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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Nov 05. 2020

이제 내 세상은 둘로 나뉜다

나는 언제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까요 4

세상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로. 면허의 유무 따위는 상관없다. 내 면허증은 신분증의 용도 외에 지난 20년간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다.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를 해서 딴 자격증은 많다. 당장에 어떤 쓰임이 없더라도 필요하지 않더라도 취득해 놓은 자격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려져버린다. 칼질을 계속하다 보면 채 썰기도 손쉬워지고 다치는 일도 적어진다. 대신 칼은 무뎌진다. 그러나 실력이 쌓이면 무뎌진 칼을 갈아야 할 때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운전처럼 쓰지 않는 자격을 갖고만 있으면 칼을 들 수 없게 된다. 용기를 내어 손에 쥔다 해도 내가 다치거나 타인을 해칠 수도 있다. 완전히 흐려져 쓸모없어지기 전 난 면허증을 꺼내 들었다. 연수를 받고 홀로 핸들을 잡았다. 다치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칼질을 계속해야 하는 단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운전을 할 수 있는 세상과 그렇지 못한 세상을 다 살아본 사람이 되었다. 우하하하하하하.




얼마 전 suv를 모는 소율의 차를 타고 지인의 가게에 들렀다. 편도 1차로 시장 골목 끝쪽에 위치한 가게를 찾아가는 길은 열대 밀림(가본 적은 없지만)을 탐험하는 정글 원정대의 마음 같았다. 도로는 있으나 달릴 수 없었다. 양쪽 불법 주차된 차들을 피해 가다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비켜주고 내어주고 멈춰주고, 길을 그렇게 만들며 나아가야 했다.


"아 놔 너무한 거 아니야? 차를 왜 이렇게 주차해 놓고 있지? 아 저 사람 안 되겠구먼. 신고해 뿌까?"


늘 조수석에 앉아도 조용히 경치만 바라보다 내리던 과거의 나는 사라져 버렸다. 이제 본인이 운전한다고 입장이 바뀐 거냐며 소율은 웃었다.  내 시선으로 이곳은 초보에게 최악이었고 그런 환경을 조성한 운전자들은 무법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지인의 가게 앞에 도로를 반쯤 머금고 남들과 똑같이 불법주차를 했다.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며 한방에 라인에 딱 맞게 주차를 하는 율은 베스트 드라이버다. 웬만해선 흥분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한 그녀는 운전 중에도 남들 다 하는 '욱'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의 차를 탈 때 가장 편하고 기분이 좋다. 아마 내게 지금의 스승님이 없었다면

에게 운전 연수를 부탁했을 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열 번도 넘게 "우와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만하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이제 나의 목표는 율 같은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다.


지난 8월 광복절 이후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추석 연휴 시댁을 방문하지 않았다. 막내아들과 손주가 너무 보고 싶으신 어머님이 계속 마음이 쓰였다. 더 미룰 수 없던 차에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었다. 주말 아침 짐을 꾸리고 남편의 SUV 차량에 올랐다. 6월 어머니 생신 이후로 4개월 만이었다. 휴게소 화장실만 후다닥 쓰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수원까지 달리기로 했다. 부여 휴게소에서 주유를 하고 출발할 때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다. 입장 휴게소까지 107.2km를 달렸다. 나의 고속도로 첫 운전이었다.


"2차선으로만 계속 달리면 돼요 쌤. 다른 차들이 알아서 다 추월해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전방 주시 잘하고 속도 유지만 하면 시내 도로보다 훨씬 수월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고속도로 도전을 예고했던 나에게 지인들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초보는 어디에서나 배려의 대상이니 안전에만 집중해서 자기 수준대로만 달리면 될 일이라고. 남편의 SUV에는 검정 바탕에 노란 글씨로 '초보운전'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왠지 뒤뚱거리는 초보의 궁둥이는 숙련자들에게  쉬이 드러날 거라 생각되었다.


'110km' 얼핏 쳐다본 속도계의 생각보다 큰 숫자에 놀라 엑셀에서 급하게 발을 뗐다. 옆으로 슉슉 지나가버리는 차들 덕에 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명확하게 보이는 숫자는 공포로 다가왔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고속도로에서는 너무 늦게 달려도 위험할 수 있다고 스승님은 옆에서 계속 이런저런 조언들을 했다. '90km'에 맞춰 액셀을 밟았다. 그렇게 40여분쯤 달리다 정체를 만났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쌩쌩 달려봤다고 4,50km로 달리게 되는 정체구간을 만나니 무슨 굼벵이도 아니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기어간다는 표현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명절 연휴에 조수석에 앉아 느끼던  지루함과는 다른 답답함에 승질이 났다. 나는 조만간 운전 중에 욕지거리를 내뱉을 인간으로 변신할 것이 확실했다. 스승님은 나의 답답함을 이해한다며 누구나 그렇게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휴대전화 삼매경에 빠지지 못하고 달리는 내내 차분하게 운전을 도왔다. 스승님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가 운전을 가르쳐줄 때이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스승님에게 운전만 배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삐 이이~~~~ 잉 이~~~~ 이잉"


상념을 깨는 크고 날카로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운전 중에 딴생각은 위험한데 하는 순간 스승님이 내 핸들을 잡았다. 구급차 사이렌에 넋을 놓고 있던 나 대신 살짝 옆으로 차를 움직여 길을 터 준 것이었다. 폭이 좁은 갓길에서 속력을 내서 달려가는 구급차에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놀라고 죄송했다. 내 앞에서 달리던 소형차 2대도 미처 구급차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기우뚱할 정도로 차를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저렇게 큰 소리로 빛을 번쩍이며 달려도 사람들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운전에 절대 집중하자 되뇌었다.


무사히 시댁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추석에 오지 못한 미안함이 씻겨져 내려갔다. 갈수록 연약해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주 뵈러 와야겠단 생각은 들었지만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지 갑갑함에 반가움도 밀려났다. 식당에 가는 대신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이야기를 보따리를 풀다 보니 12시가 한참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불편한 잠자리 탓으로만 하기엔 목부터 어깨 팔뚝까지 너무 아팠다. 별거 아니었다 생각한 고속도로 운전은 다음날 세상 처음 만나는 근육통을 선물해 주었다. 얼마나 힘을 주고 꼿꼿한 자세로 운전을 했던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조수석에 앉고 싶어 졌다. 왕복 운전을 하면 이제 조금 더 실력이 붙을 거니 꼭 내가 하겠다 다짐한 말이 있어 변명거리가 시급했다. 손이 큰 형님과 늘 막내가 애달픈 아주버님의 합작품이 나를 살렸다. 트렁크 빽빽하게 음식들로 채워졌다. 룸미러로 보이는 건 박스와 가방뿐이었다.


힘없이 운전석에 앉았다 룸미러를 보고 깜짝 놀라는 나에게 스승님은 사이드만 잘 보고 달려도 된다고 했지만 자신 없으면 내리라고 했다. 애들도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을 할 수는 없다며 냉큼 보조석으로 옮겨 탔다.

많게는 한 달에 2만 킬로 정도를 운전하기도 하는 스승님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남편의 투정들을 흘려보내기만 했었다. 근육통을 속으로 삭이며 스승님의 팔뚝을 내내 쓸어주었다.


이제 세상 운전자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디. 고속도로를 타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로. 운전의 경력 따위는 상관없다. 신분증의 용도 이외에 지난 20년간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던 나의 면허증은 초보 2달 만에 고소도로에 오르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나는 시내 도로와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이 되었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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