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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드 Sep 01. 2023

우리 사이도 통역이 되나요? (2)

외국어 동시통역보다 훨씬 어려운 그것, 당신과의 대화

지난 이야기는...


저를 아세요???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된다.
때로는 그 거리가 물리적이기만 할 때도 있고 심리적이기만 할 때도 있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인데도 전혀 이해가 안 될 경우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 마음의 거리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다. 외국에 간 지 오래인데 카톡 한 번만으로도 예전의 친근함이 돌아오는 친구라면 그 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아무튼 누군가를 '가깝다'라고 표현할 때는 그 대상에 대해 '좀 안다'라고 자부하기 일쑤다.
실제로 상대방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는 하니까. 

상대방 역시 기꺼이 그 사실을 인증해 준다.


우리는 서로 티티카카가 잘 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미리 파악해 주는 센스가 있어.
말 안 해도 아는 사이야.


문제는 사람이란 복잡한 존재를 그리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성장하든 퇴보하든 어떤 방향성을 가지며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다.
따라서 현재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란 매우 어렵다.


너 내가 아는 그 사람 맞니


예를 들면 이렇다. 


자신의 MBTI 답게 계획성이라고는 젼혀 없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던 동생이 있다고 치자.
어젯밤에도 자정이 지나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와서 널브러지는 모습을 보니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연히 동생을 '게으르기 그지없는 무계획 인간'으로 치부하며 그렇게 대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이라고 뭐 다를까? 


그런데 사실 그날밤, 어떤 계기로 인해 동생은 이런 술모임이 의미 없음을 절절히 깨달은 참이었다.
자신과 달리 모임을 줄이며 공부에 전념하던 한 친구가 원하던 시험에 합격했음을 듣고 현타가 왔다.
밤새 괴로워하며 고민한 후 자신도 이젠 달라지리라 결심한다. 

불과 하룻밤 새 일어난 일이다. 

겨우 눈을 붙인 동생은 <미라클 모닝>을 위해 새벽 5시에 벌떡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출근하기 위해 6시쯤 일어난 나는 그 모습과 맞닥뜨리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 그럼 이 순간, 나는 동생에 대해 알고 있는가?
'당연한' 모습이라고는 없는 오늘 아침의 동생에 대해?

답은 당연히 '모른다'이다. 



아니, 당신은 날 몰라


우리는 누군가를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이 가려진다.
내 머릿속에 쌓인 정보를 뒤지느라 지금 눈앞에 살아있는, 지금도 변화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웬일로 이 시간에 일어났어?" (=너 게으르잖아=판단, 당연시)
"오늘부터 일찍 일어나서 자기계발하려고."
"네가? 갓생 사는 oo 만나니까 자극받았어?" (=너는 못 할 걸=비교, 비난)


찐 남매 사이에 '당연히' 그 정도 대화는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게 바로 '당연시하기' 오류다.
누나의 비웃음은 합리화되고 동생의 상처는 예민함으로 비난받게 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내가 '당연히 아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당연히 알아줄'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사람의 언행을 보듯이 눈과 귀를 크게 열고 집중해야 상대를 알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변화를 순간순간 포착하고 대해야 진정한 소통 능력자다.


너한테는 당연하지만 나한테는 아니거든


두 나라 언어 사이에서 통역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싸움이 날법한 조마조마한 상황이 오히려 더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다.

'내 의사가 100%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라는 사실을 깔고서 양쪽 모두가 대화에 임한 덕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라는 작은 마음가짐 하나가 모든 걸 바꾼다는 사실을 그렇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도 누군가 "당연하지!"라고 시비를 걸어오면 한번 되묻는다.

"뭐가 당연한데?" 

"나에 대해 알잖아!" 하는 말을 들으면 정중하고 차분하게

"사실은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건 그 나름대로 또 다툼이 될 때도 있지만,  최소한 파탄대화로 치닫지는 않는다.
그 어떤 말도 당연한 취급을 받으며 그냥 넘겨지지 않으니까. 



요즘엔 소통의 벽이 느껴지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아래처럼 단계적 전략을 취한다.


1. 상대방=모르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기

: "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나의 언어로 100%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2. 외국인이므로 2가지를 배려하기

: "상대의 말이 이상해도 20% 접고 들어가고, 내 말을 오해해도 20% 접고 들어간다"

3. 그래도 안될 경우 서둘러 대화 정리하기

: "외국인과는 깊은 대화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자리를 마무리한 후 다음을 기약한다" 

4. 믿을만한 통역(?) 섭외하기

: "양쪽 입장을 다 잘 아는 중재자가 있다면 조언을 구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처음 보는 이, 외국인처럼 대하다 보면 조금씩 대화의 숨통이 트이고는 한다. 당연해 보이는 관계에 조금씩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항로가 나타날 때도 있다.


그래도 참 어렵다.
차라리 외국어에 파묻혀 일하고 있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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