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뇌 활동 감소는 생각을 단조롭게 한다.’ ‘늙음으로 감정 제어가 어려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위축된 전두엽은 고정관념을 만든다.’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기사입니다. 이를 떠올린 후 오늘 상사와 겪은 일을 생각하면 크게 기분 나쁠 것 없습니다. 그에게는 오히려 내가 이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자연의 섭리지만 몸과 함께 뇌가 늙는다는 것은 무섭습니다. 훗날 나 역시 늙음이란 단어 뒤에 숨어 손아랫사람이 맞추기만 바라는 상상은 아무래도 옹졸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것은 점점 슬픈 일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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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나 때는 말이야'는 아주 자연스러운 구절입니다. 이룬 것들은 금방 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무기 삼는 방식의 언어는 생각보다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앞에 케케묵은 주장은 오히려 변한 세월 앞에서 달라지지 못한 자신을 드러냅니다. 나의 과거가 소중하다면 남의 과정 또한 존중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노력을 싸잡으며 지금의 것은 틀렸다는 논리는 과거의 영광만 기억하다 굳어버린 어린이의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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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카페에 앉아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자식들을 키우다 40살에 첫 소설을 써서 등단. 소녀 같은 문체와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내용. 나이를 잊은 듯한 꾸준한 활동까지. S대 국문학과에 입학할 만큼 수재였기에 언제든 멋진 책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위대함은 학벌이 아닌 삶을 묘사하는 시선입니다. 드문드문 알게 된 청소년들에게 멋대로 조언하기보다 작가님의 책을 추천하곤 합니다. 책 속에 나이와 무관한 성찰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 뇌 활동이니 전두엽이니 그런 게 다 뭐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더 멋진 어른들은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만큼이나 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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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모습은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순진한 척 하기엔 이미 많이 늙었습니다. 늘어난 주름을 보며 언젠가 찾아올 노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 날의 나는 여전히 듣고 배우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데 온 힘을 쏟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도 나를 강요하지 않는 어른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나 하나 알기에도 세월이 참 길었다고 재밌는 것도 힘든 것도 산더미였다고 너스레를 떨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름의 시대를 즐기다 따라오는 이에게 기꺼이 바통을 넘겨주는 어른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