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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Jul 09. 2023

야!나두 댄싱머신 될 수 있어

문화센터 댄스수업 연대기 

유아원 시절 연말에 했던 장기자랑이 생각난다. 원생들이 각자 코너를 맡아 진행되는 장기자랑으로 가족을 초대한다. 연극도 발표도 있었으며 내가 맡은 코너는 발레였다. 


가뜩이나 빠른 년생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체구가 작아 치였는데, 장기자랑 연습을 하면서도 동작을 외우지 못해 친구들의 동작을 겨우 쫒았다. 어린 마음에도 절망을 느꼈고 장기자랑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표정까지 눈에 선하다.   


드디어 장기자랑이 시작되고 원생들의 부모님과 형 동생 앞에서 무대는 시작되었다. 무대 뒤에서 토슈즈를 신고 분홍색 샤 스커트를 입고 빨간 루주를 바르고 시작한 장기자랑은 지옥이었다. 연습 때도 동작을 숙지 하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무대에서도 버벅거렸다. 귀여운 아이들의 몸짓에 사람들은 웃었으나 어린 나는 허우적거리면서 무대가 꺼져서 사라졌으면 하고 바랐다.  

유년기 에피소드를 대부분 기억하지 못해 기억상실증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이 날의 기억은 선명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무대공포증도 이때 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모든 기억을 미화해 버리는 강력한 힘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 시절의 수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강료를 기꺼이 내며 성인 취미 댄스의 길로 들어섰다. 


K-pop 댄스, 발레, 벨리댄스, 줌바댄스까지 문화센터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댄스수업이 있다. 돈을 낸다면 그 어떤 종류의 댄싱머신도 될 수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을 알아보자. 






아줌마들과 줌바댄스 


첫 번째로 줌바댄스. 줌바댄스는 주로 라틴댄스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며 살사와 룸바 등 라틴댄스와 힙합을 베이스로 한 것이 특징이다. 에어로빅처럼 동작은 단순하며 반복되는데 '내 안의 섹시'를 끌어내야 한다. 롯데마트 문화센터 선배 줌바 댄서들의 춤사위는 매혹적이며 부럽기까지 하다. 


의외로 춤에 일가견이 있나 하고 가능성을 발견한 수업이기도 했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모퉁이에서 댄스를 시작했으나 점점 자신감이 생기면서 무대 중앙에 서게 되었다. 

또한 한 시간 동안 줌바댄스를 추게 되면 칼로리 소모가 엄청나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춤을 추면 출수록 밖에서 입을 수 없는, 허리에 쫌매는 붉은 체크 남방이라던가 형광 연두, 핑크색의 레깅스나 탑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멋져 보인다. 


댄스의 ㄷ도 모르던 줌바댄스의 매력이 푹 빠져 6개월 동안 즐겼으나 멀쩡한 무릎이 아파서 그만뒀다. 어쩌면 아주머니들과 형광 연두색의 탑과 얼룩말 레깅스에 체크무늬 남방을 허리에 매고 '내 안의 섹시'를 끌어내는 모습에 조금 지쳤는지도 모른다.





뱃살 없는 벨리댄스


두 번째로 벨리댄스. 취업도 안되고 암울하던 시절, 동 주민센터에서 오전에 벨리댄스를 배웠다. 어느 타국의 무희가 추는 댄스가 궁금했던 것이 시작이다. 벨리댄스는 줌바댄스와 달리 적당히 배운다고 금방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아니며 재능이 있어야 한다. 아이솔레이션이 되어야 하는데 유아원 발레 동작도 못 쫒다가 그게 될 리가 없다.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밸리'댄스라는 이름답게 뱃살이 있어야 춤이 예쁘다. 그 시절 거듭된 구직 실패로 뱃살마저 없는 상태였다. '뱃살 없는 벨리댄스'라니. 화려한 벨리댄스 스팽글 장식만 부채처럼 남긴 채 한 달 동안의 짧은 강습을 마쳤다. 






아이유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유 


세 번째는 K-Pop 댄스이다. 사설학원에 가서 성인수업을 들었는데 아이유의 '분홍신'부터 해서 엑소의 '으르렁' 등 다양한 케이판 댄스 한 곡 한 곡을 마스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러 댄스의 기본을 배우기도 하고 장기자랑에도 써먹을 수 있다. 


나이대별로 댄스를 숙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데 10대는 우등생이였고 20대는 보통이었으며 30대는 열등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공부도 재능이듯 댄스는 정말 재능이어라. 그리고 모든 배움엔 때가 있는 법. 


기껏 성인취미수업을 들으면서 휘적휘적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한심했고 자괴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렸다. 남들이 멈췄을때 난 움직였으며 남들이 움직일 때 난 멈췄다. 그나마 3개월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댄스선생님이 너무 예뻤다는 것. 단발에 태닝 한 피부, 명랑한 목소리, 잔잔한 근육질의 몸매 "원 앤 투 앤 쓰리 앤 포" 난 반해버렸다.





내겐 너무 예술적인 발레 


마지막으로 발레. 발레는 원데이 클래스만 듣고 바로 그만뒀는데 극강의 유연성이 없다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리한 턴아웃 동작이 고관절에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오래 한 사람 말에 따르면 몸을 슬림하게 하고 거북목을 개선시키며 꼿꼿하고 우아한 자세를 가지게 된다고는 한다. 건강한 몸을 위한 운동을 원한 나에게 발레는 예술을 위한 춤이었다. 게다가 오래 한 분의 씨름선수를 방불케 하는 종아리 알은 시작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다년간의 문화센터 댄스수업은 유아원 시절 발레 장기자랑의 악몽으로부터 나를 꺼내주었다. 물론 없던 댄스 실력이 일취월장하지는 않았지만 취미로 느낀 댄스는 이런 것이다. 


곡이 흐르는 동안 할 수 있는 만큼의 율동만 하면 된다는 것.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나는 나대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면 된다는 것. 그저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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