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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미 Mar 21. 2024

아름다운 그늘

 동생과 내가 유년을 보낸 동네에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엄마의 노점 장사의 시작점이자 동생이 다니던 보습학원과 내 첫 아르바이트 장소가 있던 곳. 등하교를 하며 매일 같이 드나들던 곳이지만 그 시장을 떠올릴 때면 기억의 가장 앞자리에 오는 건 어느 초여름 오후, 어린 나를 걸리고 동생을 구루마에 태워 장을 보던 엄마의 옆얼굴, 두부 반모나 콩나물 몇 백 원어치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어스름하게 내려오던 어둠이다.


 결혼을 하고 한동안은 대형 마트에서만 장을 봤다. 비록 재래시장에 비하면 값은 더 나갔지만 흥정이 필요 없는 가격 정찰제는 당시 초보 주부에겐 좀 더 안심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직접 돈을 벌고 내 살림을 꾸리게 되면서 전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는 것 또한 마트 생활을 이어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가는 언제나 벌이보다 높았으나 장을 보는 순간이 이전만큼 부대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덜 주저하고 가끔은 사치를 선택하는 삶. 돈을 쓰는 일은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식재료를 사는 순간에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생존을 위한 식욕, 원초적인 욕망이 아닌 보다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오래 갈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식재료를 살 때면 가격을 비교한다는 말이 더 저렴한 것을 고른다는 의미가 되지 않도록 애썼다. 때론 품질과 기분을 고려해 더 값나가는 것을 고르거나, 이름도 낯선 외국 향신료를 도전하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더는 떨이나 흠이 있는 과일은 사지 않았는데 무르고 멍든 부분을 도려내고 남은 과육을 볼 때면 그게 왠지 내 삶의 모양 같아서, 쓸데없이 수치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흠결이 있는 것들은 딱 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것을 값을 치렀을 때에만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나는 식재료를 사며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가끔은 운 좋게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건 정말 운이 필요로 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고작 몇 천 원짜리 과일에 운까지 기대할 일인가.’

 사소한 일에 마음이 낮아지는 게 싫었으므로 나는 요행이 필요 없이,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당연히 주어진 좋은 것을 얻는 일에 마음을 썼다. 이런저런 이유로 잘 포장된 지불한 가격만큼 보장된 제품을 사는 과정만을 추구하며 재래시장을 잊은 지 몇 년. 우연히 다시 옛 동네의 시장을 찾게 된 건 나무와 밀면 때문이었다.


 우리 남매의 유년이 담긴 시장에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숨은 맛 집이 하나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문전성시지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꽤 긴 줄을 서야 하는 밀면 집이 바로 그곳이다. 딱히 면 요리를 즐기지 않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밀면을 좋아한다. 여름의 기색을 발견하는 지점을 밀면이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으로 분별하던 동생. 온전한 여름이 오면 동생의 점심 메뉴는 거의 매일같이 밀면, 밀면, 밀면이 되곤 했다.


 유월 중순 어느 오후. 아직 여름이라기엔 조금은 애매한 더위였음에도 동생은 밀면이 먹고 싶다며 그 시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오랜만에 찾은 시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젓갈 아주머니와 노점 채소 가게 아주머니, 주택가 건물에 딸려 있던 그릇가게 주인까지. 그곳이 일터이자 노동의 근거지인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찾지 않았으나 동생은 그간 몇 번이고 밀면 집에 오기 위해 이 시장을 방문했던 모양이다. 익숙한 자세로 가게로 들어선 동생은 입장과 동시에 동생은 물 하나와 비빔 하나, 만두 한 판을 시켰다. 2인 방문객의 암묵적 합의라도 되는 것인지 거의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왔다. 동생과 함께 먹는 밀면은 맛이 좋았다. 밀가루 음식은 살이 찌니까, 몸에 좋지 않으니까 하면서 찾아 먹지 않았던 것일 뿐, 어쩌면 나는 밀면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시원하면서도 매콤 달달한 맛에 먹는 순간 피로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동생은 나보다 빠른 속도로 눈앞의 그릇 비워내고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가게와 이곳을 비교하며 무엇이 어떻게 더 나은지에 대한 말을 늘어놓았다. 기준이 높고 깐깐한 동생이 찬양하는 밀면이라 그랬을까. 더부룩한 마음은 접어두고 나자 금세 차가운 육수까지 달게 느껴졌다.


