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연 정의당 청년본부 본부장
우리는 선거가 다가올수록 청년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청년’이란 말을 무슨 마법의 주문인양 입에 달고 다닌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어서 ‘청년’을 선거때마다 무게감 있게 다루고 있다.
청년과 청년정치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알려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시대의 청춘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청년정치를 더욱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발전시킬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청년이 하는 정치만이 진정한 ‘청년정치인가?’라는 아주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 미디어내일N의 청지기 인터뷰, 오늘은 정의당 청년본부 정혜연 본부장과 함께 청년정치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지금의 정치세력, 어느 누구도 사실 청년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혜연 정의당 청년본부 본부장은 청년세대를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로 발을 내딛는 첫 세대라 규정하면서 이 ‘불평등’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층 양극화 현상은 1997년 IMF 사태를 이후 심화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흔했으나 언제부터인가 계층 간의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고 부의 대물림이 횡행하면서 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고정화 되고 있다.
정혜연 본부장은 “경제 세습구조가 빚어낸 불평등 사회의 밑바닥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계층이 바로 청년층”이라고 규정했다. 동시에 “이런 청년들이 소수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는 법 제도 속에선 소외되고, 만연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는 몸으로 부딪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대한민국 총인구(주민등록 기준, 행안부)는 약 5182만이다. 그중 20대는 682만(13.2%), 30대는 727만(14.0%)으로 2030세대가 전체 대한민국 인구의 26.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청년 국회의원은 전체 의원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 본부장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금의 정치세력들은 사실상 청년을 대변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런 현상의 정치적 배경은 아주 간단하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가 워낙 소수 엘리트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이나, 다른 정당이나 모두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한다.
정치하면서 청년을 대변하지 못하는 일은 보수 정치인은 물론이고 80년대 민주화를 겪었다는 정치인에게도 흔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의 관점을 대입시켜 청년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이러다 보니 본인들의 관점과 다른 청년들이 자기 삶만을 생각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이 때문에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잘못된 말이 정치권에 나오고 있는 것이라 분석한다.
그는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0대 기존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낡은 틀에 갇힌 사고로 청년층을 재단하기 시작하면서 청년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러다 보니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기존 정치권을 외면하고 정치권이 시도하고자 하는 정책들에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청년정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진보적 세대
지금 청년세대는 민주화 이후의 세대로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느꼈고, IMF 이후로 경쟁체제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경제적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체감했다. 여기에 탄핵까지 직접 경험하면서 함께 최고 권력자를 몰아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정 본부장은 “지금의 청년세대는 민주화 이후의 세대이면서 탄핵을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더 큰 정의를 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는 특징도 뚜렷해 “지금의 청년층은 각자의 경험을 공유할 계기가 많지 않았고, 혼자 사는 것이 매우 익숙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을 ‘포스트 민주화 세대’라고 지칭했다.
지금 2030세대는 어릴 때부터 경쟁적인 교육 제도 안에서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대학교에 진학하더라도 공부다, 알바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뿔뿔이 흩어진 세대가 되고 말았다.
정 본부장은 이러한 청년세대의 변화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지난 촛불광장을 돌아보면, 당시에도 청년 세대의 박근혜 정권에 대해 불만은 극에 달했다. 전 세대 연령층을 대상으로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많은 청년은 ‘재벌 경제 기득권 세력과 정치 권력 박근혜 정부와의 결탁’을 원인으로 꼽았다. 잘못된 경제 구조의 문제와 정치 권력의 문제가 결합하면서 국정농단이 발생했다고 인식한 것이다. 2030세대는 지금도 이 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는 “이런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현 상황을 타파해나가자는 것이 청년 세대의 주장이다. 이들을 민주화가 목표였던 전 세대와 달리, 민주주의는 기본값에, 경제적 불평등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하기에 ‘포스트 민주화 세대’라고 규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2008년의 촛불시위와 2016~2017년 촛불시위에서 어떤 계층이 중심이었느냐'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촛불광장에는 사회적 지위나 일정한 수준의 집단만이 모였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각기 다른 사람들,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다양한 개인이 모여 사회적 변혁을 성공시킨 것이어서 더욱더 그렇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기자는 정혜연 정의당 청년본부 본부장의 “진보적 세대가 출현했다”라는 말 속에 담긴 진보적이라는 개념이 궁금해졌다.
