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친구들은 나보다 더 친구가 많고 더 잘났을까?
친구관계 역설은 영어로 friendship paradox를 옮긴 것이다. 우정 역설 또는 친구수 역설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설은 사회학자 스캇 펠드가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친구관계를 조사하면서 1991년에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 사회연결망 내에서 "내 친구는 평균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친구를 갖는" 현상을 가리킨다.
우선 이게 왜 '역설'일까? 역설은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맞는 얘기를 뜻한다. 친구관계 역설도 얼핏 보면 모순되어 보인다. 네트워크 과학에서 쓰는 용어인 이웃수를 써서 생각해보자. 한 개인의 이웃의 수를 이웃수라고 한다. 그 개인의 이웃들이 가진 이웃수의 평균을 평균이웃수라고 하자. 한 개인의 이웃수보다 평균이웃수가 큰 경우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한다"고 하자. 한 사회에서 또는 주어진 데이터에서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하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얼핏 생각하면 50%다.
이웃수가 5명인 사람과 이웃수가 10명인 사람이 서로 이웃이라고 하자. 즉 한 개인이 자신보다 이웃수가 큰 이웃을 가질 때마다 그 상대방은 자신보다 이웃수가 작은 이웃을 갖게 된다. 이런 '대칭성'을 생각하면,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하는 개인이 있을 때마다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하지 않는 개인, 즉 자신의 이웃수보다 평균이웃수가 작은 개인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하는 사람의 비율은 50%를 훌쩍 넘는다. 2011년에 페이스북 데이터로 조사한 결과는 이 비율이 90% 이상이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위의 예에서 이웃수가 5명인 사람은 자신의 이웃수가 5명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이웃수가 10명인 사람은 자신의 이웃수가 10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게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회 전체의 평균이웃수가 100명 쯤 되는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이웃수가 1만명인 사람 A가 있다고 하자. 그 1만명 각각이 자신의 평균이웃수를 계산할 때 그들은 A의 이웃수 1만을 넣어서 평균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평균이웃수가 매우 커지고 그 1만명 중 대부분의 개인들에 대해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하는 결과가 나온다.
수학적으로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이웃수가 완전히 똑같지만 않으면 친구관계 역설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2014년에 엄영호 박사(현재 서울시립대 교수)와 나는 친구관계 역설을 일반화한 연구를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논문 제목에도 일반화된 친구관계 역설(generalized friendship paradox)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사실 이건 엄영호 박사의 생각이었다. 펠드 식으로 써보자면, "내 친구는 평균적으로 나보다 더 좋은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특징'은 정량화할 수 있는 거라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소득, 재산, 행복한 정도도 될 수 있고, 연구자의 경우 출판한 논문수, 그 논문들의 피인용수 등도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연구자들이 그들의 공동연구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논문수가 적고 피인용수가 적다는 것을 보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친구관계 역설을 이해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이웃수 즉 공동연구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논문을 쓰고 그만큼 피인용수도 더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논문을 1천편 쓴 연구자 A의 공동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공동연구자들의 평균논문수를 계산할 때 A의 1천편을 넣어서 평균을 구해야 하고 그렇다보니 A의 공동연구자들 대부분에 대해 일반화된 친구관계 역설이 성립한다.
이 연구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느낀 결과 중 하나는 끼리끼리 효과(homophily)의 영향이었다.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함께 공동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평균에 비해 논문수가 꽤나 많은 연구자라고 해도 그의 공동연구자들도 만만치 않게 많은 논문을 쓴 사람들이다. 그래서 논문수가 많은데도 일반화된 친구관계 역설을 겪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끼리끼리 효과가 없었다면 전혀 역설을 느끼지 않았을 사람들도 끼리끼리 효과때문에 역설을 겪는 것이다. 관련해서 요즘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현상이 생각났다. 자신을 '서민'이라 생각하는 고소득자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 전체의 평균에 비해 소득이 높지만 친구들이 전부 자신과 같은 또는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다보니 자신의 위치를 낮게 보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면, 애초에 친구관계 역설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객관적인 숫자를 통해 얘기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결국 개인들이 자신의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방향으로 연구가 뻗어나갈 수 있는 주제다. 지금까지도 재미있는 결과가 많지만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