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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의 숲 Aug 02. 2021

숲에서 보내는 편지 6월 호

공백의 숲 Letter

6월의 안부


안녕하세요. 공백의 숲입니다.


 어느새 2021년도의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로 들어서는 시점이네요. 저희는 6월 초입에 서서 안부 인사를 보냅니다. 6월 말은 다들 안녕하신가요?

 겨울에 처음 보내기 시작한 저희의 편지도 겨울과 봄을 지나 어느덧 여름의 시작까지 오게 되었어요. 따스한 담요가 되었으면 했던 편지들이 이젠 어디선가 불어와 기분 좋게 뺨을 훑고 가는 바람처럼 느껴졌으면 합니다.


 6월은 의심의 여지없이 여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달이네요. 숲에서 보내는 편지 6월 호의 주제는 ‘여름과 낭만’입니다. 봄을 지나 분명히 여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기가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나뭇잎 위에 내려앉은 햇빛에도, 풀내음을 담은 바람에도 낭만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최근 길거리를 걷다 본 현수막에서도, 어느 날 우연히 받아본 메일에서도 ‘낭만’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건 초여름의 성질을 낭만적이라고 보는 것이 비단 저희뿐만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낭만은 어느 곳에나 있지만 아무에게나 보이진 않습니다. 낭만은 낭만을 찾고자 하는 자에게 찾아오거든요. 저희의 작은 낭만을 편지에 고이 담아 보냅니다. 이 편지를 밑거름 삼아 평소 무심코 지나쳤을 여러분의 일상 속 작은 낭만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저희의 편지가 여러분의 낭만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년 여름엔 이상 기후로 인해 마냥 좋은 여름을 보내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 여름은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 없이 무탈한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높아지는 기온과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강수량들이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길. ‘여름’이라는 계절이 ‘생존’과 직결되지 않고 낭만적인 여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날의 편지를 씁니다.


6월의 생각


낭만

1. 현실에 메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나는 판교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겐 판교는 정을 붙이기 어려운 곳이었다. 흑백 하늘 아래에 색이라곤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이 전부인 곳,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더 높은 건물이 지어지는 곳, 도로 위엔 차들이 빈틈없이 놓여있는 곳. 그 어디보다 현실에 가까운 곳이었다. 낭만이라곤 찾을 수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서 자동차 경적에 눈을 뜨고,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워 헛배만 부른 채로 네온사인 불빛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밤들엔 내가 마치 현실 한가운데에서 이상을 바라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입학하고 줄곧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를 지나던 어느 날에 수업이 끝나고 버스 어플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조회되지 않아 지도 어플을 켰다. 집 주소를 찍자 도보로 예상 시간 30분이 뜨는 걸 보고 꽤 가깝다고 생각하며 지도 어플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중간 정도 왔을 땐 하천 위의 다리를 걷고 있었다. 초여름의 냄새와 바람이 내 몸 곳곳을 기분 좋게 훑고 갔다. ‘시원하다’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빌딩들 뒤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다리 밑에선 잎을 잔뜩 늘어뜨린 나무들 사이로 강물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였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낭만이라곤 찾을 수 없는 동네’에서 낭만을 찾은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곤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가득 실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의 낭만은 현실을 뒤로하고 파리행 비행기기를 타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과 같이 거창한 것은 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현실 한가운데에서 이상을 바라는 사람이었지만 그것 또한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여름 풍경


나의 집 주변엔 산과 계곡, 논과 밭이 있고, 가끔의 주택과 약간의 공장들이 있는 시골에 있다. 이곳의 여름엔 햇빛을 잔뜩 받는 작물들은 눈이 아리도록 초록빛을 띄며 무성하게 자란다. 올해는 우리 집 마당의 나무에도 햇빛을 가득 머금은 빨간 복분자, 보리수, 앵두가 많이 달렸다. 그것들을 손으로 훑자 바구니 위로 후두둑 열매가 떨어진다. 깨끗하게 닦아서 윙윙거리는 선풍기 앞에 앉아 한 알씩 입에 넣고 씨를 고르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


 길었던 여름의 해가 지면 타오르는 열기가 한껏 훑고 간 자리엔 흔적이 남는다.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짙은 어둠

그 너머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물기가 가득 붙어 있는 공기

개구리 우는 소리

맵싸한 연기를 뿜으며 동그랗게 타는 모기향

작은 조명 위에 몰리는 날벌레들.


 여름날의 더위가 싫어도 이 열기와 흔적들에 빠져들게 되는 건 아마도 이런 여름 풍경이 퍽 마음에 든 까닭일 것이다. 그 풍경을 마음에 담느라 애를 쓰며 보내는 여름이다.


P.S.

추신에는 저희가 매달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소개합니다. 여섯 번째 추신은 노래입니다.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 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낭만젊음사랑 - 이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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