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나선 출근길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사람들로 지하철 안은 몸을 돌리는 것조차 힘들고,
정장 셔츠에 멘 넥타이도 목을 점점 조여오는 듯하다.
힘든 출근길 전쟁을 치르고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면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들로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직 시작 하지도 않은 하루가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순간 이동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만 드는 게 아닐 터!
이 겨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지구 반대편 얼음왕국, 아이슬란드로 초대한다.
우주를 주제로 한 영화, <인터스텔라>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아이슬란드 스카프타펠에서는 하루 세 번 직접 빙하 위를 걸어볼 수 있는 시원한(?) 트래킹을 체험할 수 있다. 수 만년 전에 생겨난 거대한 빙하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가슴 뛰지만,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실제로 내 눈 앞에 펼쳐지면 이국적, 아니 차라리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 어디쯤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어 예전에 비해 많은 빙하가 사라지면서,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빙하 트래킹은 요쿨살론, 스카프타펠 등 아이슬란드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데 어디에서 하든 예약은 필수다!
영화 인터스텔라 개봉 이후 외계 행성을 걷는 기분을 느껴 보려는 관광객이 늘어나
예약을 하지 않고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날 역시 이미 풀 북 상태라
무턱대고 찾아왔다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들이 부지기수였다.
*예약은 다음 사이트에서 가능하다
트래킹을 스카프타펠에서 시작할 경우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주차장으로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찾아가면 된다.
빙하 트래킹은 시간대별로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하루 종일 진행되는 데이 투어까지 있으니
자신의 일정에 맞춰서 선택하면 된다.
필자의 경우 다음 일정이 있어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빙하 트래킹과 아이스 케이브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비용은 10,990 ISK으로 한화로 약 12만원 정도였다.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면 빙하 트래킹에 필요한
헬멧과 지팡이, 아이젠 등 기본 장비들을 제공해주는데
신발의 경우에는 아이젠 착용이 가능한 등산화를 착용해야하니 참고하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면 빙하 위를 이동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차량을 타고
빙하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게 된다.
여느 트래킹이 그러하듯 빙하 트래킹 역시 날씨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미끄러운 빙하 위를 걷다 보니 날씨에 따른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워낙 갑작스럽게 변하는 아이슬란드의 날씨 탓에 오전에 트래킹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오후에는 갑자기 캔슬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출발 전 미리 진행 여부를 체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행히도 필자가 방문한 날은 날씨가 좋아서 트래킹을 진행하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그 다음날부터 강한 눈보라가 몰아쳐서 모든 트래킹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역시 여행이든 인생이든 모든 것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 트래킹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하면 먼저 안전장비를 착용한 다음
트래킹 시 주의해야할 사항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 준다.
빙하 위를 이동할 때에는 가이드가 먼저 길이 안전한지 확인하며 앞장서면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 일렬로 이동하는데 절대 대열을 이탈하지 말고
앞사람이 밟고 간 그대로 따라 걸어야 한다.
빙하 위에 덮여있는 눈 때문에 내딛는 발 아래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본격적인 빙하 트래킹이 시작되면 수만 년 된 거대한 빙하를 마주하게 되는데
처음 보는 멋진 풍경에 그저 감탄사만 흘러나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얼음뿐인 이곳은 마치 빙하기 시대로 다시 돌아간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의 스카프타펠 위를 걸으면서
왜 이곳이 영화 속에서 외계 행성으로 묘사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지구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외계의 행성에 온 기분!
이토록 경이로운 자연을 아끼고 보존해서 우리의 후손들도
오늘 이곳에서 내가 느낀 기분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빙하 트래킹 시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크레바스이다.
크레바스는 빙하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틈으로 그 깊이가
수 미터에서 깊게는 백 미터까지 이른다고 하니 자칫 방심했다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으로 탐사를 나섰던 영국인 과학자 두 명은 실종되어 찾지 못했고,
크레바스에 빠진 염소 한 마리가 몇 년 후 미라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빙하 트래킹은 빙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가이드와 함께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해진 길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트래킹을 하다 보면 빙하 아래 자연적으로 생겨난 동굴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 아이스 케이브를 보기 위해 빙하 트래킹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거대한 빙하 동굴 안으로 들어가 수 만년 동안 꽁꽁 얼어 붙어 있는
빙하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면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 감돌고 있는데
그 영롱한 아름다움은 지구상의 어떤 빛과도 비할 데가 없다.
장갑을 벗고 수 만년 동안 녹지 않은 얼음을 만져보던 그 순간의 감격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끝이 없는 자연의 신비로움 앞에 인간은 한낱 먼지 같은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되고,
겸손함을 배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살아오면서 수많은 길을 걷게 된다.
잘 포장된 도로를 걷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잔뜩 핀 꽃 길을 걸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 만년 동안 잠자고 있는 거대한 빙하 위를 걸을 일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인생에 꼭 한 번은 빙하 트래킹을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