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Sep 04. 2022

03.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나는 무의미한 행동과 생각을 많이 하는 어린이 었다. 한동안은 길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 축축한 진흙 속에 박힌 담배꽁초부터 아이들이 먹다 버린 아이스크림 껍질까지 한 손 가득 찰 때까지 줍다가 쓰레기통에 비우고 다시 줍기를 반복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학교를 가는 길에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늘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은 금방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사실 쓰레기 줍기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가 내 덕에 깨끗해졌을 테니 나쁠 일도 아니었다. 내 삶에 불편과 비효율을 만들었던 증상은 11살 정도부터 시작된 씻기 강박이었다. 매일 같이 손에 더러운 것이 뭍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에 최소 50번은 손을 씻었다. 샤워를 하고 또다시 했다. 어떤 날은 성기 부분을 비누로 너무 빡빡 씻는 바람에 피곤할 때 입 안에 생기는 흰색 문어발이 생겼다. 소변볼 때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가정의학과 병원을 찾았다.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시던 할머니가 의사 선생님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기 엄마가 없어서 내가 돌보는데 며칠 전부터 밑이 아프다고 난리어요."


의사 선생님은 염증 부위보다 대답 없는 내 얼굴과 벌겋게 붓고 피가 나도록 터버린 내 손을 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혹시 자꾸만 씻고 싶은 생각이 드니?"


염증이 있는 곳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음의 병을 발견하신 듯했다.


"그냥 계속 계속 씻고 싶고, 씻지 않으면 병에 걸리거나 내가 모르는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시고는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소아 정신과 한 곳을 소개해주셨다. 두 분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난 작은 병원 한 곳에 방문했고, 정신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여러 번, 오래 진행하지는 않았다.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가 내가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애써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요즘에 와서야 많은 연예인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있다고 고백하고 오은영 박사님이 남녀노소의 마음을 보듬어주지만 최근 몇 년 까지도 정신병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만연했다. 우울증, 강박증, 불안장애, 편집증, 공황장애는 '정신병'이라는 단어로 한데 묶여 있었고, '정신병자'가 비속어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어른들이 우리 집 꼬마가 '정신병원'에 들락거리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10년 정도 내게 추가적인 치료나 상담은 없었다.

강박 행동과 함께 어른이 되었다.


가족들이 정신 병원에 부담을 느꼈던 만큼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증상을 숨기기 바빴다. 강박 행동을 들킬까   주위를 살폈고, 흠결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많이 애썼다. 크고 작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지내고 있을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오늘 감기가 심해서 약속  나갈  같아"라는 말은 쉽지만, "불안 장애가 심해져서 밖에 나갈 용기가 없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기침이  멈추면 내과에 가봐, "라는 말보다 "강박증이 심하면 정신과나 심리 상담 센터에 가봐"라는 조언을 주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  단단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내게 발행하려고  거니까 발행하라는 담백한 조언과 요새 그런 건 흠도 아니라는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는 친구들 덕분에 브런치 [발행] 버튼을 눌러본다.

작가의 이전글 02. 처음 맞은 이별과 죄책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