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주차를 마치고 다시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미 자동차로 지나치며 본 길이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적게는 몇 백 킬로미터에서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찾아오게 하는 힘이 있다. 비행기와 열차, 자동차와 버스도 버젓이 다니는 21세기에 도보로 걷는 길을 찾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또는 그 이유를 찾고자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감동이고 숙연하게 했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이유,
자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평생 질문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곳을 찾은 우리들도 그렇고 말이다.
대성당 안은 순례자들과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잠시 앉아 있다가 광장이 있는 계단으로 나와 순례자들 주변에 앉았다. 순례자들은 계속해서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새하얀 백인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발갛게 익은 모습이었다. 걸음걸이 역시 한결같이 지쳐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착한 감격에 겨운 표정들은 당장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주변의 순례자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했다. 나는 순례길을 함께 걷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눈물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카메라를 들어 최고의 순간을 담았다.
대성당 주변은 어디든 순례자들의 물결이고 늘 축제인 것 같았다. 골목을 돌다가 다시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해가 기울고 있는 거리 풍경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었다. 해질녘 여행지에서 세상의 반은 어둠으로 나머지 반은 노랗게 물들고 있는 풍경에 넋을 놓고 걷다보면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추고 또 멈추게 된다. 거리 바닥에 표시된 산티아고 순례길의 조가비 표식을 찾아보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대성당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여행자의 하루가 깊어지고 그리움이 눈을 떴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에 있는 오래된 빠에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올려다 본 하늘엔 하얀 반달이 걸려 있었다. 가로등이 희미한 골목 끝으로 걸어가면 중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도시의 가로등 빛이 더 진해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호텔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난 다시 걸음을 돌려 푸른밤이 창밖으로 보이는 카페를 찾아 들었다. 이 순간 방에 들어가 누워있기엔 모든 순간이 아까웠다.
도시를 밝히는 가로등이 별처럼 반짝이고 하늘이 더 진한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순간 앞에서 나는 달이 한참 기울 때까지 카페 창으로 보이는 골목 풍경을 스케치했다.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보내는 마지막 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