랑 제일 가까운 데로 골라서 가실 수 있어요.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차근차근 알려드릴 거예요.


동물 있는 집에 가서 엄청 놀랬어요. 난 동물을 싫어하는데..

▷  힘드셨겠어요. 동물을 무서워하시면 앱으로 동물 없는 곳으로만 일자리를 선택해서 다니실 수 있어요. 여사님처럼 동물 무서워하시는 분들은 앱으로 동물 있는지, 없는지 보고 일자리 잡으시거든요.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차근차근 알려드릴 거예요.


하루 4시간 하니까 남는 돈이 없어요. 오전 오후 2개는 해야 되는데..

▷ 앱 통해서 일자리 보시면, 오전 오후 같은 단지에 있는 것도 바로 가실 수 있어요. 중간에 비는 시간에 식사하시고 바로 오후 일 가시면 하루 8만 원이니까 괜찮죠. 처음에는 일 잡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차근차근 알려드릴 거예요.


첫 청소가 고생스러워 당장 일을 그만두겠다던 분들도 전화기 너머에서 무엇이 힘들었는지, 괜찮은지 묻자 금세 부드러워졌다. 진심을 담아 지치고 긴장했던 하루에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오늘 당신을 힘들게 한 일들은 사실 앱만 잘 사용하면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앱과 관련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될 때까지 도움을 드리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수고스럽더라도, 고생스럽더라도 앱을 배워 스스로 일자리를 찾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 포인트였고, 이 방식은 첫 청소에서 비상식적인 고객을 만나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거나, 물품을 훼손하여 큰 보상건에 휘말리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사도우미들의 마음을 관통했다.





출처 = unslpash.com


첫 연락 시간, 정형화된 멘트 선정 등의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들이 자칫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다. 나도 일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그렇게까지' 해야만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장기적으로 꿈꾸던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이 회사의 서비스가 가사도우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당장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만 벌지라도 맡은 일을 꼭 해내고 싶은 이유였다. 당시에 구체적으로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여 하루빨리 인턴 딱지를 떼고 정직원이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서비스 성장을 통해 더 많은 가사도우미가 비교적 편하게 일하고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눈 앞의 놓인 개인적인 목표와 먼 곳의 놓인 서비스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찾아 스스로의 역할을 정의하고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역할과 목표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고 즐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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