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6
2021년 33살의 나이. 아기 엄마가 된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출산 이후 오랜만에 만난 그녀들은 전쟁을 경험한 용사처럼 단단해진 모습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넓어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야는 먼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세상 가장 안전하게 안긴 아이가 변화의 동력이 되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함께 맥주나 치킨을 즐기던 친구들이 어느새 음식과 영양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하고 슬기롭습니다. 산모가 된 순간부터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건강 프로에 나오는 웬만한 건강 박사와 견주어도 손색없습니다. 대화 도중 조금만 부실한 내색을 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몸에 좋은 음식을 권합니다. 아이가 먹는 유기농 블루베리를 씻어다 내주기도 합니다. 처녀 때와는 다른 그들의 포용력에 엄마라는 이름의 따뜻함을 느끼며 어제 내가 먹은 것들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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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다니면서 '건강하게 먹겠다.' 선언하는 행위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큰 반발을 사는 행동입니다. 맛있는 음식이야말로 대화에 매개체이며 부딪히는 술잔으로 서로 부족함을 맞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절주를 선언하거나 다이어트를 시도하려면 우스개 소리로 핀잔을 듣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그냥 대충 살아. 살면서 크게 즐거운 일이 뭐가 있다고 먹는 기쁨을 포기하니?' 회식을 부추기며 함께하자는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매번 제자리걸음을 걸었습니다. 몸이 거부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20년 넘는 세월 손에 들려지는 데로 먹고 마셨습니다. 과한 칼로리나 식품첨가물로 찌든 몸을 이끌어 온 것은 건강이 아니라 젊음에게 빌린 빚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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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이래 음식을 절제한 적이 없습니다. 폭식이나 과음 후 겪는 배변의 고통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소화가 안 돼 밤잠을 설치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 음식을 모두 먹어 치웠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식단은 숙취, 식체, 장염을 번갈아 가며 몸을 혹사했습니다. 그동안 약해지고 회복하는 패턴의 횟수만 줄였더라도 좀 더 윤택한 삶의 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나쁜 음식을 과하게 혹은 급하게 먹는 행위로는 하루를 살아낼 영양분을 만들지 못합니다. 축적된 가공식품 찌꺼기는 암과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유발하고 트랜스지방은 혈관을 막습니다. 갈수록 피곤하거나 몸이 느려지는 기분은 단순히 과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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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몸의 신호에 귀기울일 때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건강한 늙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합니다. 아이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처럼 나 자신을 위한 식단을 작성합니다. 섭취와 소화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영양소와 에너지 간의 관계를 이해합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물, 비타민까지 몸의 균형을 위해 제대로 사용될 수 있는 음식을 흡수합니다. 적절한 영양분으로 생성한 호르몬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게 할 것입니다. 바쁜 일상과 주변의 시선에 맞서는 번거로운 공부가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가는 만큼 천천히 씹어 넘긴 영양은 균형 잡힌 삶을 이뤄 줄 거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