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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Apr 21. 2024

06. 길고 긴 심리 상담의 시작

12년 전 교환학생으로 떠났던 하와이에서 세 달 만에 귀국했다. 내 몸집만큼 컸던 이민 가방, 무척 아끼던 빨간 트렁크,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옷도, 책도 버리고 쫓기듯 도망쳤다.


배정받은 기숙사 방 문을 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닥에는 쓰다 버린 면도칼이 즐비했고, 그 옆에 입다 버린 속옷도 있었다. 유독 햇빛을 싫어하던 미국인 룸메이트의 물건들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말도, 마음도 통하지 않는 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우울감은 커지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와이키키 해변  호텔 방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았다. 참석자  영어 한마디 못하는 동양인은  혼자였다. 언제까지 우울하다는 핑계만 대며 이곳에서의 적응을 미룰  없었다. 오랜만에 용기  외출이었다. 맥주    잔에 적당히 취해갈 때쯤 갑자기 백인 남자애  명이 알몸으로 내게 터벅터벅 걸어왔다. 주변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놀라서 얼어버린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기 바빴다. "좋아? 너네는 헬로 키티나 좋아하지 이런  별로지? 어때?" 수줍 많던 나를 향한 짓궂은 장난이었다. 어쩌면  짓을 하기 위해 나를 초대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 것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라며 그놈을 역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었거나, 이건 장난이 아니라 예의 없음에 속하는 멍청한 짓이라고 당당하게 말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여렸다. 눈앞에 있는 발가벗은 남자와 주변 친구들의 희롱을 뒤로한  기숙사로 도망쳐 버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고,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온,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기숙사에서 나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바깥에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새로운 경험들은 신선함보다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향수병이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달리 외로움이 커지는 만큼 손을 씻고, 확인하는 횟수는 많아졌다. 학교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상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우울한 감정과 강박적인 증상들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 버렸다.

  

한국으로 오던 날 내 행색은 몇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보다는 노숙자나 범죄자에 가까웠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친구들은 추운 겨울 하와이에서 입던 여름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고 털레털레 걸어 나온 나를 보고 "야 너 왜 이렇게 탔냐!" , "겨울이야 겨울! 너는 춥지도 않냐!" 며 잔소리하기 바빴다. 옷 갈아입을 정신도 없을 정도로 몹시 지친 나를 위로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차마 가족들에게는 아빠가 지원해 준 학비, 비행기 값, 기숙사비를 모두 날리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하와이에서 잘 살고 있다고 틈틈히 연락하며 근처 친구 집에서 지냈다. 친구 부모님의 배려로 요양 아닌 요양을 하다 하며 지내던 어느 날 거울 속 표정 없는 내 모습이 가여워 보였다.


그 순간 내가 하와이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유별난 룸메이트도, 벌거벗은 남자도 아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를 아름다운 섬 하와이에서 이곳으로 쫓아낸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었다.


도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내가 느끼는 것들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마음속에 엉켜있는 것을 찾아 없애고 싶었다.

길고 긴 심리 상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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