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 그리고 "인문학"은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 문제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은 우리의 주된 관심사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던 얼마나 많은 학문을 연마했던지 상관없이 이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게 되면 끊임없이 방황하게 되고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의 원인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의문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답을 찾기 위해 평생에 걸쳐 노력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죽어 갔다. 또 어떤 이들은 찾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 까닭에 지쳐서 포기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길을 찾아 나셨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원하는 목적지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인생의 황혼기가 오기 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방법을 고수해서는 올바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고장 나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지 않고 서비스센터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을 순 없다.
물론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옷의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단추를 꿰어야 하듯 처음의 탐구의 근원을 잘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중 하나는 스스로의 지식과 지혜에 빠진 나머지 자신과 인간의 저술물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거기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생명의 출발 자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매일의 생존 자체가 우리의 노력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해왔던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안갯속을 헤매듯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최고의 인문학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성서를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성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주신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른 인간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지식들이 많이 들어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 원인과 사후에 어떻게 될 것 인지와 같은 보물들이 가득하다. 한 예로 창세기 1:27에서는"하느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기 시작하셨으니,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라고 알려준다.
이 성구에서 알려 주듯이 성서는 이 땅에 인간이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목적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알려준다. 이처럼 성서가 하느님에 의해 쓰인 책이라면 인간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는 물론이고 행복한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창조주께서 인간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하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인문학을 위해 성서를 한번 읽어보길 권해 드린다.
또 하나는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살아갔던 인간과 비교해서 월등하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분과 관련해서 골로새서 1:15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라고 알려 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14에서 "하느님의 첫 창조물"이라고 알려 준다. 우주와 지구와 인간이 존재하기 전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 하느님과 함께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하느님 다음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으신 분이다. 지구를 포함한 인간을 위해 만드신 수많은 동식물들과 자연환경을 보면 우리 인간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바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잘 듣게 되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창조주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로써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알려주며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신체는 물론 우리의 정신까지 우리의 모든 것을 설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므로 그분의 지혜나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 그분의 주장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므로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주와 시간, 자연과 생명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은 아직 한계가 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우리의 사고력과 추리력, 상상력, 사랑과 동정심과 같은 특성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고의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창조주와 예수를 떠나서는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말이 사실인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옳고 그름을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자유도덕 행위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강제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지는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은 맹목적인 맹신보다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이제 그분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주의 생각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분의 생각이 담긴 책을 읽어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이 기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설계자이다. 그러므로 이 설계자의 의도와 설계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이 기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에게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제품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 매뉴얼을 봐야 하듯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지침서를 찾이야 한다. 성서가 바로 그 책이다. 성서는 인간이 알기 원하는 질문에 대한 모든 해답이 들어있는 명쾌한 책이다. 그것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인간이 쓴 책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리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최고 정점에 성경이 있다. 성서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미 시간을 통해 성경의 탁월함은 증명되었다. 역사를 통해 이 책을 없애려는 수많은 시도를 물리치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가장 많이 배부된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성서는 최고의 인문학을 위한 가장 잘 닦여진 고속도로와 같다. 그러므로 더 이상 어려운 길을 헤맬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시간을 내어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는 일이다. 인문학을 통해서 알고 싶은 인간과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성서를 통해서 찾기를 바란다.
만일 이 책을 통해서 명쾌하게 대답을 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진리를 보물로 비유하셨다. 이 것을 찾는 자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이 보물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편 119:105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며 내 길에 빛입니다."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사야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