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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an 16. 2019

안녕 흰 순아.

너와 나에게 쓰는 편지.

소나타 차량 뒷 좌석에 혼자 유골함을 꼭 안고 앉아 있었다. 

금빛 보자기 안에 쌓인 상자 안에 유골이 아직 따뜻해서 그런가 마음이 더 차가워져 온다. 이게 정말 마지막으로 네가 주는 온기인 것 같아서 울적한 마음이 다시 찾아오지만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어서일까? 그저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있기만 하다. 화장소부터 집까지 오는 한 시간 동안 품에서 상자를 놔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놓으면 이 온기가 식어있을까 봐 두렵고 겁나서 더욱더 쌔게 품 안에 안아 가둬놓고 싶었다. 고개를 떨구고 이마로 유골함의 온기를 느끼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장례회사 측 직원분이 집에 도착했다고 말해주신다. 오늘 감사했다며 차문을 닫았다. 품 안에서 느껴지던 온기는 이미 식어있었다.


'독자를 위로하기 위한 글을 쓰자'가 항상 내 글쓰기의 모토였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 모토를 잠시 피해서 가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한 글을 쓰고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쓰며 위로받을 수 있고 완성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브런치는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한 장의 편지를 적어 보내려한다.



너랑 처음 만난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 어느 날 아버지가 어디서 사 왔다며 눈보다 하얀 너를 품에 안고 대려왔었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오래됬지만 아직도 기억나. 그 조그만 너가 혼자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서 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대견하던지 너는 몰랐을거야. 너를 대려온 이후부터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던 지하실이 다른 소리로 울렸고 장마철에 잠기는 지하실 때문에 나랑 아버지는 처음으로 둘이 목자재를 가져와 집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지. 하루하루 너무나 다르게 커져가는 너를 보면서 어린 마음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어. '저렇게 계속 크면 흰순이를 타고 다닐 수 도 있지 않을까?'라고. 정말 어린 마음에서 나온 엉뚱함이였지.


 어느정도 중형견 다운 몸집을 금방 갖게된 너는 이제 행동도 제법 진돗개 같았어. 집에서 스무 발자국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우리 가족이 돌아오는 것을 알고 짖어대는게 참 신기했는데, 덕분에 집에 있던 가족은 누가 오는구나 알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마음이 참 든든해졌지. 문을 열쇠로 열려고 할 때 항상 문 아래 작은 틈으로 코를 비집어 넣고 반기는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문을 열면 항상 꼬리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흘들며 내 앞길을 막아서 자기랑 놀아달라고 온 몸으로 부비적대던 너. 애교에 못이겨 잠깐 놀아주고 만져주면 그것도 아쉽다며 올라가는 계단에 엎어져 내 앞을 막아선 너를 피해집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날들이 지금에 와서야 후회돼.


군대에 입대한 후 보고 싶은 사람들을 꿈에서 참 많이 만났는데 그때 너도 자주 만났어. 휴가를 나와 집에 도착하면 너가 나를 알아볼까 궁금해 제일 먼저 네가 있는 지하실을 향했는데 긴가민가 고민하는 너의 귀여운 모습에 살짝 실망을 하기도 했지. 군복을 갈아입고 나오자 그제서야 알아보고 달려오는 너의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 가 없더라. 그땐 이미 노견 무렵에 접어든 너가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했는데, 그 마음을 바로 날려주더라고. 가끔 공중전화 부스에서 가족이 너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줄 때면 간절히 기도했어. 적어도 마지막 가는 길을 지겨줄 수 있게 내가 전역할 때까지만 네가 기다려 주기를 말이야. 다행히 너는 내가 전역할때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줬고 내 기도는 이룰 수 있게됐지.


내 간절한 마음을 안 것일까? 너는 정말 건강하게 나와 어울려 줬어. 이제 힘들만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가자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여전히 대문을 열 때면 문 앞에서 꼬리를 휘날리며 달려들었지. 그래서 잠시 잊고 지낼 수 있었어. 부대 안에서는 그렇게 떠올렸던 너와의 이별을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너는 내가 집에 들어와도 문 앞까지 나와있지 않더라. 내가 들어온 시간이 늦었으니까 너도 자고있을꺼라며 혼자 변명을 대며 몇 일을 보냈어. 평소에는 어떤 시간에 와도 자다가 깨서 달려나왔는데, 그저 취한 몸을 이끌고 지하실로 가기 싫어서 변명하며 외면한거였지.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하루는 내가 지하실로 내려갔더니 방에서 그제서야 네가 뛰쳐나오더라. 평소처럼 고개를 들이밀며 만져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별 일 없는 거 맞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게 아니였는데 말이야.

또 몇 일이 지나 할머니가 네가 밥을 먹지 않는다며 걱정하시는 것을 듣자 뭔가가 내 마음을 쿵 하고 때리는 기분이 들더라. 너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던 것 같아. 그래서 그 날부터 네가 우리집을 떠나기까지 매일 밤에 너를 보러갔어. 하루하루 죽어가는 너를 보는 것이 너무 슬퍼서 자주 울었는데 그게 너무 미안하네. 너는 내가 울면 걱정하면서 내 옆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애였으니까. 첫 날은 혼자서 물을 너무 마시길래 하루에 몇 번 물통을 다시 채워줬는데 둘 쨋날은 한 통도 못비우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어. 셋 쨋날 부터는 전날과 누워있는 자리가 변하지 않았고 넷 쨋날에가서는 고개를 들기도 힘들어 했지. 그런데 정말 슬펐던 건 그렇게 힘든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게 느껴져서였어. 떠나기 전날 내가 너를 찾아 갔을때 너는 나와 밖을 고개로 번갈아보며 나를 내쫓았어. 이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앞 다리로 툭툭치면서 말이야. 방을 나가는 척하며 다시 빼꼼히 고개를 뒤로 땡겨 너를 봤는데, 너는 내가 나간줄 알고 그제서야 안심하고 고개를 떨구더라. 평소에는 내가 지하실을 나갈 때까지 방 문쪽을 바라보던 너였는데. 그럴 힘도 없는 애가 나를 위해 그렇게 몸을 썼다는걸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서 지하실을 나와 한참을 울었어.


 다음 날 너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 차라리 잘 됬다 싶었어.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편안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으니까.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인이라면 똑같았을꺼야. 내가 너와 떨어지는게 너가 아픈걸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래서 울지 않았는데. 너의 몸을 화장소로 대려가는 차량에서 네게 못해준 것들만 생각나고 네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떠올라서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어. 참아보려고 이를 꽉 물고 버텨봐도 자꾸만 나오더라. 그래서 그 날은 그냥 참지 않고 울었어. 너를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에도 너를 화장해주는 그 시간에도 계속울었어. 그날 하루만 울고 이제 더 이상 안울려고 더욱 더 크게,서럽게 울었어.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마음이 좀 홀가분하고 진정된 것 같아.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네가 걱정말고 쉬기를 진심으로 바래. 혹시나 나를 걱정해 좋은 곳으로 못가고 있다면 빨리 떠나가기를 바래. 너 덕분에 힘든 일을 이겨냈고 네가 있어서 내 삶의 행복함이 더욱 커졌어. 이제는 내가 없는 곳에서 너도 행복하길. 안녕. 잘가.

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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