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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Apr 13. 2024

우리는 현생의 인연이면 좋겠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영화의 제목이 '전생'이었다는 것을 극이 다 끝나고서야 다시 실감했다.


나영(그레타 리)은 '인연'이란, 몇 번의 전생을 돌고 돌아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몇 번의 생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해성(유태오)과 나영의 인연은 둘을 다시 만나게 했다. 하지만 끝끝내 사랑으로 매듭지을 수 없었다. 이번 생의 나영과 부부의 연을 맺은 '8천 겁의 인연'은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아서였으니까.





인연이, 전생이랄 게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마 해성과 나영은 다음 생에도, 아니 이번 생이 다 끝나기 전에라도 또 만나지지 않을까(혹은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부부는 아니어도 둘은 평생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남편인 아서조차도 닿지 못하는 그런 인연이니까.


해성은 나영에게 마지막 말로 "그때 보자"고 한다. 지금 이게 전생이라면 다음 생에서도 우린 인연일 거라고 하면서. 얼마나 기약 없고 막막한 말인가. 하지만 이미 12살을 지나 다 커버린 둘은 알고 있다.

이번 생에서 우리의 관계는 이쯤에서 끝이라는 것을.






"와..너다"



살다 보면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범위를 떠나서 그 사람만이 가진 오롯함. 아무리 다른 사람이 와도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존재. 지금 내 곁에 10년을 넘게 함께한 친구가 있지만 어린 시절에 만났던 소꿉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그 어떤 절친을 데려와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을 거다. 혹은 첫사랑 같은 것. 꼭 처음의 기억이 아니어도, 사랑이 아니어도.


12년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 선생님 한 분, 곁을 스쳐간 많은 친구들 중 마지막까지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한 명, 다시 돌아간다면 꼭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한 사람. 그런 사람들과는 왠지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떻게든 만나질 것 같다. 아니 이 또한 나의 바람이려나.





될놈될.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는 말은 인연에서도 적용되곤 한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 안 될 인연은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엇갈리고야 마는 경험은 우리를 종종 찾아온다. 아마 해성과 나영은 후자 쪽이겠지. 이민과 유학을 사이에 둔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과연 둘은 사랑을 매듭지을 수 있었을까. 그런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용히 깨달을 수 있다.


"그래..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지."


이렇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연'은 이번 생이었으면 좋겠다. 나영과 해성처럼 애틋하게 다음을 기약하는 인연 말고. 돌고 돌아 다음 생에 또 다른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건 나중의 이야기에 맡겨두자. 우리는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현실만 기억할 뿐이니까. 내가 주인공인 이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꽉 막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성과 나영이 새드엔딩인 건 아닌데..

참 어렵네 인연이란 거.







매거진의 이전글 '태양을 그리워하다'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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