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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드 Oct 06. 2023

잘난 척을 허하라

잘난 사람이 미우십니까? 뭔가 켕기십니까?

(위) 원더브라 광고 시리즈 <WOW EFFECT> 중 바 Bar 편


나는 잘난 척하는 잘난 사람이 밉지 않다.


잘나지도 않았는데 잘난 척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잘나서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아니, 찰싹 붙어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진다.


저 사람은 자신의 잘남을 어떻게 표현할까?
저 사람은 자신이 잘났음을 언제 자각했을까?
잘난 사람은 타인이 찬탄을 보낼 때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방법을 알까?


그렇다면 그건 굉장한 노하우일 텐데, 배우고 싶다!

등등.


그런데 그 배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다지 녹록지는 않다. 이들이 의외로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수상해


몇 년 전 '자존감'이라는 말이 온통 떠돌면서 각종 현상을 만들어냈다.

당시 유튜브에 정신과전문의 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관련 베스트셀러가 쏟아졌으며,
SNS 해시태그에도 아주 #자존감 투성이었다.
<자존감 높은 사람의 특징 10가지> <자존감 낮은 사람이 자주 쓰는 말 5가지> 등등... 지겨울 정도로.


높은 인기는 높은 공감도를 뜻한다. 그만큼 자존감에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었다.
내 주변만 해도 자존감 높은 사람은 이 낱말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 말에 주목하는 사람은 99% 자존감이 낮은(그렇다고 자처하는) 사람일 테다. 나처럼. 자존감 낮은 사람이 엄청 많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고?


자존감 현상이 떠오르기 전부터 꿈틀대던 힐링 트렌드는, 이제 대놓고 주류가 됐다. 힐링, 치유, 위로...

정작 옆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광고만 보면 다들 호들갑이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은 당신이라서 소중하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
"괜찮다, 다 괜찮다"
"너무 애쓰지 마"


다행히 이런 현상의 내막은 바로 간파했다.


어디서 물건 팔아먹으려고!

내가 그 물건 안 사주면 안 괜찮다고 할 거면서!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기업에 소중하지 않다고 할 거잖아!


자존감 낮은 쭈구리가 넘쳐나는 세상이기에, 이 큰 시장을 노린 싸구려 위로는 그토록 넘쳐난다.


절대다수, 권력을 잡은 쭈구리


하지만 단언컨대 정작 위로받아야 할 부류는 잘 났는데도 잘난 척 못하고 있는 잘난 사람이다.

당연히 잘나서 잘난 척하는 잘난 사람도 포함한다.

이들은 부당한 일을 훨씬 더 많이 당한다.

쭈구리는 쭈글쭈글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조금은 납득이 간다. 그런데 잘난 사람들은 별 다른 이유 없이 따돌림을 받는다.

원더브라 광고 시리즈 <WOW EFFECT> 중 에스컬레이터 편

예를 들면 미녀는 어딜 가나 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다.
내 삶의 가장 웃픈 기억 중 하나를 들어볼까? 나는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무조건 인상을 찌푸리는 여자 동기들의 도끼눈을 내내 마주하며 회사 생활을 한 후배를 안다. 가슴을 훔쳐보는 남자들을 노려 봐야 할 텐데 그 후배를 노려 본다.
가슴이 작은 여자들은 가슴이 큰 여자들의 고충을 모른다. 왜 저렇게 드러나게 라인을 강조하는 옷을 입었냐고 욕 하지만, 지능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비난인지 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흔적기관에 가까운 가슴 크기를 가진 여자가 대다수인 대한민국이다. 그곳에서 '표준 사이즈'를 산출해 기성복을 만들었는데(혹은 수입해 파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 옷을 가슴 큰 여자들이 억지로 입은 거다. 원단이 그럼 늘어나지 안 늘어나나?  
나는 그런 여자 무리들에게 "너희들 졔 예뻐서 미워하는 거냐?"라고 돌직구를 날렸다가 덩달아 같이 왕따를 당하고 말았다. (물론 난 후회 하지 않았다. 그 예쁜 아이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으니까)


외모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고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심지어 가슴이라니! 성인지감수성 운운하며 달려들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다 같이 다운그레이드'를 원하는 세상


단지 타고났을 뿐인 잘남에 대해서도 이렇게 갑질을 하고 욕을 하는데,
노력으로 얻은 잘남에 대해서는 어떨까?

과거 자기와 똑같은 조건과 시간이 주어졌고 같은 선상에서 하나, 둘, 셋, 출발! 했음에도 현재 더 많은 것을 성취하며 잘나져 버린 사람들을, 이런 이들이 견뎌낼까? 거품 물고 뒤로 넘어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아 정말, 잠재적 악플러뒷담화 주동자가 너무도 많다. 남을 자신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인간의 등쌀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인지 잘난 이들은 꼭꼭 숨어있다. 특히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거나 겸손한 부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찾아야 겨우 찾아낼 수 있다. 어쩌다 등잔밑에서 찾아내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가 그들을 찾아내 물개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내면 보통 처음에는 묘한 표정이 반응으로 돌아온다.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잘난 성취에 대한 관심과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면 잘난 이는 점점 신바람에 들뜬다.

세상에,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이후 두 사람의 대화와 만남이 영감과 인사이트로 가득 참은 당연한 수순이다.


제발, 잘난 이에게 잘난 척을 허하라. 그게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다.

열패감비뚤어진 마음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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