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글 Jul 30. 2024

내게도 육아 어벤져스가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명대사 다시 읽기


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든다.

     

해질 무렵 요란하게 달리는 소독차 뒤로 흙냄새와 아이들의 땀 냄새가 뒤섞이는 시간을 기억한다. 노을 지는 양철대문 너머로 밥 때를 알리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손톱 밑이 까매진 채 코를 닦고 바지춤을 툭툭 털며 일어나던 친구들, 모래로 밥을 짓던 나뭇가지를 아쉬움에 질질 끌며 내일을 약속하던 골목어귀의 나를 기억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혼자보다는 여럿이 있어야 즐거웠기에 우리는 그저 집 앞을 나서면 모두가 친구였다.

나는 이제 그때 저녁을 짓던 엄마가 되었고, 드라마 응팔을 보며 쌍문동 다섯 엄마들도 골목을 지키는 친구들이었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이웃들이 있다.

나는 단지 내 초등학교가 두개나 있는 큰 아파트 단지에 산다. 학교가 끝나면 열 개가 넘는 놀이터가 아이들로 꽉 찬다. 요즘 세상엔 학원 가느라 아이들이 놀이터에 안 보인다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동네다. 그렇게 해질 무렵까지 소독차만 없을 뿐이지 우리는 공원이건 어디건 밥까지 싸들고 나와 퍼 먹이며 아이들을 같이 키웠다. 우는 애들을 달래며 놀이터에서 우리는 함께 육아를 배웠다. 좋은 엄마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당탕탕 전쟁을 겪으며 다듬어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들이 크면서 우리도 성장했다. 그 당시 우리들이 나눈 것은 감히 말하건대 전우애였다.

     

행복한 착각에 굳이 성급한 진실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가끔은 착각해야 행복하다.

     

큰 딸 송이는 초등학교 때까지 틱이 있었다. 눈을 깜빡이고 코를 찡긋댔으며 놀이터의 그네를 똑바로 타기 힘들 정도로 몸도 흔들렸다. 나중엔 길을 똑바로 걷기 힘든 강박까지 겹쳤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는 모든 것이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틱은 유전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아이의 타고난 기질 영향이 크다. 틱은 지적하거나 아는 체 할수록 심해진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초보엄마였기에 보지 않으려 해도 그 부분만 자꾸 보였고 내 마음이 괴로워질수록 송이를 돌보는 게 버거워졌다. 친정도 시댁도 지방이라 혼자 눈물을 삼키는 내게 이웃들의 도움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전혀 못 봤는데? 밥 잘 먹고 잘 놀고 너무 예쁘게 잘 있었어.” 놀이터투어가 끝나고 나면 엄마들은 세 살배기 둘째가 있는 나를 위해 서로 나서서 송이를 데리고 가 저녁도 먹이고 돌보아 주었다. 잠시라도 마음에 숨 쉴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았다. 분명 그들도 힘들었을 텐데 어찌 그리 능숙하게 다들 육아를 잘 해내는 것 같던지, 내게 그들은 진정한 육아 어벤져스들이었다. 송이가 틱 증상을 보였는지 걱정되어 물어보아도 엄마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은 송이의 틱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인 것 같은데도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어벤져스들의 아이가 입원이라도 하면 곰국을 배달하고 레몬청이라도 만들어 나누었지만 그들은 또 반찬과 떡과 과일을 능숙하게 다시 보내왔다. 티브이 속 쌍문동 골목에서 나누던 정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돌고 돌았다.

     

응팔에서 선우 엄마는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동네 이웃들과 싹싹하게 형님, 동생하며 어울리던 그녀도 시어머니가 자기 집을 저당 잡고 대출을 받아 천만원을 상환하지 않으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자 울며 토로한다. “성님아 인생...이래 내만 힘드나. 내만 이래 힘든교.” 자식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이웃에게는 말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너무 큰돈이라 빌리지 못해도, 아이가 아픈 걸 낫게 해줄 수 없어도,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같이 울어주고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엄마들의 토로는 그냥 하소연이 아니라 진심을 나누는 것이다. 그 진심에 거짓말이 조금 섞여도 상관없다. 그걸 착각이라고 쳐도 그 착각으로 잠시 행복하다면 힘든 이에게는 그 시절을 버티는 힘이 될 터이다. 늦은 시간 도시락을 못 먹고 돌아왔던 날, 선우는 계단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맛없는 도시락을 다 비우고 들어온다. 엄마의 형편없는 음식솜씨를 알지만 늘 맛있게 먹었다 대답하는 효자이다. 나중에 의사까지 되니 요즘 시대에는 더없는 효자지만 어쨌든 그 힘든 시절 선우 엄마는 아들이 주는 행복에 고된 현실을 잠시 잊었을 것이다. 어벤져스들이 송이의 틱을 모른 척 해 주는 동안이라도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에는 가슴이 담긴다. 그리하여 말 한마디에도 체온이 있는 법이다.

     

송이의 틱은 서서히 좋아졌다. 성인이 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요즘 송이는 생일이면 동네이모들에게 커피 쿠폰을 보낸다. 이모들에게 얻어먹은 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송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아껴주었던 이웃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커 주었다. 이모들의 밥이 정말 맛있었다는 그 말 한마디, 커피 한 잔에 눈물이 핑 도는 건 그들뿐이 아니다. 행복은 전염되나 보다. 송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기억은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 송이의 커피 쿠폰 한 잔에 따뜻하게 데워졌다. 난 요즘 송이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꽃잎이 지면 다 끝난 줄 알았어. 근데 그 꽃잎이 지고 나면 또 열매가 맺히더라고. 내가 그걸 까먹어부렀어. 내 꽃잎만 진다고 서럽고 아쉬워만 했지 내가 그걸 못 봤네. 회사에서 잘리기는 했어도 자식농사만큼은 참말로 겁나게 잘 지었어. 이런 부모 마음을 자식들이 언젠가는 응답할 것이네, 고맙다고.

     

인생은 화무십일홍이라 국화꽃도 한 철이고 열흘 붉은 꽃잎 없다고 한다. 명예 퇴직한 아빠를 위해 감사패를 준비한 덕선이 삼남매에게 감동한 동일은 자식들로부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전 국민이 응팔 속 덕선이 남편 찾기에 몰두할 때 나는 처음이라 서툴렀던 부모와 그 마음을 알아가는 자식의 이야기, 그리고 그 버거웠던 시간들을 함께 했던 그가족 같은 이웃들 이야기를 사랑했다. 시절인연이라도 좋다. 나는 내 육아 어벤져스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며 자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화무십일홍을 떠올리니 예전에 본 패션잡지의 기사가 생각난다. 코로나가 창궐했던 2020년 중반, 보그(VOGUE)지는 희망이라는 주제로 전남 지역에 사는 100세 전후의 할머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들의 시골집에서 고운 한복을 입히고 화사한 꽃을 가득 들린 채 찍었는데 할머니들은 젊은 전문모델들 못지않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꽃 같은 세월은 아니지만 꽃처럼 피어 계신 할머니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느냐는 에디터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할머니들의 얼굴은 살아온 세월이 새겨진 주름으로 가득했지만 그 주름 속에서 경외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건 언제나 우리 자식세대들이다. 그 긴 세월동안 풍파 속에서 자식을 키워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늦었지만 나도 이제야 응답한다. 감사하다고. 아직 그 분들 인생의 반 밖에 못 걸어온 내가 더 나이가 들면 내 자식들도 알아줄까. 가득해질 내 주름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게 제일 자신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