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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의 숲 Aug 02. 2021

숲에서 보내는 편지 3월 호

공백의 숲 Letter

3월의 안부


안녕하세요. 공백의 숲입니다.


 벌써 3번째 편지네요. 편지를 쓰는 일이 아직 어렵긴 하지만 3번째가 되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점차 일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이제 막 시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3번째 시작입니다.


3월은 많은 것들이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겨울이 막을 내려 봄이 시작되는 달이고, 학생들에게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지요.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이, 나뭇가지에 맺히는 봉오리들이 세상의 채도를 높이는 바람에 여기저기 온통 생동감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갑자기 밝아진 세상이, 갑자기 따뜻해진 기온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들의 손과 발은 여전히 얼어있기 때문이죠.


 올해는 3월 초에도 어딘가에 눈이 내렸습니다. 유독 길어지는 것 같았던 겨울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는 내 마음이 어딘가 고장 난 것만 같습니다. 눈이 녹고 땅은 부드러워졌는데 나는 아직 옷을 더 여미고 침대 안에 웅크리고 싶습니다. 내 마음은 아직 다 녹지 않았는데 자꾸 싹을 틔우라 합니다. 나만 그대로입니다.


저희에게도 3월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새로운'보다는 '낯선'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달이었습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무엇. 그 사이에서 압도당하며 '어쨌든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번 3월 호는 이렇게 마음이 채 녹지 않은 분들을 위해 준비한 위로의 편지입니다. 차디찬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조금만 내어주세요. 우리 같이 온기를 나누어요.


3월의 생각


그림자(Shadow, Silhouette, Reflection)

1.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2. 물에 비쳐 나타나는 물체의 모습

3. 사람의 자취

4. 얼굴에 나타나는 불행, 우울, 근심 따위의 괴로운 감정 상태

5.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항상 따라다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림자가 사람의 자취라니.

그럼 모든 사람에겐 결국 그림자가 남는다는 뜻이려나.

그림자는 괴로운 감정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기도 한다는데 그럼 모든 사람에겐 결국 괴로운 감정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려나.

그림자를 없앨 수는 있으려나...

무엇이 그림자를 없애더라.

자리를 잘 잡은 빛이려나.

빛은 무엇이려나.

각자마다 다르려나.

내 빛은 무엇이려나.

내 사람들?

내 강아지?

내 취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가치관?

이 모든 것들이려나.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모든 단어에 '내'가 붙어 있으니 내 빛은 '나'이려나.

자리를 잘 잡은 내가 빛이려나.

자리를 잘 잡았다는 건 무엇이려나.

어쩌면 안나 프로이트의 말처럼 모든 순간의 내가, 나의 빛이려나?

그럼 나는 나에게 그림자이면서 빛인 사람이려나.

아니 모든 사람이 본인들의 그림자이자 빛이려나.

아니면 나만 그러려나.

나에겐 내가 지옥이자 구원이려나.


SPRING PEAK 


나는 봄을 싫어한다. 유치원을 처음 가게 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도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떨어지기 싫어서 엄마를 붙잡고 유치원 아이들 중 가장 서럽게 우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렇게 서너 달을 가장 서럽게 울고 나서야 눈물을 그치고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썩 잘 어울려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새 학기 때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기가 어려웠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금도 이런 기억들은 내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어서 봄이 두렵다.


 나에겐 겨울보다 차가운 봄이 세상엔 따뜻함을 준다. 따뜻해진 날씨에 꽃이 피고, 사람들은 활기차다. 나의 봄만 차가운 것 같아서 더욱더 몸을 웅크린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인 것만 같다. 세상이 미워지고, 삶이 괴롭다. 꽃이 피질 않기를 기도한다.


 작년 봄에는 인터넷에서 ‘봄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시기’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Spring peak’라는 현상을 정의하는 단어도 있단다. 스프링 피크, 봄의 절정.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일 뿐인데 위로가 된다. 나만 봄이 힘든 게 아니라는 (이상한) 안도감, 동질감 혹은 그 사이의 어떤 것 덕분에 위로가 된다.


 그래도 난 여전히 봄이 두렵다. 올해의 봄은 어떻게 버틸지를 고민하며 봄맞이를 한다. 올해도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꽃이 피질 않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봄을 포함한 모두의 봄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모두 너무 힘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덧붙일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봄의 햇살엔 그림자도 있다. 그렇지만 그림자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포기하지 않고 빛을 찾아 나갈 테니.


P.S.

추신에는 저희가 매달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 추신은 시입니다.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마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드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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