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내가 작은 중소기업에 근무할 때였다. 20대 중반. 대학교를 졸업한 후 내가 처음 취업한 곳은 대기업의 하청 중소기업이었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PCB를 만들던 그곳엔 나를 포함한 20명 남짓한 직원이 근무했다. 그중 절반은 납땜이나 조립을 하는 이모님들이었고 절반은 20대부터 40대 남성이 대리부터 부장까지의 직급을 골고루 나눠가지고 있었다.
나는 일하는 이모님들과는 다른 사무직이었지만 그렇다고 직급이 있는 직원도 아니었다. 부장은 내게 커피 심부름은 당연하게 시키면서도 이모님들이 하는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돕지 말라고 말했다. 높은 직급의 직원들이 보여주는 저열함. 무엇하나 배우는 것 없이 소진만 시키고 돌아온 나의 한 달치 시간 값은 200만 원 남짓. 반복되는 업무와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들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밤이면 늘 얕은 우울에 시달렸다. 그렇게 빈약한 만족과 고루한 안정에 익숙해져 갈 때쯤 동생은 내게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서울을 중심으로 소자본, 셀프 마케팅을 앞세우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독립출판물이 하나 둘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독립 출판물의 형태는 제작 환경에 따라 다양했는데 출판사와의 정식 계약이 아닌, 가제본 형태의 책을 내는 사람도 있었고 직접 출판사를 창업해 책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동생은 내게 집 주소를 업장으로 정하면 어렵지 않게 1인 출판사 창업이 가능하다며, 마침 대학교 동아리 공모전에서 독립출판물을 주제로 넣은 창업계획서가 당선이 되었으니 함께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동생은 당선 지원금이 있으니 경제적인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 말을 더 보탰다. ‘어차피 누나도 퇴근하고 별로 할 거 없잖아’라고.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면서 나는 책을 읽는 법을 잊었다. 그런 내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왠지 동생이 해야 할 숙제를 함께 떠맡게 되는 것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퇴근 후 정말로 할 일이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일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해야 하는 순간에는 외면하고 싶고, 없으면 아쉽게 느껴지는 것.
동생이 기획한 구성안에 따라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일은 순조로웠다. 나 외에도 두 명의 친구들이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는데, 그들은 모두 학생이었으므로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여유도, 미래에 대한 낙관도 넉넉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만든 독립출판물은 1인 출판사 창업 반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우리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 없이, 독립서점들에게 연락해 입고 요청을 했다.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당시 활발히 운영되는 열 곳의 독립서점이 흔쾌히 책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책이 판매가 되면 서점에선 한 달마다 정산해, 판매된 책정가의 70%를 입금해 주었다. 나머지 30%는 서점이 가지는 판매 수수료였다. ‘참미 출판사’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물성 있는 책을 바라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런 책을 누가 사서 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이 들 때면 6,000원씩, 때론 12,000원씩 송금인에 서점의 이름이 쓰인 정산금이 찍혔고, 나는 200만 원의 월급보다 때론 그 돈이 더 반갑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책이 출간된 후에는 새로운 서점을 찾아 입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가능한 많은 서점에 책을 넣자는 마음가짐으로 검색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우리는 창원에도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카페에 샵인 샵 개념으로 입점해 있어 서점으로 검색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창원에서 유일한 독립서점이자 카페인 그곳은 4000세대가 넘는 큰 아파트 단지 근처, 한 주택 건물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커피 가격과 맛 덕분에 주부들이 주된 고객 같았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카페를 운영하는 이와 서점을 운영하는 이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카페 사장님이 자신의 친구에게 창업한 카페에 여유 공간이 있으니 그곳을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 어떻겠냐 제안을 하면서 이 작은 책방이 생겨난 것이라고.
입구를 들어서자 주문을 받는 테이블 한 켠으로 내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그림책과 독립출판물들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이미 동생이 우리의 책을 입고하기 위해 방문을 했기에, 나는 부차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오후 2시 무렵이라 해가 가게 내부의 끝까지 들이쳤다. 입구가 있는 한 면을 통창으로 쓴 카페에는 작은 테라스도 있어 책을 읽기엔 맞춤처럼 보였다. 테이블과 벽면 하나를 사용해 샘플로 놓여있는 책들은 수가 많지 않았지만 고른 이의 취향이 드러났다. 조용하고, 단단하고, 따뜻하구나.
카페 사장님은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말했다. 사실 자신은 책을 잘 모르지만, 이 책장을 꾸리는 친구는 책을 참 좋아한다고. 우리가 만든 책을 보고선 이 책을 이 공간에 잘 보이는 전면에 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나 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나의 일부를, 내가 만든 어떤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나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통장에 찍힌 이름 모르는 이의 얼굴을 창원에서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그렇게 우리의 첫 책을 입고한 후 우리 팀은 몇 권의 책을 더 제작했다. 여전히 회사생활은 피로했고 상명하복의 정신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 복용하는 타이레놀의 개수는 줄지 않았지만, 전과 달리 내 마음엔 어떤 강함이 자라고 있었다. 뜨거운 것까진 아니지만 햇빛처럼 따뜻하고 은근한 무언가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의 기저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자부가 깔려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읽어주고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지난했던 회사생활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두세 권의 책을 더 냈을 무렵. 동생과 나는 약간의 우연과 노력을 보태 창원의 유일한 독립서점의 운영자이자 내게 ‘인정’이라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 독립책방의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국화 언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