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백의 숲 Aug 02. 2021

숲에서 보내는 편지 4월 호

공백의 숲 Letter

4월의 안부


안녕하세요. 공백의 숲입니다.


어느새 4월이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2021년이 된 지 딱 100일이 된 날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지네요. 숲에서 보내는 편지도 벌써 4번째 보내드려요.


 이번 달 편지는 봄의 한가운데에서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의 봄은 어떤 모양새로 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편지에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을지, 잘 전달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이번 달은 유독 고민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숲에서 보내는 편지는 매달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요. 이번 4월 호는 조금 특별합니다. 처음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시작할 때 쓰고 싶었던 편지가 많았습니다. 그중엔 계절을 가득 담은 편지도 있었죠. 숲에서 느끼는 4번의 계절을 4번의 편지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봄의 한가운데에 다다랐기에 봄을 가득 담은 편지를 보냅니다.


 계절 호에서는 ‘~의 숲으로부터’라는 제목으로 각 계절에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소개합니다. 약간은 개인적인, 공백의 숲만의 특별한 식물도감입니다. 또 사라지는 숲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4번의 계절 호를 거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번 4월의 봄 호를 시작으로 다음 계절 호는 7월(여름), 9월(가을), 11월(겨울)에 발행됩니다.


 요즘엔 예전과 같은 뚜렷한 사계절을 만끽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특히나 짧아지는 봄이, 피었다가도 금세 져버리는 봄의 꽃들과 닮은 것 같습니다. 짧아서 아쉬운 봄, 그래서 더 아름다운 봄, 그 찬란한 찰나를 공백의 숲과 함께해요.


봄의 숲으로부터


자목련: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낙엽교목

C의 이야기: 제가 최근 이사 온 동네에는 자목련이 많아요. 집 주변에도, 버스를 타는 길에도 자목련이 피어있습니다. 발갛게 물든 꽃잎을 보고 있으면 블루베리 요거트가 생각나요. 여기저기 온통 블루베리 요거트 천지입니다.


조팝나무: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

M의 이야기: 작년 봄 조팝나무가 모여있는 곳을 보고 엄마께서 저에게 “꼭 폭죽을 터트려놓은 것 같지 않아?”라고 물어본 뒤로 저에게 조팝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폭죽 나무’가 되었습니다.


냉이: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

M의 이야기: 냉이를 먹는 다양한 방법은 많지만 저는 특히 튀겨 먹는 걸 좋아합니다. 바삭하고 씹으면 봄의 모든 향기들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느낌입니다.


매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활엽수

C의 이야기: 저에게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에요. 아직 추운 날씨에 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때, 누군가 ‘꽃이 피었더라.’라고 말하면 저는 생각합니다. ‘아, 매화가 피었구나. 봄이 오기 시작하는구나.’


딸기: 장미목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M의 이야기: 저는 봄을 좋아하지 않지만 딸기를 먹기 위해 봄을 기다립니다. 카페 메뉴에 딸기에 관한 메뉴들이 생길 때마다 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딸기 주스, 딸기 에이드, 딸기 라테... 온갖 딸기 음료들을 부지런히 다 먹고 나면 봄이 끝나 있습니다.


숲이 사라졌다


 지민은 서울에서 개발직으로 다니던 회사를 약 4년 만에 정리했다. 매번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만 반복하며 사직서를 품고만 살았는데 4년 만에 사직서를 내던졌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모든 개발직들이 그렇듯 지민도 밤낮 구분 없이 일을 했기에 4년 동안 고향에 내려간 적은 손에 꼽았다. 그런 지민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 후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지민의 고향은 ‘섬마을’이다. 섬마을은 바다도 없고, 섬도 아니다. 그냥 이름이 ‘섬마을’이다. 주변에 계곡이 많고, 물이 많아 꼭 섬의 모양을 띈다고 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불려 온 이름이었다. 지민은 그런 섬마을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지민은 섬마을로 오고 일주일 동안은 엄마와 아빠에게 왜 얼굴이 반쪽이 되었냐는 잔소리와 함께 삼시 세 끼를 모두 진수성찬으로 먹어야 했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다시 밥을 먹고, 또 먹고, 또 먹고의 반복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과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시는 아빠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던 지민은 일주일 내내 열심히 밥을 먹었다.

