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별빛 아래 영화를 감상하다
시작하기도 전에 숨이 가팠다. 감기로 코는 막혔고 평지를 걷는데도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서인지 헉헉거렸다. 고민을 시작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혼자 남을 것인가. 편하게 쉴 것인가, 사서 고생을 할 것인가.’ 결정을 내리고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금세 아이들 얼굴에 그려진 즐거움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후회가 발목을 잡혔다. 고작 향적봉인데 싶었다.
한 달 전부터 잡혀있던 무주 영화제에 목요일 도착했다. 흐린 하늘과 비 소식이 예고되어 있었지만 그저 좋았다. 한편이라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면 성공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독특한 복층 구조에 홀딱 반해버린 남매는 외출을 거부했다. 방에서 놀기만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신날 것 같다며 저녁밥도 시켜먹자고 했다. 설득과 협박을 적절히 믹스해서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늘 찾는 할머니 수육에서 든든하게, 행복하게 저녁을 막 시작하려는데 간간히 내리던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미리 챙겨 온 바람막이 위로 비옷을 걸치고 우산까지 들었다. 양말을 벗고 물 빠짐이 좋은 신발로 갈아 신었다. 주차장에서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영화 상영 장소로 향했다. 비를 맞아도 좋았다. 남매는 남매대로 그저 신이 났고, 나는 산골 영화제 첫 작품을 만나러 감에 신이 났다. 주차장을 막 빠져나가는 오르막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혹시 하는 우려가 들자마자 친절한 어느 여성이 미안한 표정을 듬뿍 담아 상영이 막 취소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예보된 비 소식에 장비들을 꼼꼼히 싸 두었지만 스피커에 그만 물이 새어 들어가 고장이 나버렸다고 했다. 고작 5분을 남겨두고 그렇게 첫 영화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밤새 세찬 비바람이 창을 때리고도 모자라 금요일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2시에 전주행이 계획되어 있던 남편마저 차를 가지고 떠나 버렸다. 내리는 비와 묶인 발에 우리 셋은 리조트에서 머무르며 하루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2박 3일간의 멋진 영화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눈이 부시게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가 나의 마지막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혼자 영화를 보고 합류할 것인가, 같이 덕유산에 갈 것인가 남편이 어젯밤 물었다. 난 영화를 보러 가겠다며 잠이 들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햇살은 다시 가족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왕복 케이블카 입장권 4장을 들고 신나게 걸어오며 남편이 말했다. 이왕 올라가는 김에 살짝만 걸으면 향적봉이니 한번 들렀다 오자 했다. 남매는 무조건 좋다고 했다. 남편을 제외한 우리 셋은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여름 슈즈인데 괜찮을까 싶었다. 한여름에 올라도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선선했던 기억에, 반바지에 얇은 바람막이로 또 괜찮을까 싶었다. 핑계부터 찾는다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기는 했다.
향적봉을 오르기로 결정한 뒤로 즐겁기로 마음먹었다. 행복하다는 주문을 계속 되뇌었다. 미소를 잃어버리지 말자며 아이들과 눈만 마주치면 미스코리아처럼 입 꼬리를 계속 올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훅 찬 공기가 피부 속까지 파고들었다. 모든 각오와 다짐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
진짜 너무 슬펐다. 짜증도 났다. 기대하던 여행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영화는커녕 상영관에 발도 못 디뎠다. 처음부터 기대란 것을 하지 말걸, 가족과 함께 무슨, 내 욕심이었지……. 자조 섞인 한숨만 내쉬었다. 그 마음이 무안하게도 산이 정말 너무 예뻤다. 전날의 비로 안개가 자욱한 꼭대기는 산신령이 나타나도 자연스러울 것만 같은 신비감마저 감돌았다. 나뭇잎마다 맺혀있는 방울방울은 입속으로 톡 털어 넣으면 무병장수할 것 같은 마법의 물약 같았다. 애써 좋아지는 기분을 외면하려고 해도 이미 난 덕유산에 영혼까지 먹혀 버렸다.
고작 향적봉으론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남덕유산까지 가보자 싶었다. 처음 보는 산꽃들의 이름을 찾아보고, 산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을 탐험하는 건 진짜였다. 살아있는 감동이었다. 가는 길에 점차 해가 떠오르고 안개가 걷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화면을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안개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발아래 무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남매에게 온갖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녀석들이 대견하구나, 정말 멋지다, 힘을 내라, 초면의 인사는 응원으로 돌아왔다. 신이 나서 경쟁하듯 더 큰 소리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댔다. 잠시 쉬고 나더니 나이순으로 탐험을 시작하겠다며 막내가 제일 앞장섰다. 누나와 엄마, 아빠 순으로 따라오라며 명령을 내렸다. 늘 스물아홉인 아빠는 세 번째에 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큰애가 그럼 키순으로 하자며 아빠의 세 번째 자리에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이래저래 슬픈 남편이었다. 매혹적인 자연을 사진에 담고자 몇 걸음마다 멈춰 서다 혼이 난 남편은 또 슬펐다. 쉬고 싶을 땐 손을 든 다음에 대장의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대장은 무거운 엄마의 가방까지 메고 나아갔다.
남덕유까지는 무리였나 보다. 아침을 먹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산행이 길어지자 남매는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렸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서 엄마 얼굴이 소시지로 보여. 진짜야.”
남편도 더 이상 나아갔다간 두 녀석 중 하나를 업고 내려가야 할지도 모를 불길함에 발길을 돌렸다. 예상대로 둘째는 업어달라며 거부하는 내 다리에 매달려 질질 끌려왔다. 맨발이 까지기 시작했던 나도 덕유산의 마력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며 급격하게 피로해졌다.
하행 케이블카에서 신발을 벗고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들을 꺼내봤다. 영화제를 포기하지 않았을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연히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작가 김영하가 그랬다. 실패한 여행이 가장 성공한 여행이라고. 길을 잃는다면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것이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실패했다고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맛 집을 투어 하고, 각종 공연에 몸을 맡길 꿈을 꿨다. 나로 인해 모두가 행복할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계획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실패의 끝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산을 올랐다.
머리 위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고, 눈앞 대형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추위에 몸을 떨지 않을 텐트 안에서 침낭을 덮고 간식으로 입을 채웠다. 밤하늘에 혜성이 떨어지는 스크린 속 화면이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 속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번 본 작품이었지만, 덕유산 안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보는 감동은 남달랐다.
우연히 만난 신랑 지인의 가족들과 예기치 않게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나의 바람에는 꿈쩍도 않던 남편은 친구의 제안에는 손쉽게 넘어갔다. 오히려 집으로 가려는 나를 잔디에 누워 영화를 보면 얼마나 운치 있겠냐며 설득하기까지 했다. 해가 지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한 마지막 날, 마지막 계획마저 포기하고 나니 이런 사치까지 얻게 되었다. 진짜 성공한 무주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