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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Jan 07. 2019

길을 잃었나봐요.

처음으로 맞이한 방황.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새해를 카운트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댔다.

지하철 첫 차에 몸을 기대  평소에는 그래도 이렇게 마시지 않았는데 라며 피곤해진 몸에 사과를 해본다. 왜 이렇게 마셨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술을 마신 다음에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날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전날에 기분 좋지 못할 일이 있었고, 새해가 밝을 땐 군에 복무중일때 빼고 항상 취해 들어갔으니까 마셔야지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찾아오는 후회감은 매 년 1월 1일 새벽의 그 후회감 과는 뭔가가 달랐다. 술때문에 찾아온 후회감이 아니라 문득 나 자신에게 공허감이 느껴져서, 그게 너무나도 한심스러워서 후회라는 감정이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왔다. 마침 귀에 꽂아놓은 이어폰에서 에픽하이의 빈 차가 흘러나온다. 오늘도 멜로디보다는 가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다.


내가 가야할 길, 나에게도 꿈같은 게 뭐가 있었는데 -에픽하이 빈 차 中




몇 일을 아무 생각도 목적도 없이 살았다. 전역 후 겨우 찾은 아르바이트는 그리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사장에게 별별 욕을 먹으면서도 참으려 노력했고 주위 사람들이 차라리 빨리 그만두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으라 해도 이젠 어른이니까, 내 앞길은 내가 찾아야하는 상황이니까 참아보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사장이 내 가족을 무시하는 말 한 번에 지키지 못한 다짐이 돼 버렸다. 덕분에 몇 주동안 백수처럼 다시 살았다. 전역하면 뭐를 하고 뭐를 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던 것중 이룬 것이 없었다. 알바는 구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때려쳤고 글을 많이 쓰겠다는 다짐은 내 글 폴더의 적은 파일 갯수로 변해 나를 괴롭혔다.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프로그래밍이 전공이었던 나는 기획으로 전공을 바꿀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다른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와버렸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당당한 사람이고 싶었으나 되돌아 볼수록 너무나 모자란 놈 일 뿐이었다. 그래서 접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면 상사병이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썩을대로 썩어가는 와중에 카카오톡 브런치에서 하나의 글이 날라왔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요?" 어떤 작가님께 날라온 질문이란다. 그에 대한 답변은 "지금 당장 글을 써야죠."

맞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것이던지 이루고 싶다면 지금 그것에 관련된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저 답변을 보고 '아 그래 글을 써야 작가가 되지.' 라며 자극을 받고 지금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감히 혼자 생각해보는데 이게 브런치 팀에서 보낸 아주 바람직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삐뚤어진 나는 저런 옳은 의도대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저 질문부터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작가에게 작가가 되는 법을 묻고 싶지 않았다. '저를 이 무기력에서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였다. 그냥 아무나 답해줬으면 하는 질문. 글도 쓰고 싶지 않고 그 좋아하던 게임도 하고 싶지 않으며 아르바이트어플을 바라보는 일상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이렇게 사람이 망가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몸에 잔뜩 붙어있는 무력감이 나를 가만히 있게했다. 이런 나에게 자괴감이 들면서도 위의 행동을 다시 반복하며 살았다.


이렇게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 지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였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오롯이 혼자 던져진 것은 처음이었다. 학생때는 그저 공부하면 될 뿐이였고 진로 선택은 말 그대로 선택이지 지속적인 행동이 아니였다. 내가 원하는 학과로 진학해서 대학에서도 행복한 배움을 즐겼으며 군대에서는 뭐 속히 말하는 까라는대로 까면 그만이었다. 내가 선택해서 행동해야하는 연속적인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MINO '겁' 中




몇 일이 지나고 난 후 아버지가 술에 거나히 취해서 들어오신 날 나를 부르셨다. 또 어떤 술주정이신가 싶어하며 걱정했으나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렇게 말하셨다. '네가 하고싶은 걸 하고 자신감을 잃지 말어. 그렇게 살아야한다.' 티를 안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눈에는 보이셨나보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의 고통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 만큼 싫어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왠지 싫지 않았다. 위로가 됐던 것 같다.

 다음 날 부터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기로 다시 한 번 마음먹었다. 해야할 것을 모르겠다면 뭐라도 해야하는게 맞는 게 아닐까 싶어서 일단 하고 싶은 걸 하려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개인 스트리밍 방송도 해보고 싶어서 간간히 하고 있다. 게임을 하고 싶을땐 정말 열심히 후회없을 정도로 하려한다. 이것들을 하면 할 수록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조금은 누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글이라도 쓰고 있을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 크게 체감이 된다. 물론 이제 아르바이트를 다시 구해야 하는 현실에도 충실해야겠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무력감에서 빠져나온 것에 만족하려 한다.


단순히 일기장의 한 편 같은 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혹시 카카오톡에 날라온 브런치팀의 글을 보고 브런치를 켜신 분이 있다면, 그리고 그 분이 내 글을 본다면. 꼭 전해주고 싶다.

함께 힘내자구요. 하고 싶은걸 하면서 거기서 함께 나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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