정 본부장은 과거 운동권 세대가 가지고 있는, 진보·보수의 관점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면서 지난 촛불 정국의 과정을 돌아보며 진보적이라는 단어를 풀어냈다.
그는 “혹자는 2030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말하지만, 기성 정치권이 그들을 대변을 못 하기 때문에 무관심한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지금의 어떤 정당도 표를 줄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열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또 “지난 촛불 정국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 세대는 진보·보수를 떠나 다양한 주장을 가감 없이 드러내길 원하는 행동주의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불평등, 불공정, 특권 세습 문제에 가장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진보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생망 혹은 전에 사용했던 헬조선이나, 수저계급론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 이의 해결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가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자신들이 가난 속에 맴도는 것은 개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모순 때문이라는 걸 빨리 인식하는 것이 진보적”이라고 말한다.
청년세대 문제의식, 사람들을 더욱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 것
청년정치, 청년세대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만드는 것
정혜연 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청년 정치라는 것은 세대로, 나이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78세의 버니 샌더스와 70세의 제레미 코빈의 예를 들었다. 비록 그들이 고령의 정치인이지만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청년 세대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생물학적 나이와 청년정치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이들 노 정치인은 청년보다 더 청년다운 시각으로, 그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회모순이 무엇이냐를 짚어내고, 바꿔 보고 개혁하자고 지지자를 설득한다. 이에 청년들은 전폭적인 지지로 화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본부장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샌더스는 트럼프를 가리켜 “우리를 끊임없이 분열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다”며 “우리는 저 사람을 밀어내고 하나로 뭉쳐서, 우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미국민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이다.
정 본부장은 우리가 말하는 청년정치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청년 세대 자체가 너무 다양한 삶,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하나의 힘으로 뭉쳐내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적극적으로 해결해 갈 힘이 청년정치의 실체”라고 했다.
청년 세대라고 지칭은 하지만, 그 안에도 경제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다양한 층위(계층)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도 인정한다. 하지만 다양한 층위로 분화되더라도 대다수 청년 세대가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없다”는 현실이다.
달리 말하면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결혼이나 파트너, 가족들과 어떤 삶을 꾸릴 수 있을지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경제적 기반의 상태가 지금 청년 세대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소리를 하나로 묶어서 청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청년정치고, 청년정치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간섭이 싫은 청년정치와 간섭해야 해결되는 청년정치
청년정치가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고 힘을 모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특징을 가졌지만, 청년정치의 당사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속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삶에 간섭하는 것도 싫어한다. 본인들이 하는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의 평가를 하는 행위도 거부한다. 정치에서 소외됐음을 느끼면서도 국가가 삶에 개입하는 것은 강력하게 거부한다.
정 본부장은 “(청년들은) 정부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간섭하는 걸 강력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의 정치를 강력하게 원한다”며 “그것 역시 청년정치”라고 강조한다.
이어 “국가는 사람들의 삶에 일절 개입하지 않으며,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강력하게 개입하여, 사람들을 더욱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청년 세대의 명확한 요구다. 청년정치란 이런 쟁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정리했다.
청년정치의 기본적인 소양, 하나로 뭉쳐내는 것
2016, 17년의 촛불집회는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냈고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의 정치는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왜 기존 정당들은 시민의 열망과 분노를 제대로 품을 수 없었을까?
정혜연 본부장은 “그 당시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장애인이든, 성 소수자든 상관없이 촛불을 들었다. 네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했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난 유일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동도 잠시 그는 “촛불 이후 정치인과 정당들은 ‘옳다, 그르다’ 혹은 ‘여성, 남성‘ ’20대, 50대‘ ’중소상공인, 알바생, 노동자‘ 등등 사람들을 끊임없이 갈라치고 분열하게끔 정치를 해왔다”고 말했다. 즉 기존 정당들은 자신들의 통제나 입맛에 맞게 촛불시위에 모였던 시민들을 나누고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나눗셈의 정치를 통해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계층별 이해관계로 변형시켜 충돌시키고 있다.
