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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Dec 17. 2024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 일까?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의식주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것 이상의 탐욕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탐욕은 부자나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는다. 인간 역사는 탐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뿌리가 깊다.


광고 업계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최고의 마케팅 기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혹한다. 아파트, 자동차, 의류를 당장 사면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처럼 광고한다. 이렇게 자극적인 광고에 눈과 귀를 노출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변한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어느덧 사치품이 필수품처럼 여기게 된다. 발길은 백화점으로 향하고 과도한 카드 소비의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면 지난 옷들은 안쪽에 넣고 입어야 할 옷들은 옷장에 가지런히 정리해 둔다. 이때 느끼게 되는 것은 몇 번 입지도 않은 옷들이 처치 곤란임을 알게 된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옷들로 인해 옷걸이가 부족할 정도이다.


냉장고 안에서의 식품들도 비슷한 현상이다. 마트에 쇼핑하러 가면 냉장고 안의 식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눈에 뜨이는 대로 쇼핑 카트에 담다 보니 집에 와서 보면 손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썩어서 버리는 식품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기업들은 어떠한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소비자들을 속여 불량 식품 첨가물을 넣고 함량을 교묘히 줄여 속임수를 쓴다. 소비자들의 건강과 안전 따윈 알 바 아니다.


정치인들은 어떠할까? 선거 때만 되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유권자에게 표를 구걸한다. 그러나 막상 당선되고 나면 본심을 드러낸다. 쥐를 잡는 고양이가 날까로운 발톱을 드러내듯 말이다. 당연히 백성들을 위해서 써야 할 권한을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한다. 속았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은 다음에 다른 사람을 뽑아보지만 그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백성들은 끊임없는 세월 동안 고통을 당한다.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과욕을 부림으로 후손들에게 죄와 죽음을 물려주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선과 악에 대한 표준을 정할 권리를 가질 수 있으며 하느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부추김에 동조한 것이다.


그리고 고대 소돔과 고모라 도시의 주민들 역시 당시 만연하던 성적부도덕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함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불과 유황이라는 큰 벌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의 분에 넘치는 탐욕은 결국 불과 유황이라는 벌로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에 비해 하느님의 행사는 어떠한가?

아낌없이 베푸는 부모의 사랑처럼 인간들을 위해 끝없는 사랑을 베푸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들을 위한 것들로 가득하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며 작은 풀잎들까지 인간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넘쳐난다.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과 곤충들 역시 우리를 위한 것들이다. 형태와 습성이 각기 다른 동물들을 관찰하노라면 하느님의 지혜는 물론 인간들의 기쁨을 위한 배려를 관찰할 수 있다.


따사로운 햇빛과 아름다운 일출, 일몰들 그 황홀감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행여나 어리석음의 길로부터 돌아서기를 바라시며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해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로마서 5:12 신세계역)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고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계속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고 하느냐?" (에스겔 33:11 신세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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