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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드 Oct 01. 2023

나는 왜 '참아야 하는' 사랑만 하는가 (2)

'사랑은 참는 것'이라는 거짓말


https://brunch.co.kr/@gridpaper/57



참 이상하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참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이 아파오기 시작했거든. 

어렸을 때부터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했던 터라
어떤 상황에 억지로 오래 붙들리면 몸이 대신 아프고는 했어. 

딱 그때 느낌이더라고. 


애착 이불을 잃어버렸을 때나 계속 괴롭히는 옆집 아이와 등교를 같이 해야 했을 때, 

날마다 서서히 사지에 기운에 빠지고 누워만 있고 싶었어. 

그러다가 결국에는 내가 소속된 중요한 곳과의 연결을 스스로 끊어버려. 

등교 거부를 하고, 무단결근을 하고, 집을 나가버리고, 은둔형 외톨이 모드로 돌입하지. 

세상 더없는 골칫덩이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몸이 너무 극단적으로 아파버리니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그다지 없었어. 그게 내게는 재앙이었을지도 몰라. 나쁜 버릇처럼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으니까.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해버렸네. 아무튼, 몸이 아팠어.

천천히 조금씩 더 심하게. 


매일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애타게 서로를 찾으며 더듬는데 

이런 제길, 점점 팔다리에 힘이 빠지네. 

마치 드러나면 안 되는 무언가를 꾸욱 누르던 나날들처럼 누워서 자고만 싶은 거야. 

이러면 안 돼. 이래선 곤란해. 참지 마. 참지 말라니까?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아는 사람은 나뿐이야. 

몸뚱어리에 아무런 힘이 남지 않게 되는 그 순간 나는 모든 곳에서 끊어져.

무중력 상태처럼 혼자 떠돌게 돼. 

누군가를 지켜주는 일도 어불성설이고. 사랑하는 당신이 내게 손 내밀며 애타게 불러도
나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입만 뻐끔대며 서서히 가라앉을 텐데…


... 그럴 수는 없잖아.



이러면 안 돼. 이래선 곤란해. 참지 마. 참지 말라니까?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갔어. 뭐야, 뭘 억눌렀어. 뭘 모른 척했어. 

그 사람을 볼 때 일어나는 수많은 색채의 감정에서 보기 좋은 빛깔만 가려내어 인지했어? 

혼자 뭘 그렇게 걸러왔어… 하면서. 

설마 그때그때 휘발되었다고 생각한 쓰라린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나? 


'알았어요'와 '괜찮아요'로 덮어버린 순간이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 


내 마음을 스스로 헤집을 때는 늘 축축하고 어두운 기운에 사로잡히는 듯하거든.

살면서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경험인데 하필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고 있을 때 이 짓을 해야 한다니. 

오도 가도 못하는 절망이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있었어. 


정신 똑바로 차려, 기정사실처럼 여기지 마, 넌 허상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게 추스르고 달래고 희망 비슷한 사고를 돌리려는 와중에도 진실은 무자비하게 떠올랐어.

슬플 때도 슬프면 안 된다고 혼자 중얼대고는 했지. 그건 인정해. 선명히 기억나. 

화나도 화내면 안 된다고 다짐했었네, 돌이켜보니.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도 말하고 싶었던 듯하고.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를 막 대할 권리를 주진 않았다는 말을 몇 번인가 삼켰지.

대체 왜?


나는 내가 참는다고 생각했어. 사랑하니까. 


그런데 결국 그 두 명제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었어.

나는 참았어. 나는 사랑했어. 그리고 그 두 일은 동시에 일어났어. 

사랑하기 때문에 참은 것도 아니고 참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

현기증 나도록 그 둘을 오갔기에 어지러워졌을 뿐이지.

내가 평온히 있을 곳은 둘 사이의 어떤 공간이었는데 말이야. 

거기 가만히 앉아서 고개만 좌우로 움직이며 바라봤다면 차분히 그 사람을 향할 수 있었을 텐데. 


맞아. 결국 그 갸우뚱한 느낌 그대로였어. 

참을성과 사랑은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어.


그래서 힘없이 늘어뜨렸던 팔다리를 주섬주섬 제 자리로 돌리면서 몸을 일으켰지. 

일어났고, 한 발자국 걸음을 뗐고, 조금씩 보폭을 넓히며 걸었어. 

그리고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어. 맞아. 계속 함께 걸으려고. 

다만 이제는 참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아니, 참아야 한다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감정 자체가 이제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무엇을 억눌러대는 그 자리에 당신이 와서 가만히 안아주기를 기다리며.


하지만 다가온 당신은 내 귀에 가만히 속삭였지.


사랑은 당연히 참고 희생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어쩌지, 나는 원래 이기적인데. 
너부터 먼저 해봐. 


그 순간 나는,

... 참았을까, 아니면 참지 않았을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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