그래서 정 본부장은 청년정치의 기본소양을 “청년 세대를 내부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를 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진보도 마찬가지고, 보수도 마찬가지다. 청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냐 남성이냐, 대학 졸업을 했냐 안 했느냐로 나누면서 청년들을 갈라놓으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청년정치를 하려면 청년을 내부로부터 갈라놓는 정치부터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정치의 지향,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행동, 정체성 정치만으로 안돼
청년정치의 지향, 다른 청년들의 삶과 세대 간의 연대
정혜영 정의당 청년본부 본부장은 샌더스 현상을 통해 청년정치의 지향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샌더스 멋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많은 청년이(60%) 사회주의자가 됐다”며 “샌더스를 보면 정의당 혹은 한국의 진보 정치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행동, 어떤 정체성 정치만으로 지지받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가 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샌더스의 메시지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며 “샌더스는 일관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다. 이제 서야 청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큐파이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지난 촛불 에너지가 나중에 어떤 정치적 에너지로 등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정의당이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하고, 해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586 민주화 세대라고 해서 그 세대가 다 같은 사회적 위치에 놓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매달리면서 공장에서 노조 운동을 하거나, 노동 운동,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활동을 그만두고 자영업자로 변신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며 “반면에 그 당시의 민주화 세대였다는 사실만을 정치적 자산 삼아 기득권층에 올라간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평범한 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도 있다”며 “기성세대가 펼치는 정치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 본부장은 “청년정치라는 것은 세대를 갈라놓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청년세대도 사회 내 불평등구조에 놓인 계층이기에 비슷한 사회적 환경에 놓인 5060세대와 노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부연하면서 “청년정치는 이들의 제 문제, 즉 빈곤선 이하에 떨어져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88만원 세대 담론’에 대해서도 그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들어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담론은 유신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신 세대라 불리는 그 세대에 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계층 내 불평등도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정혜연 정의당 청년본부 본부장은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세대 내부의 불평등”이라면서 “청년 세대 내부의 불평등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10년, 20년 지나면 이 불평등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져 있을 것이다. 또한 출발점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이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하는 청년정치의 핵심이다. 시작점 자체가 다르고 세대 간의 불평등 속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삶을 사는 청년들과 세대 간의 연대다”라고 강조했다.
청년정치의 장벽, 이전 진보진영이 만들어 놓은 테두리.
진보, '현실의 변화에 맞게,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탄력성 필요'
요즘 진보그룹에 대해 ‘진보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단어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러한 목소리는 ‘현재 진보는 과거 유행했던 사상적 틀에만 갇혀 대중과 분리됐다’는 지적에서 비롯한 것이다. 더나아가 과거 운동권 동아리처럼 조직을 폐쇄적으로 운영한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보’라는 단어는 대중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활화산 같은 존재였다. 통일론, 사구체론 등 거대 담론들을 우리 사회에 던지며 현 사회가 나가야 할 좌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기도 했다.
당시 진보진영은 사회과학이론을 토대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도 노력해왔다. 화려한 경제성장 이면에 숨겨진 민중들이 처한 모순을 혁파하기위해, 때로는 자기희생을 담보로 독재와도 맞서 싸웠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진보, 민주화라는 물결은 민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동유럽과 구소련의 갑작스런운 몰락은 대중과 진보진영의 시각을 변화시켰다. 즉, 대중에게 대안적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 것이다.
대중은 사회주의 몰락을 보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최후의 승자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졌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획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진보 진영도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 모순에 대한 저항보다는 현재 개개인들이 처한 부문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부문운동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급작스런 인식의 변화속에 과거 진보진영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 변화가 과거의 관성에 의해 사회의 변화속도에 따라 민중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면도 있다.
결국 민중은 천민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했으며 IMF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내에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정치는 보수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 장사치에게 놀아나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과거와는 달리 사회운동이 대중에게 지지나 동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무리 진보 진영이 선도적 문제제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전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지 않게 되었다. 결국 진보를 말하는 이들은 많아졌지만, 선도 집단에 의한 사회 문제제기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가 어려워졌고, 그러다 보니 진보 진영내에서만의 문제제기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의 갈라파고스화라 부르기도 한다.
정의당 정혜연 본부장은 요즈음 청년정치의 최대의 장벽은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진보라는 테두리’라고 강조한다. 그는 80, 90년대 형성된 이분법적 시각이 지금도 유령처럼 진보의 세상을 배회하면서 대중과의 교류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다.