 식당을 나서며 동생은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가 살던 집 앞의 보호수 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모처럼 시간이 많았으므로 우리 남매는 일부러 느리게 걸으며 시장의 이쪽 입구부터 저쪽 입구까지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나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시장을 걷자 이내 음식이며 식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부추전이라든가, 떡볶이가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나 배가 불러서인지 선뜻 마음이 나서진 않았다. 동생과 나는 걷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서 심심한 입을 달래줄 주전부리를 신중하게 골랐다. 찐 옥수수와 떡 한 팩을 손에 쥐고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걷는 길. 시장이 이토록 느긋한 풍경이었나. 붐비지 않는 시장의 골목을 걷자 나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던 시절, 종종 대며 걷던 발걸음과 노점 장사를 하며 시린 발을 구르던 모습이 마치 흐릿한 꿈처럼 지나갔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동네 골목길을 구경하듯 걷다 보니 어느새 보호수 나무의 머리가 보였다.

 이제 여름을 앞두어서 인지 나무는 다시금 무성하게 잎이 자라 있었다. 보호수 나무와 공터, 그 아래로 펼쳐진 작은 놀이터로 해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아, 배부르다.”

 “난 배부르면 기분 안 좋던데, 살찌는 기분 들어서”

 “그런데 누나는 왜 맨날 배부르게 먹어? 어차피 먹는 밥, 기분 좋게 먹어. 배고프다는 말 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지”

 “누나 그거 기억나나. 어렸을 때,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맨날 배고프다고 했던 거.”

 “알지. 나는 배고프다는 말 절대 안 했는데”

 “그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엄청 신경 쓰였을 거야? 집에서 어린 아들이 배고프다고 계속 전화하면.”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 완전 불효자아님?”

 “그렇지. 그 다이얼 넘버 엄청 크게 박힌 자주색깔 전화기. 거기에다 대고 엄마한테 배고프다고 말했던 거, 요즘 가끔 기억난다.”

 “배고픈 건 똑같았는데 너는 말하는 애였고, 나는 참는 애였지. 뭐가 더 나은 건진 모르겠네.”

 “그래서 엄마가 지금도 나한테 그렇게 자주 밥 먹었냐고 물어보나 봐.”

 “그런가 보네. 엄마 나한텐 그런 질문 안 하는데.”

 “누나가 어지간히 먹는 거에 깐깐하게 굴어야지.”


 동생은 아주 배가 고플 때 카레 가루를 물에 녹여 먹었던 기억도 있었다며, 냉장고가 그렇게 컸는데 먹을 게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과거에 켜켜이 쌓아둔 결핍을 풀어가며 사는 것일까. 시장에서 사 온 주전부리를 보며 생존과 전혀 상관없는 음식을, 갈급하게 먹는 것이 아닌 늘어지는 해만큼 여유롭게 먹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낯설고 반갑게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여유와 사치가 깃든 풍경. 마트가 아닌 시장에도 그런 안도감과 넉넉함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감각이었다. 주는 만큼 얻게 되는 것이 삶이라 여겼지만 반드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때론 내가 치른 값보다 더 많이 받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그리고 영영 경험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시간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음을, 나는 떠나온 시장을 다시 방문했을 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잘게 쪼개지듯 흩어지는 빛을 보며 다시금 이 여름이 깊어짐을 느낀다. 그렇게 옆에 앉은 동생의 반듯한 옆모습으로 그늘이 드리워 지는 순간, 나는 그 위로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콩나물 몇 백 원어치와 두 부 반모를 사던 엄마의 얼굴을.  보호수 평상에 앉아 빛과 그림자의 일렁임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유년에, 엄마의 젊음엔 그늘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그 옆으로는 복닥거리며 놀던 어린 남매와 비슷한 반찬을 돌려가며 요리해도 별다른 투정 없이 먹어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더 이상 북적대고 붐비지 않는 시장의 풍경처럼 우리의 삶도 얼마간 변했다. 매일의 생계에 대한 염려과 허기가 아닌 빛을 보는 여유와 미식을 논할 수 있는 곳으로, 까다롭게 계산하고 정량의 수치를 따지지 않는 여유로이 풀어헤쳐진 품을 지닌 상태로.


 그늘도 빛이 있어야 생긴다. 보호수 나무 아래 평상에 늘어지듯 앉아서 옥수수를 먹는 해 질 녘. 동생과 나는 나뭇잎의 형체와 뒤 섞인 우리 남매의 그늘이 사라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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