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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글 Dec 20. 2024

77세 중에서 제일 귀여운 할머니

“나 네가 OO년생인지 처음 알았네? 맨날 모르겠던데.”

병원 도착 후 입원 전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보호자란에 쓰인 내 생년월일을 보며 엄마가 빙긋이 웃었다. 딸이라곤 나 하나인데 아직도 내 나이를 잘 기억 못하는 우리 엄마다. 평생 장사하며 가게에 쌓인 물건들의 위치나 가격은 누르면 튀어나오는 자판기처럼 손님들에게 툭툭 잘도 알려주면서 내가 몇 살인지, 몇 학년인지는 늘 잊어버리곤 했다.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는데 이제는 그게 엄마가 열심히 몰두해서 사느라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결과 엄마의 방광에는 훈장처럼 작은 혹이 생겼다.


얼마 전 내가 ‘방광연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엄마도 방광문제로 심심찮게 고충을 겪고 있던 터라 내가 소개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엄마의 방광에는 혹이 발견되었다. 일단 모양은 미니 양배추 마냥 1센티미터 정도로 작고 양성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종양은 수술을 해서 조직 검사를 해 봐야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급히 수술 날짜를 잡고 이틀 전 엄마는 입원을 했다. 나도 큰 아이 입시가 무사히 끝나준 덕에 홀가분하게 내려와 엄마의 간병을 시작했다.


엄마와 딸은 둘도 없이 친한 사이다.

하지만 너무 친한 탓에 붙어 있으면 사흘을 못 넘기고 싸우는 법이다. 간병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극도로 피곤하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돈을 받고 일하는 남남이면 그래도 성질을 꾹 참아보겠는데, 하지 말라는 걸 똥고집 피우며 하는 엄마를 보면 나도 참다못해 폭발을 한다. 내려올 때 절대 싸우지 않고 잘 달래며 병간호를 잘 해 보겠다 맹세했지만 하루도 못 넘기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일단, 엄마는 평생 기침을 달고 살았다. 먼지 많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늘 목에 뭔가 낀 듯 답답했던지 가래를 뱉어내듯 카악 소리를 내며 목을 씻어내곤 했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얼마 전 코로나를 앓고 난 뒤로 그 목기침 소리는 더 요란해졌고 수술 전 꼭 치료를 다 받으라는 나의 종용에도 엄마는 그냥 기침을 하는 채로 입원을 했다. 목감기 약을 먹어봤으나 듣지 않더라는 당당한 핑계를 대며 말이다. 엄마는 고집이 세다. 나는 잔소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교수를 찾아 수술을 받기로 했지만 수술 전날 만난 교수는 이미 계속된 수술과 진료로 얼굴이 흙빛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이고, 선생님 얼굴이 왜 이러세요? 너무 안 좋아 보이세요. 괜찮으세요?” 나의 오지랖이 시작되었다. 간호사들은 못 참고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의사도 웃더니 “제가 내일 큰 수술을 하고 어머니 수술하고, 환자를 60명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 주엔 140명을 봅니다.”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유머코드도 같이 풀려서, 자기는 색맹이 아니니 피가 하나도 안 보이게 상처부위 잘 지지고 나오겠다는 등 재미나게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위험성을 늘어놓을 때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취가 깨고 나면 엄청 아픈 수술이니 꼭 인내심테스트 하지 말고 진통제를 투여하고, 무엇보다 복압이 올라가지 않게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때도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방광종물 수술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혹만 떼어 내는 게 아니라 그 밑에 근육층까지 칼로 도려내고 지져내는 수술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수술 후 복압이 올라가는 것이다.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발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들거나 해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배에 힘이 들어가고 그러면 수술 부위가 터져서 재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 자체는 짧은 시간에 끝났지만 하루 이틀 정도를 꼼짝 앉고 똑바로 누워서 방광으로 생리식염관주액을 집어넣어 세척을 해서 요도에 꽂은 관으로 바깥으로 배출시켜야 했다. 커다란 소변 받는 통에 쉴 새 없이 차오르는 액체를 갖다 버다. 세척액은 한 시간도 안 돼 다 소진되었고 3리터짜리 세척액을 4,50분 단위로 갈아 끼웠다. 그러나 엄마는 밤새 계속 쉬지 않고 기침을 해대서 가뜩이나 두툼한 배가 계속 들썩거렸고, 피가 살짝 비치면 나는 사색이 되었다. ‘엄마, 좀 그만 기침 해!!’


수술 하고 난 후 그 커다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는 몹시 순해 보였나보다. 수술 방에 같이 있었던 남자간호사가 와서는 “마취가 깰 때 숨겨놓은 성질이 나오는 법인데, 환자분은 순하신 거 보니 말을 잘 듣겠다.”며 칭찬을 늘어놓을 때 나는 믿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남들은 아파죽는다는 방광이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는 77세의 이 할머니는 간호사들로부터 멋있다는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혈당검사를 위해 손가락 끝에 찌르는 바늘이 너무 아프다고 징징거렸으며, 습관적으로 기침하고 뱉어내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목에 무언가가 걸렸다며 쉬지 않고 뱉어냈으며, 최근 귀가 어두워져 내가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해서 계속 딴 소리를 해댔다. “뭘 해도 좋다.”하면 “목욕은 안 해도 된다.”고 답 하는 수준이었다.


6인실이 외롭지 않고 좋다던 엄마는
결국 나한테 엄청 야단맞고 1인실로 옮겨졌다.

나는 보호자로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를 위해 크게 소리쳐야 했고, 전신마취 후 자꾸 잠에 빠져드는 엄마를 깨워야 했다. 의사가 9시간정도는 깨어 있어야 선망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장난도 쳐 보고 재미난 영상도 보여주고 내 나이 거의 50살에 춤도 춰보고 노래도 해 보았지만 또 빙긋이 웃으며 잠에 빠져드는 엄마는 답이 없었다.

눈을 까뒤집어 올려보고, 뺨을 톡톡 쳐 보고 문지르고 깨우는데도 눈을 감아대는 엄마가 문득 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엄마는 점점 아기가 되어 가겠지. 그리고 나는 점점 할머니가 되어 가겠지. 너무도 당연한 진리가 차가운 얼음처럼 몸에 와 닿았다.


어제 낮부터 오늘까지 지금 나는 식염수 세척액을 30팩 쯤 뜯어 걸었다.


내일 퇴원 때까지 몇 팩을 뜯어야 할까. 파란색 뚜껑을 비틀어 따야 하는데 너무 많이 따다 보니 손가락이 다 벗겨지고 멍이 들었다. 지금은 잠시 기침을 멈추고 곤히 잠이 든 귀여운 아기 같은 엄마. 깨면 또 내가 뚜껑 따줄 테니 내놓으라고 떼를 피울 테지. 배에 힘주는 행동 하면 안 된다고 나는 소리를 지르겠지. 엄마가 잠결에 휴지를 소변 통에 던지고 또 잔다. 꿈이라도 꿨나보다. 이틀이나 못 잤으니 많이 피곤하겠지. 이제 깨면 정말 아기 달래듯 잘 해줘야지. 어쩌다 보면 그 큰 눈이 더 귀여워져서 정말 아기가 되어버리다가 언젠가는 엄마가 많이 그리워질 날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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