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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문방구가 사라졌다

by 소리글

둘째가 두세 살 무렵이었다. 상가 5층에 있는 학원에 첫째가 수업을 가면 둘째는 나와 함께 1층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교 후 그 시간에는 나 같은 학부모들로 카페가 꽉 차곤 했다. 그들과 수다를 떨다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아이들이 내려오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씻기고 저녁을 먹이는 일상이었다. 그 카페 마주 보는 곳에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학원이 끝난 뒤 날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소정의 돈이 들었다. 아이들은 문방구로 몰려가 우리 눈엔 별 쓸모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설레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사왔다.


당시 기저귀를 뗄 무렵이던 둘째도 그 문방구로 언니와 함께 아장아장 들어가곤 했다. 그리곤 가끔 그 문방구 구석에 가만히 서서 기저귀에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폼을 보면 딱 표가 났다. 처음에 나는 문방구 사장님께 너무 죄송해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다시는 애를 문방구에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사과를 했다. 그럴 때면 맘씨 좋은 사장님 부부는 “애가 여기가 편한가 봐요. 놔둬요. 자꾸 뭐라 하면 애 스트레스 받아요.”라며 웃어넘겼다. 아니 왜 평소엔 기저귀를 잘 가리는 애가 그 가게 구석에만 가면 큰 볼일을 보고 오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둘째는 그녀만의 안전지대에서 기저귀를 완전히 뗐다. 그 애가 지금 17살이다. 그리고 이번 달 말, 그 문방구가 문을 닫았다. 7천 세대가 사는 우리 아파트에 하나 남은 문방구였다.


문방구는 바로 옆 초등학교 덕에 늘 북적였다. 학기 초에는 바구니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담아 결제하기 위해 문방구 밖까지 줄을 서야 했다. 색연필부터 청소용 빗자루 세트까지 없는 물건이 없었다. 사장님 부부의 손에는 이미 학년별 필요한 문구 리스트가 쥐어져 있었고 몇 학년, 몇 반인지만 대면 바구니에 준비물이 착착 담겼다. 아이들은 그 곳에서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고 엄마들도 아이의 친구얼굴을 그렇게 익혔다. 엄마들끼리도 곁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이웃이 되어갔다. 그 때 문방구는 단순한 가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문방구는 몇 년 후 지하로 자리를 옮겼다. 더 큰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부부는 우리 둘째가 그 곳에서 큰 볼일을 본 덕에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엄마 없이 친구들과 문방구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나도 그 곳에 갈 일이 뜸해졌다. 하지만 아이가 준비물을 잊어버리고 가면 뛰어가 사다줄 수 있는 문방구가 여전히 곁에 있어 든든했다.


코로나가 터졌다. 세상은 비대면 업무를 종용하며 문을 닫은 채 굴러갔다. 온라인 익일 배송 시스템은 겁에 질린 우리 생활을 훨씬 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동네 상가들을 텅 비게 만들었다. 불황의 늪은 생각보다 길고 깊었다. 문방구도 시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저출산으로 2012년에서 2019년 사이에 6천개의 문방구가 폐점했다는데, 코로나 시국에 문 닫는 속도는 어땠을까. 학교에서는 준비물을 최저가 입찰로 구입해 미리 나눠주었고, 무인매장, 다이소 같은 대형매장 등의 인기에 밀려 동네 문방구는 생기를 잃어갔다.


얼마 전 문방구에 인주를 사러 들렀는데 여자 사장님이 나를 보고 “이사 가지 않았어요?”하며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다 커서 올 일이 없었다고 멋쩍게 대답하니 요즘은 젊은 엄마들도 예전처럼 문방구를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 반가워하면서도 씁쓸한 표정.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문을 닫을 결정을 했던 후였던 것 같다. 그 곳을 몇 년 만에 갔으니 문방구를 외면했던 건 다름 아닌 내가 아니었을까.


그런 나에게도 문방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문방구에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존재했다. 전과, 공책, 연필, 책받침부터 명찰, 자잘한 장난감이나 종이인형, 불량식품, 친구생일 선물로 사줄 스티커나 기분 따라 색이 변한다는 반지까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모든 것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뾰족한 연필에도 구멍 나지 않는 질 좋은 종이로 만든 공책들의 등장에 책받침이 사라졌듯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사멸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지금은 어떤가. 필기조차 디지털화 되어 내 아이들의 가방 속엔 공책 대신 전자패드가, 연필 대신 전자펜슬이 들어있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시간이 흐른 후 그런 디지털 기기들조차 추억 속에 떠올리게 되려나. 다음 세상에는 어떤 것들이 그것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가슴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건 책받침 사진 속 잘생긴 연예인에 대한 기억이고 종이인형을 오려가며 함께 놀던 친구의 얼굴이다. 문방구 속 그 사소한 것들이 있었기에 나는 울고 웃고 성장했다. 추억은 힘이 세다. 그 문방구 속 물건들이 잊혀 지지 않고 하나하나 다 생각나는 건 그것들이 나의 일상에 절대적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귀여웠을까. 공중에 뽀얗게 먼지 쌓인 채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돼지저금통들과 문방구 앞을 지키듯 쪼그려 앉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락기를 흔들어대던 아이들의 뒤통수는 동글동글 참 많이도 닮았었다. 아이들은 자랐지만 그 돼지저금통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반달모양 눈과 입모양으로 웃고 있다. 추억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잠자고 있는 기억을 깨워 나를 키워낸 추억의 물건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겹겹의 행복한 기억들로 만들어진 인간인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문방구에서 제일 좋아했던 건 얼린 요구르트였다. 주인할아버지가 가위로 윗부분을 톡 잘라낸 후 돌돌 벗겨내고 나면 연한 주황빛 속살을 드러내던 그 달콤새콤한 얼음덩어리. 입 안에 넣고 쪽쪽 빨며 집으로 향하면 그게 내 하루의 작은 행복이었다. 당시 나의 행복은 그토록 사소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을 행복하게 했던 문방구는 어떤 모습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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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