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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Dec 17. 2020

나는 매일, 허리를 폅니다.

Day 1

1년 전 뒤 따라오던 차가 제 차를 박는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 검사를 했더니 5번, 6번 척추 사이에 약간의 디스크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일하느라 자주 병원에 가진 못했지만 한 달 정도 추나 치료를 받았습니다. 상대방과 합의 후 병원에 방문한 마지막 날 의사 선생님은 평상시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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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사고 때문이라기보단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학창 시절 온종일 고개를 박고 공부를 했고 마치면 학원에서 고개를 박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학 4년간은 과제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 당시 누군가 우리의 전공 교실을 방문했다면 ‘최대한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가기’란 타이틀을 걸고 서로 경쟁 중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취업 후 디자이너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면에 머리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몸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분, 일 번부터 이십육 번 척추까지 멀쩡한 곳이 없어요.’라고 말했더라도 납득해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히려 이 정도로 견뎌준 나의 중심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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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다짐이 눈앞에 할 일로 금세 잊혔을 뿐입니다. 그러다 누가 옆에서 자세를 지적하면 뜨끔하며 괜스레 기지개를 켰습니다. 또는 뻣뻣하게 긴장된 허리에 고통을 느껴야 겨우 누워서 몸을 추스르고 짧은 스트레칭을 해냈습니다. 2초도 걸리지 않는 일을 20년이 넘도록 고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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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법칙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휴대폰 속 짧은 영상에 감화되어 매일 계획을 고쳐 적습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속 명언으로 어제와 다른 하루를 다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내 몸과 머리가 알고 있는 습관 하나 고치지 못한다면 부질없는 일입니다. 후회했던 마음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더라도 지금쯤 허리 펴기에는 전문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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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펴기와 같이 하루하루를 실패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버릇이 있습니다. 이제야 그것들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치기로 합니다. 백일에 걸쳐 느리지만 단단하게 ‘만트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잘난 누군가의 논리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주문입니다. ‘나는 매일’로 시작하는 글귀 뒤에는 하루 하나씩 절실하게 원하는 행동이 붙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 가지 행동이 담긴 만트라가 완성되면 그다음 백일 동안 이 주문을 행하려 합니다. 거창하고 어려운 일은 내 인생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바꿔 말해 나를 안정시키는 것은 오히려 작고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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