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그다지 좋지도 싫지도 않은 곳이었다. 보통의 한국인이 갖고 있는 만큼의 반감을 갖고 있었고, 종종 일본의 아름다운 여행지와 예의 바른 국민성에 대한 막연한 친근감 정도만 어렴풋이 갖고 있었다. 배우자가 3년간 도쿄에 해외파견이 나서, 나는 대학상담센터 일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도쿄로 이사 왔다. '우선은 6개월 간 배우자의 정착을 돕고 한국에 와야지'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난생처음 세계적인 대도시에 잠깐 여행 오는 기분으로 온 것이다.
도쿄에 온 지 이제 곧 3주가 되어간다. 한 달 가까이 살아본 도쿄는 '다정한 무관심'의 도시, 상냥한 개인주의의 도시이다.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정이 없지 않냐고, 조금 외롭지 않냐고 묻는 이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정말 이 다정한 무관심이 반갑고, 편하다.
'다정한 무관심'이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나온 표현이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위워크에 등록했다. 위워크는 투어를 거친 후, 위워크 공간에 대한 안내를 받고 멤버십에 등록한다. 나는 한국에서 심리상담사였지만, 일본에서는 심리상담을 하고 있지 않다. 6개월 간 내게 주어진 이 휴식시간 동안 나는 웹개발을 공부하고 싶어 위워크에 등록했다. 위워크 투어 전부터 좀 고민이 되었다. 직원이 내게 '너 무슨 일 하니. 어떤 회사 소속이니?'라고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지 막막했다. 위워크에 등록해서 심리상담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개발공부를 해보는 거라 개발자라고 하기도 뭐 했다.
그런데 웬걸?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등록한 날부터 3주가 지난 지금 시점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서로 한 공간에서 일하기 위해 예의를 지킬 뿐, 각자의 세계를 섣불리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섣부른 개방(이건 나도, 타인도 둘 다 포함해서)이 조금은 무섭고, 싫다. 직장이든 학교든 사실 그 장소가 있는 목적(직장이면 일, 학교면 공부!)만 완수하면 집에 가고 싶었다. 외부장소에 온 목적을 달성하면 어서 집에 가서 혼자 쉬거나 가족, 가장 최애는 고양이와 함께 노는 게 최고의 행복이었다. 감정적으로 타인과 섞이고, 관여되는 게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냥 타인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내심 바랐다.
그런데, 한국은 인간관계 면에서는 나에게 무척이나 '고관여 소통'의 나라였다. 사회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사교적인 태도를 가장했던 것이지. 그다지 소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에 오니 정말이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이 다정한 무관심이 왜 이리도 편안한지. 3주간 살아본 일본은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개념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사회적 틀과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선택을 행하려는 태도'로 정의된다. 자신만의 영역과 취향을 확고히 지키는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서로의 영역에 관해 다정한 무관심을 취하는 심리적으로 쾌적한 이 도시가 나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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