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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Oct 08. 2022

04. 슬퍼도 건강한 이별

내게는 엄마와 다름없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응급실에서 이미 떠나버린 할머니와 마주하자마자 습관처럼 죄책감이 찾아왔다. 돌아가시기 며칠  기저귀를 갈아드리면서 얼굴을 찌푸렸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상처를 받으셨거나 내가 본인을 귀찮게 여긴다고 생각해서 일찍 떠나버린  같았다. 몹시 괴로웠다. 할머니는 본인의 황혼기를 바쳐 엄마없는  키웠다. 그런데  도움으로 자란 내가 늙고 약해진 할머니를  모질게 대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늘 누운 자리가 불편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면 집에 누가 있든 나를 먼저 찾았는데 가끔은 다른 가족은 부르지 않고 내게만 의지하는 할머니가 야속했다.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짜증 난 기색을 보인 날도 그중 하루였을 것이다. 이 일 외에 며칠 전, 몇 달 전 저질렀던 잘못은 없었는지 생각했다. 어릴 적 했던 뾰족한 말들도 떠올랐다. 미안한 일이 너무 많아 슬플 겨를이 없었다. 덩달아 불안과 강박의 힘도 세졌다


증상에 압도된 상태로 찾은 상담 선생님이 내게 건네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슬픔을 마주할 힘이 있어요.
제대로 된 이별을 배우고 할머니와 인사해요.


최선을 다 해 사랑했다면 건강하게 헤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건강한 헤어짐이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죄책감을 가지기보다 충분하게 애도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떠났을 때는 너무 어렸던 나머지 애도라는 과정을 생략해서 불안과 강박이라는 증상을 얻었지만, 이제는 내게 그 슬픈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상담을 마친 후 할머니와 나의 행복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죄책감이라는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나는 엄마였고, 때로는 친구였던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할머니가 깔깔 웃으면 나도 행복했다. 쉬는 날이면 뒷좌석에 할머니를 모시고 맛있는 식당과 풍경이 좋은 곳에 돌아다녔다. 돈을 벌고부터는 예쁜 옷을 자주 선물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가 새벽에 내 이름을 부르면 다섯 번이고 일곱 번이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모셔다 드렸고, 입주 간병인을 구해서 할머니와 가족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지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도 나였다. 추억을 되새길 수록 미안함으로 잠식됐던 마음 한편에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평온하고 행복한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자리 잡았다.


물론 지금도 할머니가 그립다. 다시 한 번 주글주글한 손을 잡아보고 싶다. "늙은이들이 다들 뭐 죽고 싶다고 하지만 그거 다 뻥이야.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더 살면 좋지!" 하는 솔직한 고백에 미소 지어보고 싶다. 그리움에 마음 한 켠이 아려올 때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잘- 작별했다는 기분이 든다. 할머니와 나의 돈독한 사이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무척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와의 이별 후 20여 년간 불안과 강박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이번에는 다시 이전의 내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할머니도 내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눈물 흘리는 것보다 당신과의 추억 덕에 힘을 얻어 나아가는 모습을 더 좋아하실 것이다. 그래서 슬퍼도 건강하게 이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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