정 본부장은 “그 장벽 때문에 많은 청년을 만나기가 어렵다. 만나도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며 “진보가 고루한 담론을 깨고 대중과 접촉면을 늘리기에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졌다”고 말한다. 아직도 진보 일부에서는 딱딱하고 낯선 언어로 옳고 그름만 따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세상은 혼자 변화시킬 수 없고 변화시키려면 지지자라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혼자만 잘났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다면 대중 정치가가 아니다”며 “정의당도 대중 정치를 하려면 당 바깥에 있는 많은 청년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일정 정도의 고정 관념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진보적 테두리를 깨부숴야 더 많은 청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진보는 정해진 길이 있다는 고정관념도 문제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다른 쪽을 바라보는 행동은 반대로 무조건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진보의 길을 설득하려면 자유로운 상상력이 필요한데 진보의 고정화된 관념이 사고의 다양성을 빼앗고 대중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故 노회찬 의원을 말을 빌려 타개책을 제안한다. 노 전 의원은 진보의 대중화에 대해서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진보적 가치가 있지만, 이것을 설득해내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또한 진보적 가치는 늘 변한다”고 말했다. 진보는 고정불변의 목표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변화에 맞게, 대중의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비전과 자신의 전망, '더 많은 지지자, 대중과 함께 하는 정당'
가슴 두근거리게,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내는 것
정혜연 청년본부 본부장은 정의당의 부대표로서 청년 세대가 가진 문제의식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그들과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20대나 30대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청년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끌어내고 성취하도록 하는 역할이 정의당이 가진 정치적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정 부대표의 꿈은 단순하다.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진보정치를 하고, 정의당이 청년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는 정당이 되게 하는 것이다. 대중이 “저런 진보라면 나도 지지할만하다. 저런 진보라면 나도 함께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하는 정의당이 그가 꿈꾸는 정당이다. 당원들도 그의 약속을 믿고 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것, 무엇인가 변화를 만드는 것, 사람들의 힘을 모아내는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여러 사람이 모여서 힘을 보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지지자, 대중과 함께 하는 정당이 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자 소망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정치적 기준선
정치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때, 모두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
정혜연 부대표는 이명박 정부 시작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용산 참사를 겪으면서 국가권력과 국민의 삶이 어떤 관계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부가 시민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내가 바란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니다” “왜 내가 뽑지도 않은 대통령 때문에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나” 결론을 맺지 못하는 의문과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자 탄압은 해고 문제로 농성 중인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을 경찰을 동원해 과격 진압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때 의문은 확신으로 변했다. 사회 모순을 해결하고 무자비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선 참여하고 동참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선 정당에 가입해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당 가입은 진보를 통한 사회 변혁에 동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지만, 정당 활동을 하면서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정당 말고 시민단체 활동도 선택지 중의 하나였지만, 정치에서 힘을 보태려면 정당 가입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사회책 어디에서인가에 배웠던 ‘정당 활동은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구절도 정당 가입 결정에 영향을 미쳤었다.”
용산 참사나 쌍용차 해고 노동자 농성 진압 등 무자비한 공권력에 분노하면서 사회 참여를 결정했다면 세월호 침몰은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생명,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가운 물 속에 빠져 졸지에 생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는 다음 세대에서는 세월호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마다 정치적 기준선이 있는데 정 대표에게는 세월호 사건이 정치적 기준선이 되었다.
정혜연 부대표는 청년 세대가 지향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이 사회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에 필요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정당일 수도 정치인일 수도 있지만, 주체가 어떤 것이든 간에 중요한 점은 실체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의당은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청년세대들이 이야기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정치가 밑바닥에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모두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사람들도 하나로 뭉쳐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며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소망이자 의무처럼 다가왔다”고 토로했다.
정의당 청년본부는 지난해 말 상하차 알바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설문, 심층 조사, 고발장도 접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20대 한 청년의 감전사를 막지 못했다. 이어진 김용균 씨 사건은 정말 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구의역에서 비정규직의 죽음으로 시작된 ‘너는 나다’ 구호가 김용균 씨 사건으로 ‘나는 김용균이다’라는 더욱 확실한 메시지로 확산되었다.
정의당은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인 청년의 삶에 공감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미흡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에 힘을 보탰다.
정의당이 진행하는 청년정치학교의 슬로건도 ‘불평등을 벗기다’라고 정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사회가 가진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공부해나가는 시간을 갖도록 한 배려했다. 정치학교라는 강의 안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강사와 자기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걸 토론해 나가는 과정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고민과 함께 실제 캠페인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정치학교 환영사에는 이런 의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우리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지. 이게 사실 우리의 경제적 기반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이를 드러내는 일보다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불평등 문제에 맞서고 경제적 기반을 세우는데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자신을 행동파 스타일이라고 규정한다. 이 스타일이 청년들과 잘 맞는다면서, “누가 더 지식이 많은가, 누가 더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힘이 중요하다. 여기에 대중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것. 대중이 보는 시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대중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요소다”라고 부연했다.
