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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20. 2020

9. 삶의 터전

하루의 대부분이 훌륭해지는 방법

9. 삶의 터전




같은 직종에 종사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농담은 왠지 더 즐겁다. 고된 일을 이기려고 부르는 노동요와 같달까. 경직된 얼굴을 풀어주는 업무 속 말장난은 회사도 사람 사는 곳임을 깨닫게 한다. 견적 시트를 보며 고민을 하던 중 동료가 청첩장을 건넸다. 작은 편지 속에는 누군가의 아들과 딸에 새로운 시작이 들어있었다. “시간 되시면 식사하러 오세요.”라며 돌아서는 수줍은 인사에  미간 위로 모았던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들과 함께 일을 한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동료를 위해 내어 주는 잠깐의 관심은 괜스레 더 눈시울을 붉힌다. 모니터에 비친 찌푸린 표정 앞으로 올려놓는 커피 한잔의 손길은 마음을 녹이기 충분하다. 단순한 감정 기복에 의한 불이익을 느낄 때도 있었다. 맞대고 있는 만큼 생기는 마찰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를 배우고 시간을 채울수록 일과 삶은 구분되지 않음을 느꼈다. 오히려 마음속 나와 회사 속 나를 다르게 취급했던 스스로 모습에 반성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 그 속에서 내 행동을 돌아본다. 돈만 벌어가겠다며 웅크렸던 작은 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누구도 이익만 보려는 속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업무 중에 뻔히 보이는 이기적인 행동에 가장 분노하고 힘들어했으니 말이다. 딱딱한 순간 동료를 위해 세심한 농담을 던져보기로 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배려해 보기로 했다. 삶이 늘 그렇듯 결국 준 것을 되돌려 받기 마련이다. 잃을 것을 겁내며 관계를 포기하기보단 감정을 터치하는 것이 하루의 대부분을 괜찮은 날로 만드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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