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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Oct 19. 2020

첫, 처음, 첫번째

나는 언제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까요 1

"으아~ 꺄아~ 엄마~ 이러다 우리 부산까지 가겠어요~"


남매는 소리 지르며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지만 녀석들이 나를 놀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등골에 땀이 쭉 나고 눈이 어지러웠다. '빵빵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닐 거다, 신경 쓰지 말고 가자' 호흡을 고르며 되뇌었다. 목적지를 지나쳐 유턴지점을 찾아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노란색 중앙선을 따라가다 보니 세상 반가운 흰색 점선이 나타났다.


중학교 때 친구 나라는 성인이 되어도 면허는 따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야 편한 팔자라고 했다.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에 자가운전은 필수가 되었다. 나라가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며 살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게 많은 세상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1종 보통 - 합격률이 더 높다고 해서 - 면허를 땄다. 운전을 하지 않은 채 두 번의 적성검사를 받았다.


작년 가을 부산에 사는 오빠가 아반떼를 끌고 우리 집까지 왔다. 폐차할 거면 나 주라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새 차를 사게 된 오빠가 선물 아닌 선물을 주고 간 것이다. 2005년 산 아반떼는 누가 봐도 똥차였다. 어디를 긇히던, 부딪히던, 마음 편히 끌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낡은 차를 타다 혹시나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이 되었던 오빠는 정비를 받고 깨끗이 세차까지 해서 넘겨주었다. 주말이면 운전 스승님(남편)께 연수를 받았다. 새만금 어디즈음 아무도 다니지 않는 미개통 도로가 있어 마음껏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바로 운전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럴 기회가, 아니 쓰임이 없었다. 필요한 곳은 거의 걸어서 다닐 수 있었고 너무 먼 곳은 혼자 운전하기엔 무서워 계속 미루게 되었다. 방학을 하고 코로나가 터지고 집에만 있게 되면서는 주자장 한 곳에 방치된 똥차를 모른 척했다. 스승님은 한 번씩 시동도 걸어주고 주차 연습이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내일로 늘 미루었다.


8월부터 집 앞 5분 거리 일터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걸어서 2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뙤약볕에, 장마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출근은 스승님이 시켜줬다. 시간이 남아돌 때 연습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딱 일주일만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치사하게 굳이 그렇게 생색을 내야는 지 서러워서 '내 운전을 하고 만다' 이를 꽉 물었다. 퇴근은 퇴근대로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매일 신세를 지다보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똥차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고이고이 접어 장롱 깊숙이 넣어둔 면허증을 꺼내 지갑에 넣었다. 생색쟁이 스승님은 시간당 오만 원의 강습료를 받겠다며 출퇴근길 코스를 짜서 연습을 도왔다. 아파트 정문을 나와 일터까지 딱 한 번의 차선 변경만 하면 되게, 나머지는 신호만 잘 지키면 되는 쉽고 깔끔한 코스였다. 2주 정도 스승님이 보조석에 앉아 핸들링과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격려와 칭찬을 섞어가며 가르쳐주는 덕인지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로 핸들을 잡은 지 20일이 되었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려서 차문을 연다. 시동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키로 시동을 거는 스승님의 RV 차량이 이때는 조금 부럽다. 창문을 열고 2분 정도 기다린다. 오래된 아반떼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에어컨 필터도 갈고 시트도 닦아내고 숯도 두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안전벨트를 하고 사이드미러를 펼친다. 가끔 까먹기도 해서 달리다가 뒤늦게 펼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무조건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며 달린다. 8시 50분 이전에는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 아직 출근길 차량 사이에서는 달리지 못하니까.


일터 주차장은 야외이고 바로 앞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 검은색의 주차 턱이 2군데는 떨어지고 없었다. 어렵지 않은 사선주차였지만 뒤에 택시가 붙은 어느 날엔가 급하게 주차를 하다 화단까지 돌진했다. 어린 나무 세 그루가 조금 기울어졌지만 다행히 목숨까지 뺏지는 않았다. 한 번은 주차 턱을 넘어간 것도 모르고 후진을 하다 예상 못한 덜컹거림에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어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을 두 번이나 긁어서 노란 페인트가 오른쪽 궁둥이에 칠해지기도 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가슴 쓸어낼 일은 없어 다행인 똥차라 감사했다.


어제는 퇴근길에 초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다행히 집에 있던 스승님께 초밥을 사러 가자고 했다. 급한 일이 있어 나가야만 했던 그는 그럴 시간은 없다며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이제 너도 차 있으니 사 가지고 오면 되잖아."


운전을 아무리 잘 가르쳐주면 뭐하나, 이럴 때는 진짜 얄미웠다. 짜증이 날 정도로. 출퇴근 5분 그 코스 외에는 아직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나에게. 초밥집도 고작 10분 거리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차선 변경이 포함되어 있는 코스를, 퇴근길 차량이 넘쳐나는 그 길을 난 도전하지 못했다. 꿈조차 꾸지 않았다. 초밥은 그렇게 김밥으로 대체되어 씁쓸하게 위속으로 사라졌다.


결혼을 하고 스승님의 차는 서너 번 바뀌었다. 승합차에서 승용차로, 승용차에서 RV로 브랜드가 바뀔 때도 있었다. 새 차를 탈 때마다 바퀴에 술을 뿌리고 마음속으로 무사고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 스승님은 미신 따위라며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 그런지 찝찝함을 무시하지 못하고 늘 밤에 몰래 나가 혼자 후다닥 해치우고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아반떼는 그런 생각도 못했다. 시작이 명확하지 않아서였는지, 잠깐 타고 말거라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안전을 위한 마음이었으니 늦었지만 나 혼자 의식을 치르고 와야겠다. 주말이면 쉬게 되고, 하루 운행시간이 30분도 안되지만 매일 나의 도전을 함께하고 있는 동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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