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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미 Oct 14. 2024

변화와 변명



  2024년의 추석은 더웠다.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이름처럼 내내는 아니어도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어야 마땅할텐데 올해는 보일러는 고사하고 몇 몇 밤엔 에어컨을 틀기도 했다.  ‘기후가..세계가 어떻게 되려나.’ 입에 달린 말처럼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관해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염려하는 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었고 사람들은 다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몇 개씩이나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절의 길이와 속도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걸 몸으로 실감하면서도 한 편으론 ‘이렇게 추석의 이미지도 바뀌는 거라고. 변하지 않는 것을 세상에서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더워서 제사상에 올릴 전 부치길 포기했다는 한 주부의 인터뷰 영상처럼 우리는 변명과 변화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건 아닐까.  


  결혼을 한 뒤 내게 명절은 긴 휴일과 다르지 않은 것이 되었다. 남편의 본가는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있다. 남동생을 포함한 친정 식구들 역시 매주 만나는 사이였으므로 명절이라는 이유로 유별나게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은 묘하게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어머님을 비롯해 친정 식구들 역시 더는 제사상을 차리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추석이랍시고 친척을 만나러 다른 도시로 떠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계절이나 날씨, 때론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어떤 신념까지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 빼고는 다 변하는 세상이다. 내 이름 위엔 새로운 세대주의 이름이 있고, 우리가 향하던 곳에 있던 할머니의 집은 부산 반송동의 참좋은 요양병원이 되었다. 

  이렇듯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한 지금. 놀랍게도 오랜 기간 내 몸에 새겨진 명절의 추억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으로 밀려들어와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중 어떤 기억들은 자연보다 더 힘이 세서 이렇게 찬바람이 불 때가 되면 나를 무력하게도 만들었다가 이내 그리움으로 아련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 때는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야 그 위력을 깨닫게 되는, 가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추석의 기억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밀리는 도로에서 몇 시간을 때우듯 보내는 것, 엄마를 포함한 며느리들이 땡초를 넣은 부추 전을 양껏 부치던 손. 고모와 삼촌, 아빠는 그것을 안주삼아 이른 오후부터 저녁 늦게 까지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것. 낚시 얘기에서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이야기를 지나 어릴 적 살던 고향이야기로 흘러가는 대화의 레파토리. 기름진 음식과 흥에 겨워 노래방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찐득한 테이블위로 놓인 새우깡과 맥주. 그리고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면서 노래방 화면 위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흘러나오면 큰 고모의 구슬픈 노래 한 소절, 


‘참을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길고 긴 인생처럼 끝나지 않는 한 문장으로 구성된 1절. 고모는 언제나 그렇듯 끝까지 다 부르지도 못하고 마이크를 잡은 채 오열하기 시작되면 아빠와 삼촌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야 만다. 그렇게 서로를 애타게 부르고, 노래하고, 그러다 토하고. 

아침이면 멀건 얼굴로 제사상 앞에 서는 남자들. 부추전에서 탕국으로 메뉴를 바꿔 해장을 하며 데면데면하게 식사를 이어나가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추석이다. 


  제사라는 의식보다 더 강한 리추얼과도 같은 이 과정은 매 해 두 번이상 반복되었다. 어쩌면 기억이라기보다 스며들어 새겨진 쪽에 가까운 일이어서일까. 추석은 이미 지나갔고 더 이상 아빠의 가족들을 볼 일이 없는 지금에도 문득, 추석의 바람을 느낄 때면 그 모든 제의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곤 한다. 

  자주가는 시장에는 부추전 한 장을 삼천원에 판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땐 직접 부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손질과 비용 면에서 사먹는 게 더 저렴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시장을 보러 갔다 부추 전 두 장을 샀다. 엄마와 며느리들이 합심하여 부쳐낸 부추전보단 맛이 덜하지만 그럼에도 부추전이 이 가을날 제철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마주 앉아 부추전을 먹으며 내 몸에 새겨질 또 다른 종류의 기억에 대해 생각해본다. 같은 것을 먹지만 다른 기억을, 조금은 덜 슬프고 어쩌면 조금 기쁘기도 한 기억을 나는 덮어 쓸 수 있을까. 

  아빠의 가족들이 무엇이 그렇게 서러워했던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주정의 대사로 아빠 가족의 서글픈 서사를 흘려 듣긴 했지만 아마 많이 각색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의 삶을 신파로, 스스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떄로는 그 과정에서 지나온 시간을 아름답게 지키고 현실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과거를 들여다보는 이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부추전을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확실히 서러운 쪽이라면 내 가족도 아닌 사람의 기일을 지키느라 음식을 해대는 엄마와 며느리 쪽일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따지고 들면 고모도 엄마도 ‘여자의 일생’을 끝까지 부르는 한 사람이라는 점에선 같다. 그런 맥락이라면 아빠 역시 아빠만의 슬픔이 있을테고. 


  어디까지가 변명이고 어디까지를 변화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각자가 가진 기억, 그것을 제물 삼아 저마다의 리추얼을 반복하면서 산다. 우리가 지닌 저마다의 슬픔. 그것을 이고 지고 살아가면서 과거를 반추하는 마음. 미우나 고우나 나의 서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추석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합법적으로 크게 우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고모가 여자의 일생을 완창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빠가 더 이상 자기연민이나 변명이 아닌, 자기 긍정으로 술 없이 잠들 수 있기를. 나는 부추전을 깨끗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먹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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