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이사를 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팔아야겠다고 마음먹던 집이 드디어 팔렸기에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를 결정했다. 집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했기에 이사의 목적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곳을 관리 할 수 없었다. 60여 평이 넘는 단독주택을 나와 아버지, 어머니 세 명이서 관리하기에는 힘에 부쳤기에 집을 옮긴 것 이였다. 같이 사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 세상을 뜨시고 몇 년이 지나자 집이 곪는 것이 눈에 띄게 잘 보였다. 두 분께서 집 관리를 해봐야 얼마나 하시겠냐고 생각했으나 가족사진이 끼워져 있는 액자의 먼지가, 비가 오면 온실 중앙에서 새는 비를 받던 바구니가 없는 모습 따위의 것들이 두 분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다.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게 된 1층의 안방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문을 열자 돌아가신 두 분의 냄새가 코로 순식간에 들어왔다.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은 두 분이 돌아가시고도 반년이 지났는데 그대로였다. 이곳을 가득 채운 이 냄새는 저 녀석에게 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여기서 산 이십년 동안 절반은 본 것 같았기에 충분히 그럴만 했다. 그동안 고생한 녀석을 반으로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접으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냈다. 이불은 많았지만 모두 장롱 안에 들어가 있고 나와 있는 것은 그것 하나였기에 더 이상 인사를 해줄 녀석은 없었다. 장롱을 닫고 옆에 옷장을 열었더니 할머니의 형형색색 코트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니 형형색색은 아니였다. 항상 밝은 색은 따듯해보이질 않는다며 겨울옷은 짙은 녹색과 짙은 남색 같은 어두운 색만 입으셨으니까. 작년 겨울 돌아가시기 전에 큰 고모가 사준 코트를 입고 해맑게 웃으시며 예쁘냐고 묻던 할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눈을 깜빡였다. 그 코트도 어두운 보랏빛 이였다.
할머니의 외투를 모두 상자에 담고 나서야 구석에 할아버지의 코트가 보였다. 단 두 벌만 있었는데 예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정리를 좀 했다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기에 버리지 못하셨을까.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할아버지에게만 의미가 있던 코트는 아닐 것이라 생각됐다. 깊숙이 있는 두벌을 꺼내 조심스레 상자에 담았다. 비록 이제는 버릴 옷이지만 버리는 것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함부로 다뤄도 될 추억이 아니였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코트취향은 할머니보다 더욱 독했다. 초등학교 교장이셨던 할아버지는 여러 자리에 참여하시곤 했는데 오직 검은색의 코트만 몇 벌을 가지고 돌려 입으셨다. 격식 있는 자리에는 항상 검은 정장과 코트. 그리고 검은색 구두로 멋을 내고 나가셨다. 다른 색의 코트는 굳이 필요 없는 멋을 내는 것이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분이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옷장의 위를 모두 상자에 담아내고 아래에 있는 네 칸의 서랍을 차례대로 열었다. 위에 두 칸에는 내복과 런닝셔츠가, 아래 두 칸에는 속옷과 양말이 들어있었다. 옷장을 연 것을 후회했다. 모든 칸에 멀쩡한 것이 없었다. 양말은 구멍 뚤린 것 아니면 바느질로 구멍을 다시 막아놓은 것들 밖에 없었고 속옷은 해져서 전부 닳고 닳은 것들 밖에 없었다. 내복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입으시던 내복인데도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등 쪽 부분이 닳아서 옷을 입으면 살이 보일 것 같았다. 런닝 셔츠는 목 부분이 모두 해져있으며 늘어져 있었다. 서랍 제일 안쪽에 아예 뜯지도 않은 런닝 셔츠가 보였다. 사 놓으셨으면 쓰시지. 이렇게 쓰지도 못하고 가실 거면서 왜 아끼셨어요. 한숨을 쉬며 턱 끝까지 올라온 슬픔을 달랬다.
오히려 버릴 만한 옷들을 담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너무나도 버릴 만해서 더욱 마음이 아파 손이 자꾸 멈췄다. 힘들게 옷장을 전부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텔레비전 아래 서랍을 열었다. 생전에 할아버지가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들이 몇 줄씩 쌓여있었다. 할아버지는 비디오를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셨다.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 저녁쯤에 가족들이 모이면 항상 할아버지의 오른손에는 비디오카메라가 걸려있었다. 십년이 넘은 구닥다리 비디오카메라였지만 우리에게는 기억들을 남겨준 최고의 카메라였다. 그것으로 기록한 테이프를 간간히 꺼내 보여주시며 내가 부끄러웠던 기억을 마주하는 것을 보고 웃으시곤 했다. 아마 그게 비디오를 찍는 가장 큰 낙이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이것들을 정리하시는 것도 열심히 하셨다. 비록 지금에야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생전에는 청소도 하셔서 이 테이프들 위에 먼지가 쌓일 일도 없었다. 놓여있는 테이프들의 가운데는 촬영일자를 적어놓으셨는데 역시나 지금도 올바른 순서대로 놓여있었다.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만 볼까 하고 서랍에 들어있던 카메라를 꺼내 맨 마지막 순서의 테이프를 넣고 재생했다. 아마 작년 추석에는 이미 요양원에 계셨었으니 마지막으로 찍은 영상은 작년 설일 것이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정면으로 나왔다. 찍은 각도를 보니 카메라는 할아버지의 손이 아닌 어딘가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여보. 이순덕씨. 나야. 오늘은 몸이 괜찮은 것 같아서 한 번 찍어봅니다. 알지? 내가 길게 말은 못해. 부끄러워서. 그래도 내가 직접 말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거에 말하고 갈게. 평생을 함께 살아줘서 고맙고 미안했어. 사랑해요.”
짧은 영상이 끝나고 테이프가 카메라에서 나왔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2017-05-08’이라고 써 있었다. 이때쯤엔 몸을 움직이시는 것도 힘들어 하셨는데 언제 찍으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할머니는 이걸 보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는 것은 별개로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테이프 뒤편에 얇은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학교에서 내 모든 것을 가르쳤고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배웠소. 사랑하오.’
아까부터 눌렀던 감정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평생의 사랑을 말하는 그 한 문장에 열심히 눌러 보던 눈물이 폭포처럼 터져 나왔다. 집에서 거동을 하시지 못하셔서 요양원으로 가실 때의 모습부터 돌아가시기 전 치매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던 모습까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나를 훑고 갔다. 그렇게 몸이 안 좋아지는 와중에도 혹여나 할머니께 감사를 표하지 못할까봐 이렇게 영상을 남기시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져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지금은 도저히 저기 상자 안에 담긴 것들을 버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진정 이 집의 주인이 아니었기에. 그렇기에 텅 빈 집을 나의 울음소리로 채우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창원아 오늘 안방 정리한다며 다 했어?”
“어. 거기 상자에 버릴 거 다 넣어놨어.”
“그럼 됐고. 뭐 가지고갈 거 있었어?
“어. 테이프 하나만 가져가자.”
<습작.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