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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Mar 25. 2021

금자씨의이사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을 수 있다면

금자씨가 세탁기에 세제를 3번 넣었다. 엄마의 작은 엄마는 치매약을 먹고 돌아가실 때까지 더 이상 증상의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금자씨는 먹는 약이 많아서일까. 기대보다 약효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세탁기는 거품을 계속 뱉어냈다. 그날 이후로 금자씨 일과에 세탁은 사라졌다. 


15년 전 막내딸의 퇴사를 막기 위해 육아를 자처하고 입주를 했다. 태어나마자 마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둘째는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 사이 여러 번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형님과 아주버님은 맏이로서의 도리를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던 녀석들은 이제 금자씨를 돌보고 있었다. 그나마 맡고 있던 세탁 업무마저 거품 사건 이후로 코로나로 온라인 학습을 하는 두 형제에게로 넘어갔다. 


이사를 앞두고 있던 막내 딸네에서 아픈 금자씨를 이번에야말로 꼭 모시고 와야겠다고 형님은 말했다. 3주 전 형제들은 회의를 했다. 실상은 회의를 빙자한 금자씨 설득하기 작전이었다. 아들 집도 딸 집도 오롯이 편하지 않다고 수 해 전에 말했던 그녀는 독립을 원했다. 혼자 살고 싶다고. 1938년 생 올해로 84세인 금자씨는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하기 전까진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매일 아파트 헬스장에서 2시간씩 운동을 했으며 토요일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 트로트 공연을 보러 다녔다. 집 근처 공원을 수시로 산책하고 동네 친구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출은 금지되었고 운동도 사라졌다. 할머니를 유난히 따르는 둘째 외손주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집안일과 손주들과 트로트 방송이 그녀 삶의 대부분이었다. 답답할 엄마를 위해 아주버님과 형님은 쉬는 날에 드라이브도 하고 산책도 했다. 그녀는 지쳐갔던 걸까, 아플 시간이 생겨버린 걸까, 아프게 된 걸까. 조금씩 건망증이 심해지며 찾은 병원에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게 작년 5월이었다. 


20대 중반에 집에서 쓰던 데스크톱의 하드 드라이버가 망가졌다. 서비스센터에 갖고 갔더니 수리비는 70만 원 정도지만 저장된 데이터가 복구될 확률은 50퍼센트라고 했다. 잃어도 아까울 건 딱 한 폴더밖에 없었다. 수년간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이었다. 백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세이브만 해댄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고작 사진일지도 모를 그 폴더를 이제 열어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그 시간마저 몽땅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고 내 머릿속 추억과 기억 또한 지워지지 않았지만. 며칠을 아니 몇 달을 끙끙 대며 아쉬워하고 속상해했다. 기술이 좀 더 좋아지면 완벽한 복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무지했던 나는 하드 드라이버를 고이고이 장속에 잘 보관했다. 아마 아직도 본가 어딘가 장농속에 20년 째 묻혀있을 것이다.


잊히는 기억을 아직 금자씨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꾸 어린애 취급을 하는 자식들한테 서운하기만 했다. 나는 고작 삼사 년간의 사진이 사라진 걸로 그렇게 힘들었는데, 인지하지 못해도 금자씨의 마음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아직은 뭔가 잃어버린 것 같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 찝찝함 정도일까. 특유의 긍정과 유쾌함이, 금자씨 특유이 농담이 나를 안심시켰다. 계속 그 정도였으면 좋겠다. 


오이농사 때문에 학교도 못 간 적이 있었다던 신랑은 오이를 싫어했다. 그리고 오이를 충분히 싫어한 뒤에 오이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금자씨도 오이를 충분히 싫어했고 이제는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치매라는 녀석은 신상을 좋아했다. 금자씨는 형님이 정성스레 만든 반찬들에 손도 데지 않았다. 싫어하는 걸 먹지 않았다. 좋아하는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먹지 않는다고 내게 인절미를 싸주던 형님에게 금자씨는 특유의 농담으로 투정을 부렸다. "야 시애미 입은 입도 아니냐. 나도 떡 좋아하는데 왜 니 동서만 챙기냐." 금자씨는 떡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좋아하던 음식을 싫어하게 되고, 밥을 많이 먹게 되고, 30대에 과부로 만든 남편의 허물을 며느리 앞에서 자꾸 쏟아내게 되고, 방금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게 된 금자씨. 어느 날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무심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게 될까 봐 너무 무섭다. 쪼잔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눈치보기 바쁜 둘째 며느리를 잊을까 봐 너무 두렵다. 나보다는 수십 배 더 아플 남편을 보게 될까 봐 너무 아프다. 금자씨의 기억이 더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장농 속 묵혀둔 하드 드라이버의 사진이 복구된다면 좋겠다. 금자씨의 기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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