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청량한 두 음절. 요즘 가장 좋아하는, 아니 갖고 싶은 소리다. 아똥이는 2005년에 태어났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사이드미러를 펼쳐야 한다. 스마트키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인식하는 최신 자동차보다 몇 세대나 뒤처진다. 충돌 방지 시스템도 없고 후방카메라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다. 아직 능숙하지 않은 주차를 할 때면 좌우측 창을 모두 내리고 흰색선을 왔다 갔다 확인하기에 바쁘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했지만 초보는 장비빨이라고 확신한다. 나도 뾱뾱하고 스마트키로 내 자동차와 아침인사를 하는 꿈을 꾼다.
아똥이가 멋진 스포츠카로 변신하길 기대할 수는 없지만 사랑스러운 면도 갖추고 있다. 가슴 촉촉해지는 아날로그 옵션들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시디플레이어에 커다란 디스크를 넣어 듣는 게 멋스러웠다. 좋아하는 음악만 골라서 mp3 파일로 담아 공시디에 구운(저장) 다음 케이스에 이쁘게 이미지를 붙여서 선물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친절하게 곡 리스트와 가사까지 담아 준다면 센스만점 여친, 남친이 되기에 손색없었다. 나도 가끔 원만한 관계를 위해 직장상사에게 그런 선물을 하곤 했다.
시디플레이어와 더불어 아똥이에게는 카세트 플레이어마저 장착되어 있다. 우리 집 남매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물과는 같은. 친정에 처박혀 있는 수백 개의 카세트테이프들을 우리 집으로 회수할 때가 되었다.
사춘기를 핑계로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며 뛰어놀기 바빴던 내 10대 시절, 함께 했던 무수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그 음질 그대로 재생시킬 수 있다니. 승환 님, 해철 님, 규찬님, 적님, 건모 오빠, 문세 아저씨, 승훈오빠, 015B 오빠들, 무수히 많은 가수들의 앨범을 쓰레기통으로 보낼까 말까 이제 그 고민은 조금 더 미뤄두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 아똥이에 오를 때마다 부디 올해까지만 버텨주기를 기도한다. 지금 당장 유명을 달리한다 해도 놀랍지 않은 상태라 늘 불안함 한 국자를 가지고 다닌다. 지난 수요일 퇴근시간이 되어 아똥이에 올랐다.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R로 변경하고 엑셀을 천천히 밟으며 차를 빼냈다. 엔진 소리나 진동의 미세한 차이를 아직 분별할 수 없는 초보였지만 이상하게 차가 잘 나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별문제 없이 아똥이는 앞으로 나아갔고 신호에 멈춰 섰고 집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기 전 낯선 붉은빛이 눈에 들어왔다. BREAK라고 적힌 붉은색이 갑자기 나타났다.
'저건 뭐지?'
운전에 조금 자신감을 갖고 아이들과 놀러 갔던 그림책앤의 지연샘이 그랬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차를 세우면 무조건 사이드 브레이크를 꼭 채우는 습관을 들여야 해요" 지난 화요일 그 말을 듣고 수요일 출근을 하고 보란 듯이 사이드 브레이크 바를 힘껏 들어 올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차종에 따라 연식에 따라 사이드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에도 놀랐다. 남편 차는 RV최신식이라 그런지 자동으로 사이드가 채워진다는 말을 듣고 심하게 부럽기도 했다.
목요일 아침 출근길 아똥이에 시동을 걸었다. 뭔가 엔진 소음이 더 커진 것만 같고 진동이 살 떨리게 심해진 것 같고 길바닥에서 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일터에 도착해서 동료 은선 씨에게 사이드를 채우고 퇴근했음을 고백했다.
"초보때는 누구나 그런 실수 한 번씩 하니까 괜찮아요. 아 맞다.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익산에서 군산까지 사이드 채우고 달렸는데 차에 불났어. 그래서 폐차했다더라고요."
내 고백에 걱정이 많아진 은선 씨는 퇴근길 후진을 살펴주었다. 안전하게 도로로 차를 올리고 나자 불안함이 다시 핸들을 잡은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블루투스도 무선 이어폰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초보는 눈동자만 겨우 굴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1분 전에 헤어진 은선 씨였다. 궁금증이 일어도, 신호대기라 해도 휴대전화를 집어 들 경지가 아니었기에 집으로 가는 길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사이드를 접고 가길래 전화 걸었어요. 조심히 가요. 잘 도착했으면 연락 줘요.'
무사히 주차를 하고 나서야 문자를 확인한 나는 운전 자신감이 조금 붙었음에 기분이 상승했다. 출발하고 첫 신호대기에서 다행히 사이드가 접혀 있음을 발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되게 자연스럽게 버튼을 눌렀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서야 사이드 미러가 접혀 있었음을 깨닫는 과거의 왕초보가 이제는 아님을 뿌듯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