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날이 짧고 소란만 가득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서늘한 새벽 공기처럼 명징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젊은 시절,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손에 쥐었더라면 좋았을 법하지만, 돌아보니 이 또한 세월이 준 선물임을 깨닫는다.
첫 번째는 사람에 대한 시선의 변화다.
젊은 날의 시선은 늘 바깥을 향해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머릿속은 온통 일에 대한 욕심과 성취로 들끓었다. 새벽녘, 설익은 잠에서 깨어나 차가운 벽을 마주하고도 일에 대한 고민으로 심장이 뛰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열기의 방향이 안으로 굽어든다. 일의 성과보다는 사람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무엇보다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시선 끝에는 타인을 품는 넉넉한 품이 생겼다. 예전에는 타인의 실수를 보면 날 선 칼날처럼 왜 저것밖에 못 하느냐며 마음을 세우곤 했다. 타인의 몸에 돋은 가시를 먼저 보느라 정작 내 안의 옹이진 상처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온기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스스로를 냉정히 돌아볼수록, 타인의 허물보다 내 안의 서툰 구석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용기가 있었다. 돌아보면 아찔할 정도로 무모했다. 고작 10%의 가능성만 보여도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도전했다. 결과는 차디찬 패배뿐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세월이 내려앉은 지금은 성공의 달콤함보다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먼저 살핀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더라도 예기치 못한 비바람은 언제든 불어닥칠 수 있음을 안다. IMF나 코로나 사태처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파도가 일상을 덮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게 된 것이다. 젊음이 밤하늘의 별을 따려는 서슬 퍼런 의욕의 계절이었다면, 지금은 한없이 부족한 스스로를 인정하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겸손을 배우는 계절이다.
세 번째는 시간의 속도에 대한 감각이다.
활력이 넘치던 청년 시절, 내일은 언제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시간은 정지된 호수처럼 잔잔했고, 더디게만 흐르는 세월이 야속해 발을 구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어떤가. 지구가 갑자기 속도를 높인 것도 아닐 텐데, 피부에 닿는 세월의 속도는 그때보다 서너 배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마치 창밖 풍경이 형체도 없이 뭉개지는 급행열차에 올라탄 기분이다.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말은 너무 서정적인 표현일지 모른다. 이제 시간은 내 생각의 속도마저 앞질러 마구 달아나 버린다.
인생이 이토록 짧고 덧없기에 성경은 이렇게 교훈한다.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어 우리가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 주십시오." (시편 90:12 신세계역 성경)
누가 아무리 거창한 업적을 쌓았다 해도, 인생의 황혼녘에는 누구나 손틈으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해야 할 일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산더미 같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는 날이 짧고 소란만 가득합니다." (욥기 14:1 신세계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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