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으로 집 앞에 던져져 표지가 구겨진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책이 숨 쉬는 곳이 대도시 서울임을 명확히 해 주었다. 영화 개봉 전에 꼭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 급히 주문한 탓이었다. 비닐포장에 맨 몸으로 밤을 새워 도착한 책은 예상보다 너무 잘 읽혀서 거의 한 나절 만에 끝이 났고 난 그 구겨진 모서리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펴 봐도 이미 찌그러져버린 게 꼭 소설 속 '영'이 사는 현실인 것만 같아서 미안했던 걸까. 굳이 따지고 보면 나, 너, 우리 모두 다 찌그러져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이 한 권의 책 속에 4개의 연작소설이 있다. 모두 주인공 ‘영’이 사랑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또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그 중 첫 번째 단편소설 ‘재희’를 시나리오로 각색해 만든 게 이번 주에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원작은 차가운 대도시에 아웃사이더들이 불을 붙이다 뜨겁게 데이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가게를 털어 훔친 꼬마전구로 온 도시를 칭칭 감고 반짝반짝 빛나게 밝혀버리는 이야기라 칭하고 싶다.
미친년과 게이가 만났다. 바야흐로 애니멀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재희와 흥수(원작 속 ‘영’)는 불문학과 신입생으로 만났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사랑하며 젊음을 소비하는 자유로운 영혼, 재희는 그렇게 살다 결국 학교에서 ‘미친년’으로 등극한다. 남들과는 다른 성적 정체성에 세상과 담을 쌓은 흥수는 우연히 재희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고 당황하지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며 다가오는 재희와 결국 둘도 없는 베프가 되고, 그렇게 그들만의 슬기로운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그들이 웃고 울며 만드는 지질하고 지난한 13년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회귀시킨다.
ㅈㅈㅁㅎㄱㄷㅇㅈㄹㅎㄴ
20대는 다른 세대와 어떻게 다를까. 치기어린 만용을 알코올과 잘 버무려서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구호를 내 걸고, 젊음이라는 이유로 다 용인될 것처럼 사고치고 다니는 시기라고나 할까? 문제는 ‘평범’이라는 기준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자신들과 많이 다르면 일단 물고 뜯기 좋아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일찍이 답습해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라떼 한잔 마시며 고백한다. 그땐 그랬다고. 내가.
남들보다 못 놀면 인생에서 진 것처럼 이 악물고 놀았으며, 술은 잘 마셔야 유전적으로 잘 난 놈이며, 연애도 짝사랑이든 쌍방이든 많이 할수록 인생의 경험치가 높아지는 것이요, 술은 취해도 공부는 멀쩡하게 해서 취직까지 잘 해야 20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 그런 식의 인생이 정답인 것처럼 굴면서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인 척까지 해야 하니, 그야말로 고된 20대였다. 물론 그 모든 걸 제대로 못 해냈으니 내 20대는 낙제였고.
난 눈치보고 계산하고 머리 굴리지 않아!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맘껏 사랑하는 재희와 남들에게 들킬까봐 사랑은 피해가는 흥수가 기억 속 나의 20대의 양면적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희이자 흥수였다. 물론 재희처럼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흥수와는 다르게 이성애자임을 수없이 확인하고 살아왔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흥수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고 내 삶이 흥수와 더 비슷했던 것 같은지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는 친화력이 과하게 좋았고, 재희처럼 사고도 쳤지만, 사실 나의 약점은 감추기 급급했고 지질함에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희처럼 “난 눈치보고 계산하고 머리 굴리지 않아!”라고 외칠 정도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충분히 계산 때리고 머리 굴리느라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지.
그래서 좀 더 솔직히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과 동기들과 그리 달랐을까? 도리어 나는 영화 속에서 재희나 흥수를 아니꼬워하고 뒤에서 수군대는 그저 그런 학생1과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했던 순간들이 부끄럽게도 자꾸만 생각난다, 그래서 손 꼭 잡고 경찰서에서 “우리가 이상해?”, “아니, 전혀!”라고 외치는 재희와 흥수의 우정이 부러웠다. 내 삶은 그런 손가락질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었던가. 반성한다.
보호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책이 흥수의 입장에서 채워지는 이야기들이었다면 영화에서는 재희의 이야기가 주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재희는 완벽한 친구다. 흥수를 세상 속으로 더 끄집어낸다. 비록 온 몸을 던져 사랑한 결과가 양다리 걸친 애인으로부터 온 몸에 막걸리를 뒤집어쓰는 수모일지라도 재희는 늘 온 몸을 던져 사랑을 한다. 거기에 따르는 아픔도 겪지만, 사랑은 액정이 깨질지라도 보호필름을 떼고 하는 거라며 사랑은 도파민의 농간이라는 흥수의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 일례로 책에서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산부인과의 자궁모형이 재희의 손에 주도적으로 쥐어진 채 휘둘러지는(?) 걸 보면 영화 속 재희는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살겠다는 게 말 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인 채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준 내 이십 대의 외장하드, 잘 가라 재희야.
재희에 비해 흥수가 보인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본의 아니게 자꾸만 아웃팅되는 현실이 싫었지만, 결국 흥수는 재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리창을 깨부수고 재희의 복수를 대신 실컷 해준 채 경찰서로 붙잡혀간다. 거기서 흥수는 본인이 게이임을 당당하게 외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멋진 이유가 어디 있으랴 싶은 명언을 내 뱉는다.
“베프끼리 같이 살 수도 있잖아요. ㅆㅂ서울 방세가 얼만데!”
재희의 결혼식날, 핑클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리던 흥수가 애틋해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코가 시큰했던 것 같다. 그런 흥수가 영화 속에서는 미쓰에이의 ‘배드걸 굿걸’을 부르며 춤을 춘다. 세상에 나는 이렇게 멋진 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는 흥수의 말에 혹시나 재희가 결혼해서 살다가 흥수의 집에 돌아오는 뒷얘기도 한번 상상해 본다. 재희라면 그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재희와 흥수가 그렇게 살아내는 동안 나도 어떻게 살다보니 어른이 되었다. 그들이 당당한 걸 보니 나도 지금껏 버텨온 것만도 좀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나의 치졸하고 사랑스럽지 못하고 사실은 지저분했던 20대도 그 자체로 충분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대도시의 사랑법’에 몹시 감사한다. 몇 번 더 보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또 있겠지 싶어 또 보러갈까 한다. 그 뒷얘기들까지 해준 원작 소설은 고마워서 여러 번 읽을 예정이다. 다른 책도 읽어야 하는데, 어쩌겠나. 재밌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