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행사에서 8촌 올케언니를 만났다. 사실 말이 8촌 올케언니이지, 처음 뵙다시피 하는 분.
요즘 치매인 친정부모님을 돌보고 계신다는 말에, 나는 이러저러한 경험 때문에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내 마음과 경험과, 그리고 부족하지만 나의 지식을 다해 말씀드렸다.
절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마시라.
애초에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얽어 묶지 마시라.
내 이야기를 듣던 올케언니는 마치 저 바닥에 숨겨놓았던 자신의 마음을 내 입을 통해 확인하는 듯 부끄러워하시며 웃었고 마음을 열어주셨다.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참 하기 힘든 이야기라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동생과 남편에 대해 이야기했고 친정의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털어놓으셨다. 내 이야기와 조언이 언니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부끄럽게도, 그러한 언니의 얼굴과 눈빛에서 내가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그런 설렘과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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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비슷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늘 비슷한 자책을 한다.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하고 그 기도에 미치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나를 보며 또 자책한다. 그런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책만 하며 길바닥에 엎드려있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사실은 매 순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무수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일을 걷고 있었고 그 덕분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지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서서히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며칠 전 감사한 지인과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나를 위로하며 '그래도 힘들어도 버틸만하니까 중간에 그만두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안 그랬으면 벌써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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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한 건 물론 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내 의지만은 아니었다. 그분이 함께 하셨고 그래서 이 길을 두드렸고 걷기 시작했다. 안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건 일어나는 것. 넘어졌을 때 그분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기. 그리고 그 분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걸어가기.
베드로 신부님의 말씀처럼 그분이 시작하셨으니 그분이 잘 마무리해 주길. 마음 다해 청하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하루하루 살아가기.
사진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흰 눈 쌓인 대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