 고향을 내려온 지 일주일 만에 지민은 삼시세끼 다 챙겨 먹으면서 집에만 있으면 소화가 되지도 않는다고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고 하며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산책을 하며 ‘내가 어쩌자고 퇴사를 했지, 이제 뭐하며 먹고사나’ 하는 고민을 하다가도, 대학생활과 회사생활 끝에 겨우 얻은 자유와 휴식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에 빠져 있는 지민의 귓가에 누군가 지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지민의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 친구였던 동이였다. 지민은 동이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이는 적당히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말했다.

“뭐야! 김지민 언제 왔어, 회사는 어쩌고 왜 여기 있어 휴가냐?”

“나 퇴사했어. 야 진짜 오랜만이다. 넌 그대로네. 잘 지냈어?” 지민은 최대한 덤덤하게 말을 하고, 더 이상 퇴사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랐다. 그 바람을 무시하듯 동이가 소리쳤다. “퇴사?! 요새 뉴스에는 매일 청년 실업자며, 취직이 안된다며 난리던데... 요즘 같은 시국에 퇴사?” 동이는 지민의 아픈 곳을 찔렀고, 지민은 그런 동이가 미웠다. “뭐 그렇게 됐다. 4년이면 오래 다녔으니까. 좀 쉬려고” 어두워진 지민의 표정을 보자 그제야 동이는 아차 싶었다. “그래 뭐.. 좀 쉬는 것도 좋지.. 오랜만에 얼굴 봐서 반갑네”

“그래 반갑다 야. 그래서 넌 잘 지냈고?”

“어 나야 뭐 똑같지. 올해부터는 내가 우리 밭이랑 목장 다 맡게 됐어.”

“정말? 잘됐다. 요새 한참 바쁘겠네?”

“바쁘지 근데.. 요새 동네가 난리여서... 마음이 심란해”

“왜? 무슨 일 있어?”

“너 저기 우리 밭 앞 아직 못 가봤어? 거기 공사하느라 난리야. 거기에 고속도로를 놓는대”

“뭐? 이 시골에 고속도로? 하긴 지금이 2021년인데.. 근데 그게 왜? 좋은 거 아니야?”

“처음엔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나도 당연히 좋았고, 땅값이 오르잖아. 근데 막상 공사를 시작하니까 아니더라고.. 밭 앞에 있던 산 반쪽이 사라지는데 일주일도 안 걸렸어. 이웃들도 땅을 팔고 이사 나갔어. 우리 집 앞집에 있던 옥자 할머니네도 이사 가시고, 주은이네도, 영민이네도 다 이사 갔어. 아 너희 집 뒤편에 있던 식당도 이사 갔는데 못 봤어?”

“정말?? 못 봤어.. 집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랐어. 민선이네가 이사를 갔어? 우리 집 뒤에 식당도 이사를 가고?.. 그 집 단호박 튀김 맛있었는데..”

“아무튼 다 사라졌어. 숲이고 사람들이고.. 근데 어쩌겠어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 나 밭 가는 길이었는데 가볼래?”

“공사하는 걸 구경하자고? 뭐하러? 너 감자 심는 거 도와달라고 하는 거지?”

“그래 주면 고맙고, 안 그래도 공사 소리 시끄러워서 밭에 오래 있는 게 싫어졌거든”

 지민은 동이의 부탁을 거절할까 하다가 동이의 말이 사실인지, 정말 고속도로가 이 촌구석에 생기는지 확인하고 싶어 졌다. “그래. 어떻게 됐길래. 마음이 심란하기까지 한지 한 번 보자” 조금은 동이를 놀리는 말투로 지민이 말하곤 앞장서서 동이의 밭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동이는 고속도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어디에 생기는지, 또 누가 땅을 팔았고, 누가 이사 나갔는지를 아주 큰 문제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지민은 동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는 이사를 나가 폐가가 된 집들을, 이미 허물어진 건물, 큰 소리로 지나쳐가는 흙과 돌, 나무를 실은 트럭들을 봤다. 밭에 가까워질수록 깡깡, 쾅쾅, 쿵쿵하는 공사 소리가 들렸다.

 동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동이네 밭 앞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산이 사라졌다. 20-30미터 즈음되는 큰 나무들이 알 수 없는 기계들로 뭉개지고 있었다. 숲이 있던 자리에는 나무 대신 4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기둥이 서있었다. 그 기둥을 지민은 멍하게 바라보며 아무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이거 맞아?”


P.S.

추신에는 저희가 매달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소개합니다. 네 번째 추신은 노래입니다.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ㅂ룩은 향기 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연두빛 고운 숲 속으로

어리고 단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 김윤아



2021년 4월 20일 공백의 숲 드림.

작가의 이전글 숲에서 보내는 편지 3월 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