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보다 못한 것들이 잘 나가는 거야!!!"
https://brunch.co.kr/@gridpaper/54
가장 심각한 부분은 여기에 있다.
몸과 마음의 최대 성장기인 20여 년 동안, 그 뛰어난 머리 탓에
본인도 딱히 힘들여서 무언가를 얻어본 적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그냥 대충 가볍게 움직여 얻은 결과만으로도 주변에서 찬탄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천재 아냐?
대단하다.
부러워.
어떻게 그게 가능해??
인생 초반, 타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실패 경험 역시 자아상을 한껏 높이는 연료다.
이들에게 노력이란 자신보다 못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며, 전혀 쿨 해 보이지 않는다.
천재성을 타고나지 못한 열등한 존재가 "나는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아서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를 자진해 외치는 몸부림이랄까.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 위해 꼼꼼히 계획하고 지키는 모습마저 루저의 습성처럼 유치해 보인다.
이쯤 되면 '노력하는 자세도 능력의 일부이며 들여야 하는 습관'이라는 진실 또한 영영 멀어진다.
그런 미덕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버리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들에게 좌절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가만히 있으면 현상유지는 되겠지, 하는 바람과 달리 가만히 있으면 내리막만 타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난 가만히 있었을 뿐이야!
억울함을 호소해도 소용없다.
가만히 있음은 곧 고여있다는 것이고 그대로 썩어간다는 뜻이다. 서서히 탁해지고 냄새를 풍기면서.
굳이 복잡한 이론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다.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들의 추락 궤도가 엇비슷한 이유도 그래서다.
이들은 입사하자마자 회사의 '바보 같고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재빨리 파악한다. (똑똑하니까)
이어서 자신을 가르쳐주는 사수 선배와 상사 역시 자신만큼 영민하지 않음을 알아챈다.(역시 똑똑하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시키는 일이나 전수해 주는 스킬까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한 업무 방식을 밀고 나간다.(삐끗하는 순간이다)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감히 이런 부조리 투성이의 조직이 나를 단죄해?' 라며 책임을 회피한다.(이쯤 오면 그 똑똑함을 주위 모두가 알게 된다)
입지가 좁아지고 도와줄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지경에서야 사표를 던지거나(자신을 담기에는 조직의 그릇이 너무 작다고 믿으며) 잘리고 만다(부당해고로 제소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두 번 쓴 맛을 볼 경우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얼른 노선을 수정한다.
아니면 최소한 조금은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해 본다.
그러나 똑똑이에게는 그런 일이 너무도 어렵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의 말발에 이기는 사람도, 번지르르한 그 (개) 논리의 허점을 집어내는 상대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모종의 외로움은 느낄지언정,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신입사원으로서의 적응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메일 눈앞에 놓인다.
여전히 똑똑한 그들은 전과 다름없는 태도로 여지없이 실패를 겪는다.
주변 사람을 돌아볼 때마다
‘저 인간 예전엔 나보다 훨씬 못 했는데 지금은 왜 나보다 잘 나가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는
‘내가 이런 보잘 곳 없는 데 있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가까운 인간관계를 꾸려나갈 때면
’ 난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왜 이 정도밖에 해주지 않는 거야?‘
돌이킬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똑똑지 않은 것들의 도움' 따위 필요치 않았던지라 내동댕이를 쳐버리고는 했다.
이 똑똑이들이 끝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여태껏 아무도 자신을 이기지 못했던 이유는 완벽함 때문이 절대 아니라는 점.
다들 그 (개) 논리에 맞서는 게 피곤하고 답도 없으니 슬슬 피했을 뿐이라는 점.
그 와중에 지치지 않는 자는 오로지 자신뿐이었음을.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마지막 남은 똑똑한 녀석마저 그 길 끝에서 뒤돌아보며 내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