정의당의 정치학교는 바른미래당 청년도, 민주당 청년도 참석해서 '누가 틀리고 옳은 가'가 아닌 다양하게 토론을 통해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캠페인도 하는 등 다양한 생각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정 혜연 부대표에게 정치학교란 ?
“당원 비당원 상관없이 청년들이 문턱 없이 드나들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간이다.”
그는 정의당의 정치학교에 대해 “대중적인 학교 공간, 청년이라면 누구나 진보정치나 정의당이 궁금하다면 와볼 수 있는, (실제로 그렇게 입당한 청년들도 많다) 혹은 모임 형태로 다양하게 세미나도 하고 있고, 당원이 아니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정치인을 양성할 수 있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은이 아니라 그 시작점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역시, “내가 청년정치 1기 시작할 때 나도 언젠가는 시 의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신입 당원 교육을 통해 그 시작점이 만들어졌다”면서 지금의 정혜연에게도 정치의 시작점이 정치학교였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청년 정치스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 프로그램을 두 번 진행했다. 그러나 참여 대상이 다양하고 주제에 대한 공감도도 다르기 때문에 커리큘럼을 참여자 위주로 내용도 쉽고 토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선거제도개편안 합의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선거제도를 바꾸는 건 노무현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진짜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지만 정권을 바꾸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도 강조했다. 대통령 말씀이 아니더라도 선거제라는 게 바꾸기 정말 힘들다고 늘 생각했다. 왜냐면 국회의원들 한 명 한 명의 동의를 다 받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힘든 일이다.”
2015년도에 정의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하라고 했던 싸움의 결과가 비례대표가 오히려 축소되는 결과로 나타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의 합의로, 즉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합의해서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이번 4당 합의로 만들어진 선거제도 개혁안도 결과적으로 국회의원의 합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선거 제도가 너무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혹은 비례를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양당 구도가 서로에 대한 반대급부를 통해서 당의 위세를 유지하고 현실에서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는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한 반대만 한다면 늘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동형비례대표제도를 도입, 혹은 비례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낮고 복지국가인 이유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 간의 협상, 협의 그걸 가지고 어떻게 국민들의 삶을 낫게 할까를 두고 경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 비례성을 높이는 방식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 자유한국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도를 왜 그렇게 반대를 할까?
자유한국당이, 민주정의당부터 수십년 동안 누려왔던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던
정치구도를 유지하려는 것 때문이다.“
최근 여야합의로 이루어진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해 보수 언론과 보수 진영에서는 ‘선거 제도가 아주 어렵다, 복잡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정혜연 부대표는 “선거제도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그런 서로에 대한 의견들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당연히 복잡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들이 이번에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더 정치에 대해서 신뢰를 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국민의 이해관계와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국회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바뀌어야 할 건 너무나 많죠. 이건 시작점, 혹은 그런 과정에 결과물이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나경원 의원의 비례대표 폐지에 대해서
“적절하진 않다. 따지고 보면 비례대표제도 비례대표제 나름이다. 브라질의 경우 완전 비례대표제임에도 되레 정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작동한다. 어떤 특정한 정치 제도만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제도는 그 정치적 상황, 맥락, 시기, 한국적 상황들에 따라서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양당 구도의 정치체계를 강고히 하는 소선거구제에서는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하기때문에 정치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툭 하면 반대와 보이콧만 일삼고 있지 않은가? 비례를 완전히 폐지 하는 것은 일 안하는 국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부 소선거구제에서 비례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 협상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게 할 것이다. 즉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혜연 부대표는 인터뷰 내내 ‘세습 문제’를 자신의 화두라고 강조했고, 그래서 그는 “청년들을 불평등한 사회에 놓이게 만드는 한국사회의 세습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밝혔다.
“한국사회의 세습은 누구는 저 멀리 앞에 서 있고, 누구는 맨 뒤에 서있게 하고, 또 아버지가 누구냐?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다시 말해 청년 내부의 불평등한 출발점과도 연결되어 있다.”
남상오 기자 wisenam@usnpartners.com
김남미 기자 nammi215@usnart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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