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대체 안 아픈 곳이 어디니?"였다. 여행을 가다가도 내가 탄 차는 멀미가 심한 나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위장은 어찌나 약한지 라면 하나만 끓여먹어도 손가락을 따서 검은 피를 봐야했다. 변비는 기본. 과민성대장군으로 응급실 실려갔다가 관장하고 머쓱하게 나온 적도 있고 발목은 허구헌날 넘어져서 사혈침에 부황에..결국 발목인대까지 끊어먹고 허리디스크까지 겹쳐서 결혼 전 6개월을 집에 누워만 있다가 식장에 들어갔다.
"절대 리콜은 안 되네. 자네가 잘 데리고 살게나" 부실한 내가 소박맞고 돌아올까봐 부모님은 겉으로는 서운한 듯 남편 손과 내 손을 꽈악 잡아 이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병에 걸렸고 중년에 들어서야 면역에 이상이 있어 자주 아픈 병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약으로 주사로 조절해가며 잘 버티고 있다. 어차피 이 나이되면 사는 건 버티기다. 누가 더 오래 버티냐 아니겠는가. 매달리기는 일초도 못 버티지만 인생이라는 실전에서는 무수히 좌절하면서도 잘 버텨오고 있다. 장하다!
나는 현재 직업이 없다. 그렇다고 꿈이 없으랴. 나는 드라마를 사랑한다.드라마 작가가 되려고 공부했고 잠시 계약이라는 것도 해보아서 그 업계에 발가락정도는 담궈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질때마다 떠오르는 드라마 명대사들이 있다.
인생에도 신호등 같은게 있었으면 좋겠다. 멈춰, 위험해, 안전해, 조심해, 오른쪽으로가, 왼쪽으로가. 그렇게 누군가 미리미리 말해 줬으면 좋겠다.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2'중에서)
Boulder. Colorado. 2003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너무 멋지지 않은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시간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직 넘어가지 않은 해의 기운을 머금은 하얀 구름과 물 빠진 하늘, 그와 동시에 건물들에 갑자기 찾아드는 짙푸른 어둠. 캬아. 정말 매력적인 조합이다. 나는 이 혼돈의 시간을 몹시 사랑한다.
사실 요즘 나는 그런 낮과 밤이 뒤섞인 상태이다. 이런 시간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태를 살아내는 건 쉽진않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 누가 신호등에 불을 켜든 수신호로든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브런치에 드라마 에세이를 몆 편 써서 보냈더니 한번 써보라고 선뜻 공간을 내 주었다. 초록불이다. 신난다. 이제 좀 더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져볼 셈이다. 괜찮겠지? 아니야, 돌아갈까. 아니. 그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잘 하고 있어. 이번엔 열매의 목소리로 혼자 답을 가늠해본다. 뭔가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다. 그래서 마음이 헷갈릴 때, 드라마는 처방전이다. 처방전을 흔들며 걷다보면 벌써 마음이 다 나은 듯 개운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에 애 둘 키우는 평균의 아줌마로 사는 게 어디 쉬운가. 결코 쉽지 않다.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많이 좌절해보고 아파본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저는 세상에서 아픈 게 제일 자신있어요!"
솔직히 통증은 아무리 아파봐도 적응하기 힘들다. 방광염으로 일년째 고생중인데 진짜 아프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더 단단해졌고 지금도 잘 살아내고 있다. 이 사실 하나는 자신있다.
난 아파도 잘 웃는다. 바꿔 말하면 나는 어딘가 얻어맞아도 오뚜기처럼 잘 일어났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그때마다 날 일으켜세운게 무엇이었는지, 어떤 이들이었는지 자랑 한 번 해보려 한다. 드라마라는 처방전을 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