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그림일기1
'에이씨 괜히 시작했나 봐.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내가 잠깐 홀렸던 게 분명하다. 분수도 모르고 까불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목요일 저녁 9시 숙제를 올려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은 없어도 약속은 지켜야 하니 단톡방을 찾았다. 다른 이들이 숙제를 올리기 시작했다.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걸 보고 나니 더 올리기가 힘들어졌다. 지금 때려치운다고 해도 욕할 사람은 없었다. 몇 분 간 흔들렸다. 에이 모르겠다는 맘으로 숙제를 올리고 누워버렸다.
3주 전쯤 김지연 작가가 우리 동네를 방문했다. 벌써 여러 번 그의 강연을 들었지만 이번엔 다른 형태의 수업이라 기대가 되었다. 앞선 1시간 그림책 관련 강연을 마치고 나니 내 앞에는 카드 형태의 빈 종이가 놓여있었다. 한쪽에는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엔 글을 쓰라고 했다.
'그림? 그림을 그리라고?'
'......'
진실되게 미술시간이 싫었다. 20점 만점에 15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뭐 퍼센트로 치자면 나쁘지 않게 볼 수 도 있겠지만 15점은 거의 최하점이었다. 내신성적이 중요했던 그때 예체능은 무조건 만점이어야 했다. 체육은 어떻게 어떻게 단기간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점수를 따낼 수 있었다. 음악은 이론 위주였다. 미술은 대부분 실기였는데 무조건 실력으로 줄을 세워 점수를 매겼다. 내 상식에 그림실력은 타고나는 것이었다. 주에 2시간 배정되어 있는 미술시간으로 타고난 이들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기본 스케치도 없이 물감으로 바로 쓱쓱 그림을 완성하는 최상 클래스 친구들이 부러웠다. 밑그림을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2시간이 끝나갔다. 왜 출발선이 다른 이들과 비교 평가되어야 하는지 짜증이 났었다. 미술이 싫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어서 점수를 매기는 그 시간들이 싫었겠다.
몇 분 되지도 않는 그 시간에 사람들은 뚝딱뚝딱 그려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간단한 마스크 한 장 그리는 것도 두려웠다. 혼자 일기장에 글을 쓸 때 자유로울 수 있지만 세상에 내보일 글에 백 퍼센트 솔직해지지 못하는 상황과 같았다. 내 기억에 자의로 그림을 그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글쓰기보다 백배는 두려웠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못하겠는데요 라고 버티고 있을 수 만도 없었다. 김지연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 그림일기를 보고 긍정적인 평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쪽팔렸다. 내 그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일기 모임을 제안한 김지연 작가의 말에 왜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쥐뿔도 모르는 분야를, 재능이라곤 1퍼센트도 없는 분야에 무슨 용기였을까. 코로나로 멈춰진 일상에 열정까지 멈췄다. 끌어내고 끌어내서 겨우 한길문고를 찾았다. 에세이 4기 재수강을 했다. 내 의지로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선생님이, 동료들이 필요했다. 그 연속선상이었을까? 그림일기라는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어 보였다. 불씨만 남아있는 삶의 열정을 끓어올려 줄 것 같았다.
자화상이 첫 주제였다. 선 하나 그리는데도 삐뚤빼뚤인 내가 얼굴을 어떻게 그리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포기하고 나를 나타내는 사물로 대체하기로 했다. 깔끔한 내 성격이 드러나는 노트북 화면을 그렸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나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반쯤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다시 포기했다. 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자신이 순간 비겁했다. 증명사진을 갖다 놓고 다시 최대한 이쁘게 그렸다. 글을 적었다. 글로 그림의 부족함을 메워보리라 마음먹었다. 작은 노트에 짧은 몇 줄의 글에서 매력을 드러낼 솜씨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만 될 뿐이었다. 자신감이 끝도 없이 추락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생각하면 못할 것 같아요.'
자신 없어하는 나에게 그림일기 한 동료가 말했다. 그는 너무도 멋진 그림과 글을 올렸다. 재능 있는 이가 하는 말은 위로도 응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겸손의 말은 잘난 척의 순화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걸 계속해야만 하는 걸까. 아무 잘못도 없는 동료들을 미워하게 되는 지경이라니. 꼴사납다 참. 오랜만에 줄 세우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노력해서 앞으로 갈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를 닮아 그림에 전혀 재능이 없는 남매는 내 그림에 칭찬일색이었다. 일주일 내내 작은 노트에 고개를 처박고 그렸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는 엄마를 보고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쓱~ 내 노트 속 엉망인 그림에 진심 어린, 부러움이 담긴 평을 했다. 재능 없는 아이들 눈에 단지 연륜이 낳은 그림은 멋져 보였 나보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 옆에서 한 시간 넘게 그림을 그려대는 꼬꼬마들이 사랑스러웠다. 책을 읽으면 따라 읽고 글을 쓰면 따라 쓰고 그림을 그리면 따라 그렸다. 포기해서는 안 될 이유가 생겼다.
유투브에는 선생님들이 넘쳐났다. 나에게 필요한 수업을 고르고 골랐다. 구독을 누르고 1강부터 듣기 시작했다. 한 바닥 가득 선만 그렸다. 동그라미만 그렸다. 열정나시기 질투했다. 역시 내 분야가 아니라고 포기하려고 했다. 처음 시작한 동기를 떠올렸다. '재미를 느껴보자. 내 그림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성취감을 느껴보자. 재능이 없는 분야에 도전하는 엄마를 보여주자.' 목표가 생겼다.
글쓰기도 그림 그리기도 엉덩이로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진득하게 앉아서 일정량을 소화해내야 한다. 노력의, 성실함의 문제다. 재능의 향신료가 없다 해도 사골 우리듯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해보자 까짓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