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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드 Sep 25. 2023

나는 왜 '참아야 하는' 사랑만 하는가 (1)

당신, 지금 참고 있나요


나는 내가 참는다고 생각했어.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만 해. 너 저 사람 사랑하잖아.


그런데 언젠가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거야. 

사실 참을성, 인내. 견딤. 이런 말과 사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사랑은 그야말로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솟아나는, 상대에 대한 한없이 예쁜 마음이잖아. 


나처럼 별로 훌륭하지 못한 인간이 사랑이라는 대단한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근거가 뭐겠어. 

늘 제 생각만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악의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지구가 자기 주변을 도는 듯 사물을 판단해 버리는 인간이었는데. 

이제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먹고 싶은 게 더 궁금하고 심지어는 그걸 고르고. 

좋아하는 카레를 못 먹는데 통탄은커녕 냄새도 맡기 싫은 참치김치찌개 앞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내 모습에서 아는 거지. 


그런 느낌 알아? 그 어디에도 내가 없어. 

적어도 늘 ‘나, 나, 나’ 하며 다니던 예전의 그 인간이 이제 없어. 

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는 그 사람뿐이고, 그 사람을 좇는 마음으로만 내가 존재하는 거야. 


그 존재는 아주 작고 여리지만 참 예뻐. 애잔하다고 할까. 

그렇게 가만히 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가 상대가 휘익, 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모래라도 날리면 
온통 뒤엉키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말지. 

그렇게 납작 엎드려 있다가 사방이 조용해지면 다시 일어서지만, 달리 어딜 보겠어…? 

다시 그쪽을 향하지.


빛이 내리쬐면 그런대로, 눈부신 순간에는 망막이 시려서, 

살 에는 바람이 불면 그런대로, 살을 베고 지나가면 쓰려서. 

휘청휘청 당신 세계의 기상도를 그냥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기꺼이 그 안에 있길 바란달까. 


아, 이젠 다시 못 일어날 거 같아,


주저앉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도 내 머리는 생각이나 셈 따위 하지 않았어. 

자리를 뜰 생각도, 이 세계에서 몸을 빼야 할 이유를 헤아리지도 않아. 

그저 욱신대는 온몸을 가만히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지. 


... 내가 사랑하고 있구나.



확신과는 별개로 참 어렵기는 했어.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듯한 아픈 삐걱댐이 닥칠 때마다 더욱 그랬지.

어쩌면 자아가 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정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런 자신이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끄떡없는 자세에 당혹스러웠나 봐. 

당신도 나만큼 주위에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지내온 듯한데, 

내 요새가 폐허가 되는 와중에도 저 미동도 않는 벽이라니. 

차가운 말을 내게 던질 때마다 더 강해지는 듯 에너지 충만하던 모습 역시.


저게 가능한가? 이렇게 취약해지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나?

아니면 당신은 자신을 위한 자원을 일단 확보하고 나를 향하나?

혹시 내가 사랑 자체의 개념부터 잘못 가늠하고 있나?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아. 아마 뜬 구름 잡는 넋두리처럼 들리겠지.
아마 간단하게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을 테지.
그런데 정말 나는 그 의문은 품어본 적이 없거든. 


나를 사랑하긴 하나…?


그 물음이 아플까 봐 피한 건 아니었어.

서툴고 거칠고 때로는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낯선 방식이지만
나를 향한 그 감정은 분명 느껴졌거든. 

너무나 결이 다른, 두 사람의 엄청난 차이를 다 감싸안는 낱말이
결국 ‘사랑’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럽지만 말이야. 


아무튼 때로 이 작은 품으로는 받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고, 

... 나는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해 왔어.


(2)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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